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속도로를 몇 번이나 갈아타고 도착한 사천시 삼천포항. 한참을 내달려 와서 만난 바다는 한없이 아름답다. 푸른 파도 넘실대는 바다와 그 속에 점점이 박힌 섬들의 풍경. 물살 빠른 해협에는 죽방렴이 걸려 있다. 섬과 바다, 길과 하늘 무엇 하나 버릴 것 없는 풍경이 펼쳐진다.
삼천포에 와서 멋진 해안 경관과 드라이브의 재미를 접하지 않는 것은 앙꼬 없는 찐빵을 먹는 거나 매한가지다. 삼천포항에서 선진리성까지 이어지는 실안해안도로는 호수같이 잔잔한 사천만의 아름다움과 사의 현장까지 두루 갖췄다. 특히 노을 지는 해질녘이면 영화 속의 주인공의 느낌을 받을 만큼 너무도 아름답다.
실안해안도로를 따라가는 여정은 삼천포대교 아래에서 시작한다. 삼천포대교 아래 대교공원에 일몰이 아름다운 거리 이정표가 있으니 찾기 쉽다. 공원 주차장에 커다란 거북선이 놓여 있다. 바다도 아닌 주차장에 왠 거북선?, 해안도로와 거북선이 어떤 관계가 있나? 느닷없이 출현한 거북선의 등장이 의아하기만 하다. 궁금증이 해소 된 건 실안해안도로를 조성한 이유를 알고 난 후다. 임진왜란 당시 이순신 장군이 최초로 거북선을 출전시킨 곳이 사천해전이다. 사천해전의 승전을 주제로 바닷길을 조성한 것이 실안해안도로인 것이다.
본격적인 해안 드라이브를 하기 전에 발길을 잡아 두는 건 삼천포대교다. 섬과 육지를 연결하는 기능 외에도 범선의 돛대처럼 바다 위를 가로지른 다리의 운치가 뛰어나다. 미국 샌프란시스코의 금문교를 축소시켜 놓은 듯한 자태가 매력적이다. 삼천포대교가 빛을 발하는 시간은 해가 진 후다. 사위가 서서히 어둠에 잠길 때 삼천포대교는 오색의 조명으로 치장하고 반짝인다. 밤이 되면 바다 위에 하나, 바다 속에 비친 다리 하나. 그렇게 삼천포대교는 둘이 되어 빛난다.
삼천포대교를 뒤로 하고 길을 달리니 이내 바다 한 가운데 나무 말뚝을 박아둔 게 보인다. 죽방렴이다. 죽방렴은 조류를 이용해 물고기를 잡는 원시어장이다. 말뚝을 조류가 흐르는 방향에 맞춰 V자로 벌려두고 끝에 원통형 대발을 설치한다. 거센 물살을 이기지 못하고 힘을 잃은 물고기가 대발에 모이게 한 것이다. 우리나라 바다 물살이 가장 센 곳은 해남과 진도 사이의 울돌목이고, 그 다음으로 물살이 센 곳이 삼천포 대교가 있는 사천 앞바다다. 그렇기에 이곳에서 죽방렴을 볼 수 있는 것이다.
죽방렴은 텅 빈 바다를 치장한 액세서리 같다. 바다 위로 들쭉날쭉 튀어 나온 긴 장대가 신기하다. 밋밋하던 바다가 어쩐지 풍성해 진 느낌이다. 바다에 들어갈 수 없어 어떻게 고기를 잡는지 구경할 수 없는 게 아쉽다. 해질 무렵이면 해와 바다, 그리고 죽방렴이 어우러져 멋진 낙조를 만들어낸다. 실안낙조는 사천8경의 하나로 빼놓아서는 안 되는 풍경이다.
길은 언덕을 넘고, 마을을 지나도 바다 곁은 떠나지 않는다. 때론 굽이굽이 돌아가기도 하고, 비행기 활주로처럼 곧게 뻗기도 한다. 처음에는 죽방렴도 보이고, 나룻배도 보이는 아기자기한 풍경이던 것이 사천대교에 이르러서는 뻥 뚫린 시원한 풍경으로 변한다. 눈에 거슬리는 것 하나 없다. 다리도 직선이고, 길도 직선이다. 그 옆 바다는 넓다.
직선으로 뻗은 도로는 종포에 이르러 다시 굽어진다. 마을을 휘돌아 잠시 좁은 길을 지나면 다시 넓어지면서 선진리성으로 이어진다. 선진리성은 실안해안도로가 숨겨 놓은 비밀병기다. 성이라지만 거창하지는 않다. 바다와 가까운 지리적 이점 때문에 고려시대부터 조창이 설치되어 주변에 쌓은 토성이다. 임진왜란 때 사천 지역을 장악한 왜군이 조창 터에 돌로 성을 쌓으면서 왜성으로 많이 알려져 있다.
사실 선진리성에서 특별한 무엇을 기대하기는 어렵다. 공원으로 정비되어 돌을 가지런히 쌓아 올린 성이 잘 남아 있을 뿐이다. 성벽은 높지 않다. 봄이면 성내 1천여 그루의 벚꽃이 만개해 은백색의 물결 사이로 사천 바다가 출렁이며 장관을 이룬다지만, 불행히도 봄은 아직 멀리 있다. 그럼에도 선진리성에 들르게 되는 것은 이순신 장군 때문이다. 이순신 장군은 선진 앞 바다에서 거북선을 등장시키며 왜선 13척을 침몰시키는 승리를 거뒀다. 역사는 이를 사천해전이라 적고 있다. 세계 해전사에 길이 남을 명장으로 꼽히는 이순신 장군과 그가 심혈을 기울여 제작한 거북선이 첫 선을 보이며 전투에서 승리를 거둔 곳이기에 의미가 깊다. 성벽에 올라서서 잠시 바다를 바라보며 돌격하라! 발포하라!를 목청껏 외쳤던 이순신 장군의 모습을 그려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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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수정일 : 2018-10-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