밀양아리랑 아트센터 별관 1층에는 유네스코 인류 무형 유산에 등재된 우리 민족의 소리 밀양 아리랑의 과거와 현재를 만날 수 있는 아리랑 전시관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밀양아리랑 대공원 내에 있는 밀양아리랑 아트센터는 밀양의 문화, 예술 보존과 발전을 위해 설립되었습니다. 시민의 여가선용과 문화예술 진흥을 도모하기 위해지어 2016년 9월 개관하였으며 아리랑 아트센터에는 대 공연장, 소 공연장, 밀양아리랑 전시관 및 전수관이 있습니다.
밀양아리랑은 정선아리랑, 진도아리랑과 함께 대중적으로 가장 많이 알려진 대한민국 3대 아리랑 중 하나로, 경쾌한 가락이 특징이며 일제 강점기에 독립 투쟁을 하던 광복군의 사기를 올리기 위한 군가로도 사용됐습니다.
밀양아리랑을 한자리에서 보고 즐길 수 있는 전시관에는 밀양아리랑의 역사, 전국의 아리랑 청취 공간, 과거 아리랑 음반 전시, 생활용품 전시, 해외이주와 함께 전 세계로 퍼져 나간 아리랑, 독립군 아리랑, 축제로 만나는 아리랑 등 관람객들이 쉽게 이해하고 즐길 수 있도록 조성되어 있습니다.
아리랑은 한국인의 정체성과 독창성을 잘 보여주는 한민족의 대표 민요이며, 밀양아리랑은 밀양시민의 전통문화이자 미래문화입니다. 밀양 아리랑은 경남을 기반으로 한 야구단인 NC 다이노스와 축구단 경남 FC의 응원가로 사용될 만큼 대중적으로 많은 사랑을 받고 있습니다.
전국적으로 불리게 된 밀양아리랑은 밀양 사람들의 통속적인 삶의 소리, 근대 민족사의 아픔과 애환을 달랜 소리, 밀양의 지명과 인물이 함께하는 현장성을 지닌 소리로 밀양아리랑의 가사는 이뤄지지 않은 사랑에 대한 애달픔이지만, 슬픔과 애달픔을 넘어서고자 하는 강한 의지를 보여주는 소리입니다.
가장 힘차게 불린 민족의 소리 밀양 아리랑, 독립군 아리랑이 되다. 일제강점기 독립군들은 항일운동의 거점이었던 만주와 연해주 일대에서 일본군과 싸워 빼앗긴 조국을 되찾자는 강한 의지를 담은 가사를 밀양 아리랑에 붙여 군가로 불렀습니다.
광복군 아리랑, 항일 운동의 표상. 밀양 아리랑, 항일 독립의 염원을 담다. 상해 임시정부 수립 후인 1940년, 밀양 아리랑은 독립 염원을 담은 가사를 싣고 광복군 아리랑으로 힘차게 불렸으며, 밀양 아리랑이 중국에서 광복군 아리랑이 된 것은 약산 김원봉 등 밀양 출신 독립투사들이 많았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빠른 리듬, 내어지르는 특성, 반말 투의 첫 사설 등 경쾌함과 속도감 및 씩씩함을 모두 지니고 있는 밀양 아리랑은 한국전쟁의 비극 속에서도 울려 퍼졌습니다. 국군은 북한군들을 회유하기 위해 밀양아리랑을 선무 방송하였으며, 중공군은 밀양아리랑을 개사한 "파르티잔 아리랑"을 군가로 불렀는데요. 밀양아리랑 곡조에 가사만 바꾼 노래였습니다.
밀양 아리랑이 언제 시작되었는지 발생 시기를 알 수는 없으나 지금까지 제기되고 있는 설.
밀양 아리랑은 삼별초의 항몽 이전부터 고난에 처한 백성들이 어려움을 극복하고 밝은 미래를 희망하는 노래로 태동했다는 설과 전국에서 아리랑이 널리 불린 1900년대 전후와 1926년 영화 아리랑 주제가가 널리 불릴 무렵 신민요로 음반 등을 통해 유행했다는 설이 있습니다.
전시실 내부에는 VR 체험존 등 젊은 층이 흥미를 가질 콘텐츠를 접목하여 보다 입체적인 공간으로 구성되어 있고, 여러 종류의 아리랑 노래도 들을 수 있도록 아리랑 뮤직 박스도 자리하고 있습니다.
아리랑 전시관에는 미국 모니터 레코드사가 1961년에 제작한 LP음반, 1950년대부터 상품 이름으로 널리 쓰인 아리랑의 제품과 밀양 아랑제 기념 메달도 전시되어 있습니다.
밀양 지역에서는 밀양아리랑보존회, 밀양아리랑 콘텐츠사업단이 결성되어 밀양아리랑 체조, 밀양 아리랑 플래시몹 등을 개발하는 등 전승과 보존에 노력하고 있습니다.
2012년 아리랑이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에 등재된 후 우리나라 3대 아리랑 고장인 진도(2013년), 정선(2016년), 밀양(2019년) 지역에 모두 아리랑 전시관이 만들어졌습니다. 밀양아리랑이 지역을 넘어 세계 브랜드가 되기를 기원합니다.
우리 민족의 소리 밀양 아리랑 저작물은 공공누리 “출처표시+변경금지” 조건에 따라 이용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