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야산국립공원 안에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된 장경판전과 세계기록유산에 이름을 올린 고려대장경(일명 ‘팔만대장경’)을 품고 있는 해인사가 자리한다. 사찰 자체의 사격만으로도 충분히 매력적이지만, 세계에 자랑할 만한 문화유산이 있어 1,200년의 역사를 간직하고 있어 언제나 여행자의 마음을 끈다.
해인사를 향해 가는 길목의 홍류동계곡의 풍경은 언제나 시선을 압도한다. 겨울에도 시원하게 흐르는 계곡물이 아름답고, 계곡 주위에 곧게 뻗은 나무들이 기골 장대한 장정을 바라보는 듯하다. 가야산의 진면목은 주차장으로 향하는 길의 중턱에서부터 본격적으로 드러난다. 해인사까지 오르는 약 3km의 길 내내 우거진 소나무가 돔처럼 지붕을 만들어준다. 속도를 늦추고 청량감을 만끽한다. 주차장에서부터 해인사 일주문까지 약 1km이다. 피톤치드가 치솟는 진짜 숲길이다. 갈림길에서 왼쪽으로 향하면 금강굴, 보현암, 산선암으로 향하나 그 길을 등지고 해인사로 오른다.
해인사에서 가장 유명한 것은 팔만대장경이지만, 그보다 먼저 눈길을 사로잡는 게 있다. 108평 넓이의 부지에 오도카니 솟아 있는 구(球). 완전한 깨달음과 참된 진리를 상징하는 성철스님의 사리를 모셔둔 사리탑이다. "선의 공간"이라는 이름으로 제작된 이 사리탑은 삼층계단 위에 반으로 갈라진 구, 그 위에 온전한 구가 올라가 있다. 사리탑 앞쪽의 비석거리에 해인사 사적비, 길상탑, 원경왕사비 등 20여 기의 공덕비가 세워져 있지만 사리탑이 가장 눈길을 끈다. 뛰어난 미적 감각으로 대한민국 환경문화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일주문을 거쳐 해인사의 실질적인 문인 봉황문을 바라보며 나아간다. 천 년 전 뿌리내린 고목들이 여전히 사찰의 입구를 지키고 있다. 봉황문 너머에는 또 하나의 문이 있다. 해탈의 세계로 들어가는 문이라는 의미인 해탈문이다. 이 문을 지나고서도 해인사의 몸통 부분에 도달하려면 한 차례 안쪽으로 들어가야 한다. 범종각, 구광루를 거치고 나니 비로소 정중삼층석탑과 석등이 모습을 드러낸다. 탑이 있는 곳에서는 예외 없이 탑을 중심으로 예배를 올리는 모습을 볼 수 있다. 해인사 정중삼층석탑은 불상을 모신 탑으로 9세기 통일신라 석탑의 전형이다. 언제나 많은 사람들이 탑을 돌며 예배를 올린다.
해인사는 팔만대장경을 봉안하고 있는 법보종찰이기 때문에 경내 어디서나 예배를 올리는 이들을 어렵지 않게 보게 된다. 비로자나불을 모신 대적광전은 특히 그러하다. 목조문수보살, 비로자나불, 목조보현보살과 함께 삼존불을 이루고 있는 대적광전은 해인사의 심장부에 해당한다. 커다란 현수막이 쳐진 외관, 분주하게 드나드는 보살들, 끊임없이 이어지는 방문객의 행렬로 그 열기가 전해진다.
발걸음을 옮겨 해인사의 수뇌인 팔만대장경을 향해 간다. 국보 제32호인 팔만대장경과 팔만대장경을 보관하고 있는 장경판전(국보 제52호) 모두 귀중한 문화유산이다. 장경판전이 있기에 팔만대장경이 존재할 수 있었다는 점에서 둘 사이에 작용하는 상호보완의 신비로움이 보는 이로 하여금 감탄을 금치 못하게 한다. 해인사에 처음 온 것은 아니지만, 실제로 팔만대장경을 마주하는 것은 실로 오랜만이어서 한껏 기대에 찼다. 그래서일까, 사진 촬영이 금지됐다는 사실은 기억해내지 못했다. 사진 촬영은 커녕 1m 가량 떨어진 곳에 설치해둔 창살 사이로 들여다봐야 하는데 말이다. 어쩔 수 없다. 멀리서나마 방대한 대장경을 눈에 담았다. 한 글자도 잘못 쓰거나 빠트림이 없는 완벽한 5,200여만 자의 글자들을 직접 확인하지 못하는 것이 아쉬울 따름이다. 눈에 보이는 것보다 마음으로 보는 것이 중요하다는 깨달음을 얻고 애써 발길을 돌린다.
마지막으로 북적이던 장경판전을 빠져나와 호젓한 학사대에 오른다. 해인사는 규모에 비해 건물이 빽빽해 경내가 다소 답답하게 느껴지기도 한데, 학사대에서는 그런 갈증을 대번에 해소할 수 있다. 해인사 내에서 가장 높은 자리에 위치한 덕이다. 팔만대장경을 보전하기 위한 장경판전의 과학적 설계를 가장 잘 내다볼 수 있는 곳도 바로 이곳이다. 신라 말기의 문장가이자 학자였던 최치원도 이곳에서 글을 지었다 하지 않나. 당시 거꾸로 꽂아둔 전나무 지팡이는 이제 천년고목이 되어 여행자의 쉼터가 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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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수정일 : 2018-10-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