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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통 사람들의 찬란한 역사》이인성
2023-10-18
《보통 사람들의 찬란한 역사》이인성

이인성, 낚시, 1932년경, 종이에 색, 7.5×36cm, 개인소장

이인성, 팔공산, 1930년대 중반, 나무에 유채, 24.3×33.5cm, 개인소장

 

 

이인성(대구, 1912-1950)은 1929년 조선미술전람회에서 <그늘>로 입선하며 화단에 데뷔하였습니다. 이후 1944년까지 거르지 않고 출품하였고 1937년부터는 추천작가로 선정되었습니다. 1930년 서동진(1900-1970)이 주도하는 미술 단체인 향토회1)에 들어가 활동하였습니다. 이후 대구 유지들의 도움으로 일본으로 건너가 킹 크레용 회사에서 일하며 일본 태평양미술학교에서 미술을 배웠고 제국미술전람회, 광풍회, 레이튼상 등 여러 공모전에서 입상하며 실력을 인정받았습니다. 1936년 대구에 ‘이인성양화연구소’를 개설하여 후진을 양성하였고 1949년 제1회 대한민국미술전람회에 서양화부 심사위원으로 추대되었습니다.

 

이인성은 일제강점기에 뛰어난 재능을 보이며 ‘천재 화가’라 불렸던 한국 근대미술을 대표하는 화가입니다. 초기 대구에서 활동하던 때는 그의 예술 형성의 중요한 토대가 되었던 시기로, 근대화되고 있는 주변 도시풍경을 소재로 인상주의적 요소가 강하게 드러나는 풍경수채화를 주로 그렸습니다. 이후 일본에서 새로운 재료와 다양한 서구 미술 사조를 접하며 보이는 대상을 그대로 재현하기보다는 재구성하였고, 전통적인 원근법에서 벗어나 자유로운 구도와 필치를 사용하였습니다. 또한 풍경화뿐만 아니라 정물화, 인물화 등 다양한 소재를 다뤘으며, 밝은 원색을 사용하고 작은 터치로 경쾌한 분위기를 살렸습니다. 후기에는 한국적인 것을 탐구하여 우리 주변의 일상적인 사물과 풍경, 한국인을 소재로 그림을 그렸고 강렬한 원색으로 조선 향토색2)1)을 표현하며 자신만의 독자적인 화풍을 형성하였습니다.

 

이인성은 팔공산을 좋아했고 그것을 소재로 즐겨 그렸습니다. 그에게 팔공산은 대구 지역의 풍토를 관찰할 수 있는 곳이자 계절에 따른 색감의 변화를 발견할 수 있는 장소였습니다. <팔공산>(1930년대 중반) 또한 옅고 짙은 푸른색과 붉은색이 함께 어우러지는 하늘과 그에 따라 변화하는 산의 색감을 화폭에 담았습니다. 이는 그의 초기작에서 나타나는 특징으로 시간대별로 변화하는 빛과 자연의 색감을 그대로 옮긴 것입니다. <낚시>(1932)는 이인성이 20살 때 그린 그림으로 동양화기법으로 그려진 작은 작품입니다. 빠른 필선으로 잔잔하게 일렁거리는 물결과 버드나무 가지가 바람에 한들거리는 모습, 한낮에 두 사내가 낚시에 몰두하고 있는 모습을 생동감 넘치게 표현하였습니다. 이인성은 수채화와 유화뿐만 아니라 우리 전통 회화에도 관심이 많았으며, 이후 향토색을 지향하는 그의 작품세계가 이른 시기부터 시작되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1) 향토회: 1930-1935년 대구에서 순수예술을 지향하는 화가들이 모여 결성한 미술 단체
2) 조선 향토색: 일제강점기 조선미술전람회의 아카데미즘. 조선의 민속적인 소재를 사용하거나, 동양의 목가적인 산천과 그 속에서의 삶을 자연주의적인 형식으로 표현한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