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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험&탐방

[체험&탐방]동네책방 순례 ① 김해 숲으로 된 성벽

책이 건네는 따뜻한 위로

 


책을 가까이하는 사람에겐 향기가 있다. 같은 말을 해도 구사하는 어휘와 어투가 다르고, 세상살이를 판단할 때도 지혜롭다. 선선한 가을, 도서관이나 서점으로 향하는 사람이 늘어나겠다. 사람이 좀 더 사람답게 살기를 바라고, 더불어 사는 공동체가 좀 더 나은 방향으로 나아가길 원하는, 선한 사람들의 발걸음이다. 수년 전부터 동네책방이 늘어가는 것도 그런 맥락이다. 대형서점이나 인터넷서점과는 또 다른 정취가 있고, 다양한 책 세계를 만날 수 있다. 경남은 동네책방이 적은 편이다. 서울은 300여 개, 제주나 부산시는 100여 개 정도라고 한다. 경남의 동네책방이 활성화되기를 바라면서 발길 닿는 대로 순례해본다. 

박정희  사진 김정민

 

 

오랜 세월 동네책방 사랑, 2018년 문 열어

숲으로 된 성벽은 김해시 관동동에 있다. 팔판마을과 율하 신도시 사이다. 주변에 카페가 더러 있다. 율하천 따라 율하 신도시 쪽으로 가면 율하 카페거리가 있고, 이곳은 관동 카페거리로 불린다. 동네 입구에 들어설 때부터 어쩐지 기분이 좋아진다.

붉은 벽돌 사이 동네책방문구가 선명하다. 길쭉하고 단정한 나무 화분, 갖가지 화초들이 수문장 같다. 문을 열고 들어가 본다. 장덕권(55)·전현주(51) 씨 부부가 반긴다. 동네책방이라기엔 널찍하다. 색감은 약간 노란 느낌. 책방지기를 닮은 듯 깨끗하고 단정하다. 천장에 매달린 헌 책을 이용한 조명이 따뜻하다.

평소에는 장덕권 대표가 책방을 지킨다. 장 대표는 직장을 다니다 퇴직 후 책방지기가 됐다. 전현주 씨는 다른 직장이 있다. 동네책방만 운영해서는 경제적인 해결이 안 되어서다. 그래서 다른 지역 동네책방 중에는 카페를 겸하는 곳도 있다. ‘숲으로 된 성벽지기는 그러고 싶지 않았다고 했다. 그렇게 되면 책보다 커피 파는 카페가 더 돋보여 주객이 전도되는 탓이란다.

국문학을 전공했어요. 오랜 세월 책방을 꿈꿨지요. 다른 지역 책방을 구경하러 많이 다녔어요. 해외여행 가면 동네책방을 꼭 가봤죠. 제주에 가면 오름과 책방을 하루 한 군데씩 찾아다니며 언젠가 우리도 책방을 내야지 했어요여기 인테리어도 많은 곳을 보고 참고한 결과물이에요. 3년 전 간절히 원하던 걸 이뤘어요.”

부부는 닮는다. 아내의 꿈은 오랜 세월 남편에게 전이됐고, 201812월 책방을 열기에 이른다

문학도 아내는 공대생 남편이 좋았으나 딱 하나 책을 많이 읽지 않는 게 불만이었다고 한다. 이젠 그마저도 사라졌다. 책방을 열면서 남편은 서서히 책으로 빠져들었다. 아내는 남편의 분위기가 달라졌다고 했다. 부부는 서로를 보며 자주 웃는다. 책방이 온화한 느낌이다.

 

 

기형도 시인의 시 제목을 딴 책방 이름

숲으로 된 성벽이라는 책방 이름은 기형도 시인 팬이었던 전현주 씨가 붙였다. 요절 시인 기형도는 당시 시대의 아이콘이었다. 정문으로 들어가면 오른편도 기형도 시인의 숲으로 된 성벽시가 걸려있다. 동네책방은 나름대로 주제가 있는 편인데, 이 책방은 문학, 그중에서도 가 주제다. 시집만 모아놓은 책장이 별도로 있다. 노란 책장에는 300여 권의 시집이 꽂혀있다. 시집 책장 옆에는 칠판이 있다. 매주 2회 좋은 시를 써 놓는다. 다른 책장에는 소설 500권과 에세이, 여행, 힐링, 사회과학, 예술, 어린이 등 다양한 장르의 책이 있다. 수험서는 없다. 동네책방은 대형서점과 달리 팔고 싶은 책만 주문하기 때문에 1권씩 밖에 없다. 대형서점처럼 서서 보다가 그냥 덮어두고 나가는 건 사실상 어렵겠으나, 빤하지 않은 책을 만날 수 있고, 책모임 정보도 얻을 수 있다. 어떤 책을 살지 모르는 이에겐 친절하게 추천도 해준다. ‘나 자신에게 선물하고 싶다며 찾는 이들도 더러 있다. 자신을 위로하고픈 사람들이다.

 

 


 

 

문학이 주는 감동과 위로의 힘공유하고파

책방에는 15명 정도 책모임을 할 수 있는 공간이 있다. 책방에서 책모임을 운영하기도 하고 외부 책모임에 빌려준다. 작가를 초빙해 강연을 성황리에 열기도 했다. 책모임도, 강연도 지난해부터는 뜸하다. 코로나19 때문이다. 동네책방도 코로나 타격이 크다. 이곳 책방 손님 층은 70~80%40~50대 여성이다. 율하 주민인 셈이다. 하지만 코로나 상황으로 어떤 날은 한 사람도 오지 않을 때도 있다.

난감할 법도 하지만 그래도 책방지기는 조급해하지 않는다. 지자체에서 공공도서관 도서구입형식으로 지원해주는 게 그나마 위안이 되고, 동네책방끼리의 연대도 힘이 된다. 문 앞에 붙여진 ‘buy book, buy local’ 문구는 전국 동네책방 네트워크의 캠페인이다. 책을 사고 싶다면 동네책방을 이용하자는 취지다. 책방지기는 무엇보다 지금의 삶에 만족한다. 경제적으로 다소 어려워도 창 건너로 보이는 사계절의 변화를 보자면 시름이 덜어지고 위안이 되면서 행복감에 젖는다고 한다. 2월엔 매화꽃 만발하고, 3월 말부터는 율하천 따라 벚꽃이 흐드러진다. 단풍나무, 회화나무의 운치는 말할 것도 없다. 책방지기가 행복하니 책을 사러 오는 손님은 행복도 덤으로 살 수 있겠다.

문학이 소외되는 시대입니다. 문학이 얼마나 사람들에게 위로가 되는지 잘 모르는 것 같아서 알리고 싶었어요. ‘책이 건네는 따뜻한 위로라는 문구로 저희 책방을 알리는 것도 그런 이유예요. 시와 소설에는 그런 힘이 있습니다. 인스타그램, 블로그 등 SNS 덕분에 전국에서 동네책방 투어를 하시는 분도 더러 오시지만 더 많은 분들이 문화사랑방이다 생각하고 찾아오셨으면 좋겠습니다. 오다가다 들러주세요.”

 

 


 

숲으로 된 성벽


위   치   김해시 덕정로204번길 6

운   영   오전 10~오후 9, 매주 화요일 휴무

연락처   010-8026-27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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