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메뉴바로가기
전체메뉴 닫기
경남명소
메인으로 이동메인으로 이동

문화관광

거제 포로수용소유적공원

거제 포로수용소유적공원의 파일 이미지

거제 포로수용소유적공원의 파일 이미지

기본정보

0
  • 주소경상남도 거제시 계룡로 61  길찾기
  • 관리기관거제해양관광개발공사
  • 문의전화055-639-0625
  • 편의시설
    장애인편의시설 놀이시설 수유실 유모차 자전거 와이파이
  • 홈페이지 홈페이지 바로가기

상세내용

거제도 포로수용소는 거제시 고현동 고현리에 위치했으며 한국전쟁 후 1950년 11월에 만들어졌다. 공산포로 수용을 목적으로 만들어진 거제 포로수용소는 북한군 포로 15만, 중공군 포로 2만으로 최대 17만 3천여명의 포로를 수용했던 그 놀라운 규모에 걸맞게 많은 아픈 상처를 쓰다듬고 있는 곳으로 300여 명의 여자 포로도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 이 수용소에서는 친공포로와 반공포로간의 반목이 극심하여 서로간 구타와 살인사건이 빈번히 발생했고, 마침내 1952년 5월 7일에는 수용소 사령관 도드(Francis.T.Dodd) 준장이 포로들에게 납치되어 4일 만에 석방되는 웃지 못 할 사건이 발생했다. 도드 준장은 납치된 지 4일 만에 석방됨으로써 전세계가 주목하였던 이 폭동은 일단락되었으며 1953. 6. 18에는 이승만 대통령이 반공포로 27,389명을 석방시켰고, 이어 1953. 7. 27 휴전협정 조인으로 수용소는 폐쇄되었다.
이 시설은 1983년 12월 경상남도 문화재 자료 제99호로 지정 보호되고 있으며 고현종합 고등학교와 고현중학교 사이에 있는 경비중대 막사 잔해가 있던 곳에 포로수용소 유적공원으로 조성하였으며 이공원은 25,916평의 대지위에 전시관 17동, 막사재현 14개동으로 그 당시의 사진과 장비 및 의복 등을 수집 전시하고 있으며, 6.25동란과 포로수용소에 대한 영화도 부분적으로 제작 상영하고 있다. 이곳에서 가슴 아픈 우리의 역사를 느낄 수 있으며 산 교육장으로 활용되고 있다.
2001년6월에는 배창호감독의 영화 흑수선을 이곳 포로수용소와 인근 구천분교 등지에서 촬영을 하였다.

규모
부지면적 : 85,664㎡ (25,916평)
전시면적 : 전시공간 3,045㎡ (17동)
전시규모 : 막사재현 4,438㎡, 무기 및 장비 전시
6.25전쟁 당시 포로수용소가 있던 자리가 포로수용소 유적공원으로 변신했다. 거제도 포로수용소는 1950년 6월 25일 한국전쟁에 의한 포로들을 수용하기 위해 1951년 2월부터 거제도 고현, 수월 지구를 중심으로 설치됐다. 1951년 6월 말까지 인민 포로 15만 명, 중공군 포로 2만 명 등 최대 17만3천 명의 포로를 수용했다. 그중에는 300여 명의 여자 포로도 있었다. 수용소에서는 반공포로와 친공포로 간에 유혈살상이 자주 발생했고, 1952년 5월 7일에는 수용소 사령관 돗드 준장이 포로들에게 납치되는 등 냉전시대 이념갈등이 그대로 나타나기도 했다. 지난 1983년 12월에 경상남도 문화재 자료 제99호로 지정 보호되고 있다.
60년이 지났지만 그곳은 여전히 아프고 쓰리고 버겁고 견디기 힘든 과거를 우리들에게 던져준다. 그나마 ‘세월’이 그만큼 지나서 그 아픔이 덜할 뿐이다. 전쟁이 뭔 줄 몰라도 거제도 포로수용소 유적공원에는 아픔을 각오하고 들어가야 제대로 봤다 할 수 있는 곳이니, 이런 아니러니가 어디 있겠는가.

한국판 크리스마스의 기적
거제도 포로수용소 유적공원에 들어서면 처음으로 만나는 곳이 분수광장이다. 이곳은 6.25전쟁 참전 16개국의 국기와 유엔기가 게양되어 있다. 세계 각국의 신기한 국기가 걸려서 인지 관광객들의 포토존이기도 하다. 좌측으로 발길을 돌리면 흥남철수작전기념비가 보인다. 이곳에서 유명한 흥남철수 당시 상황을 사진을 통해 자세히 알 수 있다. 눈보라 휘날리는 바람찬 흥남부두에 ~로 시작하는 노랫말처럼 193척의 배가 흥남부두에서 철수를 시작한 것은 1950년 12월 23일. 그중 가장 드라마틱한 배가 바로 메르디스 빅토리호다. 메르디스 빅토리호는 항공유를 실어 나르는 상선이었다. 정원 69명이 타는 배에 우여곡절 끝에 1만4천 명의 피난민이 오르게 됐는데, 앉지도 못하고 모두 서서 이틀 동안의 항해를 했다. 배는 24일 부산에 정박했으나 사람들이 내릴 상황이 아니어서 거제도 장승포에 사람을 내려놓게 됐다. 이때가 12월 26일. 사람들이 이를 크리스마스의 기적이라고 부른다. 하선한 사람 수는 1만4천5명. 어찌된 영문일까? 승선한 사람은 1만4천명인데, 하선한 사람이 1만4천5명이라니? 그 이유는 배 안에서 태어난 아이가 5명이어서다. 메레디스 빅토리 호는 단일 선박으로 가장 큰 규모의 구조 작전을 수행한 배(the greatest rescue operation ever by a single ship)로 기네스북에도 올랐다.
탱크전시관은 북한군의 선봉에 섰던 242대의 소련제 T-34 탱크 모형 속에서 한국전쟁 및 포로수용소의 역사적 현장 속으로 시간여행을 할 수 있다. 당시 좌우 세계 지도자들의 상이 좌우로 전시되어 있다. 워커 준장은 아들과 함께 참전했으나 차량 전복사고로 사망했던 워커 준장모습도 보인다.
디오라마관은 국내 최고의 단일 디오라마관으로 거제도 포로수용소의 배치상황, 생활상, 폭동 현장이 생생하게 재현되어 있다. 당시 영상물과 재현 모형으로 포로수용소를 보여준다. 좀 으스스하다. 8미터까지는 모형을, 그 이후의 모습은 그림으로 그렸다. 어디까지가 모형인지 어디부터가 그림인지 구분하기 쉽지 않다. 약 3만에서 4만 명에 이르는 사람이 수용소 안에서 죽었다. 친공포로는 반공포로를, 반공포로는 친공포로를 서로 죽인 것이다. 돗트 준장이 포로들에게 납치되는 일이 벌어지는 모습도 그림으로 그려져 있다. 돗트 준장 납치 사건 이후 친공포로와 반공포로를 구분했다. 폭로들 간 막사를 습격하는 일이 벌어져 하루에 300명의 사상자가 발생하는 일도 있었다고 한다.
탐방로는 6.25역사관, 대동강 철교, MP다리, 포로생활관으로 이어진다. 포로생활관은 포로들의 생활상을 보여주는데, 당시 포로들은 초등학교 교육과정을 배우기도 하고, 권투는 물론 취미생활과 함께 직업훈련도 받았다. 미싱, 구두수선 등 직업교육 중 가장 인기 있었던 것은 농사짓기였다고 한다.


전쟁포로들의 생활상을 한눈에
포로생활관을 지나면 야외공연장, 포로 생포관, 포로 수송, 기념촬영코너, 여자포로관에 이른다. 여자포로관은 당시 수용됐던 300명의 여자 포로들 생활상을 볼 수 있다. 여자포로들은 소요와 난동의 주범이었다. 여자포로들은 야전병원에서 일을 했는데, 그때 주워들은 이야기는 모두 북한으로 보고됐다. 유엔군들은 여자포로들을 호랑이 같은 여자라고 불렀다. 남자포로수용소와 다른 것은 칸막이 화장실이 있었다는 것 뿐. 그 외 생활은 남자들 생활과 다른 것이 없었다.
포로폭동체험관은 포로수용소에서 벌어졌던 친공포로들의 폭동과 친공, 반공 포로들 간의 격돌장면이 최첨단 복합연출 기법으로 재현되어 긴박감과 위기감을 생생하게 느낄 수 있다. 임산부나 심약자는 이곳에 들어가지 않는 것이 좋다. 그만큼 무섭다. 전시된 철조망곤봉은 철조망을 뜯어낸 만든 곤봉으로, 실제 사용되던 무기였다고 한다.
포로설득관은 남한으로 갈지, 북한으로 갈지, 아니면 제3국을 선택할지 묻는 공간을 전시했다. 북한으로 갈 포로들은 친공포로들은 부산으로 가서 열차를 타고 북으로 갔다. 이 기차 역시 전시돼 있다.
포로수용소 유적관은 포로수용소에 대한 각종 기록물과 영상자료, 포로들의 이송·수송·투쟁·송환과 각종 사건에 대한 실물기록에 의한 실증적인 박물관이다. 열 네 살짜리 최연소 포로를 비롯해서 전쟁에 사용된 무기도 전시돼 있다. 포로들이 떠난 이후 수용소에서 발견된 그림 열 점도 전시되어 있다.

연관태그

지도

지도안 선택한 장소입니다.

인근 관광지

거제 포로수용소유적공원 저작물은 자유이용을 불가합니다.

거제 포로수용소유적공원 저작물은 자유이용을 불가합니다.

목록
  • 담당부서 : 관광개발국 관광정책과  
  • 연락처 : 055-211-6051

최종수정일 : 2018-10-20

top버튼.
방문자 통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