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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마음 밭을 가꾸는 독서의 힘

 교실에서 아이들과 정신없이 하루하루를 지내다보니 어느새 한 해의 절반을 살았습니다. 새 학년을 시작할 때의 설렘보다 방학을 기다리는 설렘이 더 커지는 때입니다. 학생이나 선생님이나 같은 마음이겠지요.

 저는 초등학교 6학년 아이들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참 순수하고 맑은 아이들입니다. 천진하면서도 어른스러우며 누구보다도 사랑스럽습니다. 서툴지만 노력하는 모습이 아름다운 아이들입니다. 이런 아이들을 만날 수 있게 된 것에 매일 감사하고 있습니다.

 우리 반 아이들은 아침 활동 시간에 독서를 합니다. 물론 줄넘기도 하고 글짓기도 하지만 대부분 독서를 합니다. 수업을 하고 남는 자투리 시간에도 독서를 합니다. 아이들이 진지한 표정으로 책을 읽는 모습을 보면 기특하고 대견합니다. 머리에는 까치집을 얹고 눈곱도 다 떼지 않은 부은 눈을 꿈쩍이며 집중하는 모습이 참으로 귀엽습니다.

 지금은 이렇게 독서를 곧잘 하지만, 몇 달 전만 해도 아이들은 책을 읽자고 하면 입이 불뚝 나와서는 책을 읽는 시늉만 하였습니다. 그리고 절반 이상의 학생들이 만화책만 보았습니다. 만화책을 보는 것도 글은 대충 보고 그림만 넘겨보는 식이었습니다. 물론 흥미로운 줄거리와 그림을 통해 아이들이 배움을 얻을 수 있다면 만화책도 훌륭한 독서 자료가 될 것입니다. 그러나 아이들은 만화책에 익숙해진 나머지 글자가 많은 책을 읽는 것을 불편해 하고 부담스러워 했습니다. 초등학교 6학년이라면 긴 글도 참아내며 읽고, 그 속에서 배움과 흥미를 찾을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저는 그 모습을 보며 많이 안타까웠습니다. 그래서 아이들에게 시간이 날 때마다 책을 조금씩 읽고 독서 감상문을 간단히 쓰자고 제안했습니다.

 처음으로 독서 기록장을 검사하는 날, 아이들이 쓴 글을 보면서 ‘이거 정말 큰일이구나’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글씨는 삐뚤빼뚤 엉망인 데다가 맞춤법을 틀리는 것은 기본이고, ‘감상문’임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생각이나 느낌은 전혀 없이 이야기의 줄거리만 두서없이 나열되어 있었습니다. ‘흥부와 놀부(동화)를 읽고’라는 제목을 보았을 때에는 순간 ‘아!’ 하고 정신이 아득해졌습니다.

 저는 어릴 때에 부모님의 맞벌이로 집에 혼자 있는 시간이 많았습니다. 요즘 아이들처럼 학원을 다니거나 스마트폰을 가지고 놀 수 있는 것도 아니어서, 집에 혼자 있는 동안 할 수 있는 일은 책을 읽는 것뿐이었습니다. 한 시간에 한 권씩 책을 읽었습니다. 나중에는 더 이상 읽을 책이 없어서 읽었던 책을 네 번, 다섯 번씩 읽었습니다. 

 저는 이렇게 독서를 통해 얻은 힘이 지금의 저를 지탱해주고 있다고 믿습니다. 그래서 우리 아이들도 책을 꼭 읽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자극적인 시각 이미지에 익숙해진 요즘 아이들은 아마 글을 읽는 것이 불편하게 느껴질 것입니다. 하지만 참고 읽어내는 과정에서 아이들은 인내를 기를 것이며 배움을 얻을 것이고 그 속에서 재미와 감동을 찾을 것입니다.

 여느 때와 다름없는 수업 시간이었습니다. 국어 수업이 생각보다 빨리 끝나서 10분 정도의 여유 시간이 생겼습니다. 아이들에게 독서를 하자고 권유했습니다. 그 때 몇 명 아이들이 손을 번쩍 들더니 말하더군요. ‘선생님, 학원 숙제 해도 되나요?’ 라고요.

 학원에서 숙제로 내어준 수학 문제를 푸는 것, 영어 독해를 하는 것도 좋은 공부라고 생각합니다. 그렇지만 저는 아이들이 책 속의 세상에 온전히 몰입할 수 있는 시간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독서는 아이들이 더 잘 배울 수 있도록 힘을 실어 줄 것이며 아이들의 감성을 자라게 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바쁘게 돌아가는 일상 속에서 아이들의 마음은 자꾸만 메말라 갑니다. 같은 식물이라도 비옥한 토양에서 자란 것은 더 건강하고 윤이 나듯이 새싹 같은 우리 아이들에게도 비옥한 마음 밭이 필요합니다. 지금 아이들의 마음 밭에는 마른 먼지만 풀풀 날리는 것 같습니다. 이런 아이들의 마음 밭에 거름이 될 독서가 절실한 때입니다.

 다가오는 4차 산업 혁명 시대에는 수학 공식을 외워 계산하고 사회 교과서의 내용을 기계처럼 암기하며 영어 문장을 낱말 단위로 쪼개어 해석하는 일은 아마 그 누구도 중히 여기지 않을 것입니다. 인간이 해왔던 대부분의 일들을 로봇이 대신하고 오히려 로봇이 인간을 능가하는 날이 올 것입니다. 이 때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바로 생각하는 힘, 소통하는 힘, 그리고 공감하는 힘입니다. 우리 아이들은 독서를 통해 이러한 힘을 얻을 수 있을 것입니다.

 요즘 아이들, 스마트폰 때문에 부모님과 선생님으로부터 잔소리를 많이 듣고 있을 것 같습니다. 이 아이들의 손에서 스마트폰을 빼앗는 것으로 끝날 것이 아니라, 그 손에 책 한권을 쥐어주는 것이 어떨까 생각합니다. SNS 보다 재밌고, 게임 보다 짜릿한 독서의 매력을 느끼도록 해야 합니다.

 나비의 날갯짓이 저 멀리 바다 건너 폭풍우를 일으키듯, 독서의 힘은 점점 커지고 커져서 우리 모두의 환상적인 미래를 만들어낼 것입니다. 내일은 아이들과 함께 저도 아침 독서를 하며 하루를 시작하려고 합니다. ‘선생님은 왜 책 안 읽어요?’라는 우리 반 아이의 깜찍한 질문에 속이 뜨끔하여 읽다 만 책 한 권을 핸드백 깊숙이 집어넣어 봅니다.  

경남이야기 칼럼 마산 중리초등학교 교사 정지영
 

마음 밭을 가꾸는 독서의 힘 저작물은 공공누리 출처표시+변경금지 조건에 따라 이용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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