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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생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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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백 년 전통을 가진 합천 삼가시장

온라인 명예기자단 김현정



 

느긋함이 필요한 시기, 연말이 다가오면서 더욱 분주해진 도심지에서의 생활에서 조금 벗어나 힐링의 시간을 가져보기로 하고 떠난곳은 합천 삼가면에 있는 삼가시장입니다. 재래시장이라 치부되며 불편함이 단점으로 여겨졌던 전통시장은 요즘같이 복고열풍과 함께 아련한 추억을 말할것도 없으며 사람들이 오고가는 흥정이라는 정을 맛 볼 수 있는 정겨운 곳이기에 재미와 함께 힐링의 시간을 가질 수 있을 것 같아서였습니다.

 


 

삼가시장을 가는 길목에서 만나게 된 삼가의병장 순국 기념비, 많은 벤치들이 질서 정연하게 놓여있는데, 삼가는 남명 조식 선생이 을묘사직소에서 내암 정인홍이 이른바 회퇴변척소와 사의장봉사에서 주창한 것처럼, 예부터 민본과 기절을 숭상하는 정신이 충만한 지역이었습니다. 정미의병전쟁때인 1907년 ~ 1909년 삼가의병단이 삼가 산청 거창 안의 함양 등지에서 일본군 수비대와 경찰에 맞서 의병전쟁을 벌여 박수길 한치문 이차봉 김화서 등 16명이 순국했고 최남수 등 9명이 옥고를 치렀습니다.

10년 뒤 1919년 음력 2월 17일, 22일 삼가장날에 2차례 걸쳐 삼가장터 3.1만세운동이 일어났는데, 30,000명이 참여하여 40여 명 순국했고 150여 명이 부상을 입었으며 50여 명이 옥고를 치렀다고 알려져있습니다. 대한민국에서는 가장 크고 격렬하게 일어난 혁명적 시위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이러한 희생정신을 기억하고 게승하기 위해 2003년에 주민들의 마음과 성금이 합쳐져 기념탑 조형물과 작은도서관을 조성했습니다. 

 


 

아픔의 역사를 간직하며 유유히 흘러가는 합천 삼가면을 관통하는 양천의 풍경은 소소하지만 너그러운 여유를 보이는 듯 합니다. 

 


 

합천군 삼가면 일부리에 있는 삼가시장이 있는 삼가면은 고려 시대에 삼기현과 가수현으로 나누어져 있었던 것을 조선 태종 13년(1413년)에 첫 글자를 따 삼가라고 칭했는데 그 이름이 지금까지 이어오고 있습니다. 삼가 시장은 2, 7일 5일장이 서는데, 찾아갔던 날은 장날이 아니었으나 그래도 삼가 시장의 규모 정도는 느껴 볼 수 있는 시간이었습니다. 

 


 

장날이 없을때는 상설시장으로 운영되고 있는 삼가시장은 사진에서도 확인되듯 농촌 지역 치고는 제법 자동차의 통행량도 많고 이곳을 찾아 이용하는 사람들의 수도 많아 보였습니다. 활기찬 모습을 보게 되니 덩달아 심장 박동수가 빨라지는 듯 흥분이 더해 갔습니다. 

 


 

분명 삼가시장에 도착했을 때는 맑은 날이었는데, 심술 맞게 갑자기 빗줄기가 한바탕 쏟아집니다. 여름날도 아닌데 소나기 같은 느낌의 비가 왔지만 기분이 나쁜것은 아니었고 오히려 생기가 도는 촉촉한 기운으로 삼가시장을 둘러볼 수 있어서 좋았습니다. 

 




 

없는것만 빼고 다 있는 전통시장의 모습이라고 해야할까요? 삼가시장의 역사는 300년이나 되었다고 합니다.

 


 

제주목사였던 여암 신경준(1712~1781)이 경인년 1770년(영조46)에 간행한 '도로고-개시'에 나오는 삼가.합천.초계시장 및 개시 일자 현황이 있습니다. 문무자 이옥(1760~1815)이 222년 전인 1799년(정조23) 12월에 지은 봉성문여 '시기'에서 멋지고 사실적으로 생동감 있게 스케치한 경남 합천군 삼가면의 '삼가시장(삼가장터)'도 남아있습니다. 

 


 

개시에 수록된 내용을 보면 1770년(영조46) 삼가에는 읍성 안에 2일에 서는 삼가읍내 시장과 4일장인 고현(현, 대병면 창리) 시장이 있었다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삼가읍성안 기양루 앞에서 장터가 활발하게 이뤄졌다고 상상해 볼 수 있는 대목들도 있습니다. 

 


 

봉성문여에 222년 전인 1799년(정조23)에 12월 27일 설을 앞두고 경남 합천군 삼가면의 삼가시장을 사실적으로 묘사한 글이 있는데, 여기서 봉성은 삼가의 옛 이름을 말합니다. 그 전에는 기양이라고도 불렀습니다. 

 


 

삼가시장은 1980년 초까지만해도 서부경남에서는 알아주는 큰 시장이었습니다. 장으로서의 규모가 많이 쇠퇴되고 줄었다고 하지만 지금도 그 규모로 봐서는 당시에 큰 시장이었다는 것을 짐작해 볼 수 있습니다. 일제강점기에 3.1 만세 운동이 2번이나 일어날 정도로 컸었던 삼가시장입니다. 

 



 

경기 화성 출생인 이옥은 고전적이고 격식을 갖춘 품격있는 당송의 시와 고문에 배치되는 긍를 쓰지말라는 정조 임금의 소위 문체반정 시책에 따르지 않고 소품체를 구사하며 괴이하고 불경스런 글을 썻다는 이유로 삼가현으로 귀양을 가게 됩니다. 이옥이 쓴 문집 중 '시기(시장풍경)'은 1800년(정조24) 음력 1월 1일 설을 앞두고 12월 27일 대목장인 경남 합천군의 삼가면의 삼가시장 풍경에서 18세기 말 조선의 사회와 경제, 문화 등을 표현하고 있습니다. 

 


 

당시 삼가시장은 우체국 뒤 기양루 근방에 있었는데 1937년 12월에 현재의 삼가시장으로 옮겨 지금에 이르고 있습니다. 1937년 12월 1일자 동아일보 기사에 따르면 당시 강신부 면장이 8천원으로 논을 매입하고 복토하여 건물을 짓고 이전했습니다. 

 

시기(市記):삼가시장풍경​_ 문무자이옥(文無子李鈺,1760~1815)봉성문여(鳳城文餘) 中

 

[내가 머물고 있는 집은 저자(시장)와 가까운 곳이다. 매양 2일과 7일이면 저자에서 들려오는 소리가 왁자지껄했다.

저자 북쪽은 곧 내가 거처하는 남쪽 벽 아래인데, 벽은 본래 바라지도 없는 것을 내가 햇빛을 받아들이기 위해 구멍을 뚫고 종이창을 만들어 놓았다. 종이창 밖, 채 열 걸음도 되지 않는 곳에 낮은 둑이 있는데, 저자에 가기 위해 드나드는 곳이다. 종이창에는 또한 구멍을 내어놓았는데, 겨우 한쪽 눈으로 내다 볼 만했다.

12월 27일 장날에 나는 무료하기 짝이 없어 종이창의 구멍을 통해서 밖을 엿보았다. 때는 금방이라도 눈이 내릴 것 같고 구름 그늘이 짙어 분변할 수 없었으나, 대략 정오를 넘기고 있었다.

소와 송아지를 몰고 오는 사람, 소 두 마리를 몰고 오는 사람, 닭을 안고 오는 사람, 문어를 들고 오는 사람, 멧돼지 네 다리를 묶어 짊어지고 오는 사람[有縛猪四足擔而來者], 청어를 묶어 들고 오는 사람, 청어를 엮어 주렁주렁 드리운 채 오는 사람, 북어를 안고 오는 사람, 대구를 가지고 오는 사람, 북어를 안고 대구나 문어를 가지고 오는 사람, 잎담배를 끼고 오는 사람, 미역을 끌고 오는 사람, 섶과 땔나무를 매고 오는 사람, 누룩을 지거나 이고 오는 사람, 쌀자루를 짊어지고 오는 사람, 곶감을 안고 오는 사람, 종이 한 권을 끼고 오는 사람, 짚신을 들고 오는 사람, 미투리를 가지고 오는 사람, 큰 노끈을 끌고 오는 사람, 동이와 시루를 짊어지고 오는 사람, 돗자리를 끼고 오는 사람, 나뭇가지에 돼지고기를 꿰어 오는 사람, 강정과 떡을 들고 먹고 있는 어린아이를 업고 오는 사람, 병 주둥이를 묶어 휴대하고 오는 사람, 짚으로 물건을 묶어 끌고 오는 사람, 버드나무 상자를 지고 오는 사람, 광주리를 이고 오는 사람, 바가지에 두부를 담아 오는 사람, 사발에 술과 국을 담아 조심스럽게 오는 사람, 머리에 인 채 등에 지고 오는 여자, 어깨에 무엇을 얹은 채 어린아이를 이고 오거나 머리에 이고 다시 왼쪽에 물건을 낀 남자, 치마에 물건을 담고 옷섶을 잡고 오는 여자, 서로 만나 허리를 굽혀 절하는 사람, 서로 이야기를 나누는 사람, 서로 화를 내며 발끈하는 사람, 손을 잡아끌어 장난치는 남녀, 갔다가 다시 오는 사람, 왔다가 다시 가는 사람, 갔다가 또 다시 바삐 돌아오는 사람, 넓은 소매에 자락이 긴 옷을 입을 사람, 저고리와 치마를 입은 사람, 좁은 소매에 자락이 긴 옷을 입는 사람, 소매가 좁고 짧으며 자락이 없는 옷을 입는 사람, 방갓에 상복을 입은 사람, 승포와 승립을 한 중, 패랭이를 쓴 사람 등이 보인다.

여자들은 모두 흰 치마를 입었는데, 혹 푸른 치마를 입은 자도 있었고, 아이로서 의대를 갖춘 자도 있었다.

남자가 머리에 쓴 것 중에는 자주빛 휘향(주: 방한모)을 착용한 자가 열에 여덟 아홉이며, 목도리를 두른 자도 열에 두셋이었다.

패도(佩, 주: 칼집이 있는 작은 칼)는 어린아이들 역시 차고 있었다.

서른 살 이상 된 여자는 모두 검은 조바위[黑帽]를 썼는데, 흰 조바위를 쓴 이는 상중에 있는 사람들이다. 늙은이는 지팡이를 짚었고, 어린아이는 어른들의 손을 잡고 갔다.

행인 중에 술 취한 자가 많아, 가다가 엎어지기도 하고 급한 자는 달려갔다. 아직 다 구경을 하지 못했는데, 나무 한 짐을 짊어진 사람이 종이 창밖에서 담장을 정면으로 향한 채 쉬고 있었다.

나 또한 궤안에 의지해 누웠다. 세모(歲暮)인 터라 저자가 더욱 붐비고 있다.]

 


 

3백 년 전통을 가진 합천 삼가시장 저작물은 공공누리 출처표시+변경금지 조건에 따라 이용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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