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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 이맛!

[음~ 이맛!] 은빛 봄바다가 맛있다!

멸치회 & 멸치쌈밥

 


 

멸치의 백미는 봄 멸치다. 가장 맛있다. 산란을 앞두고 통통해진 봄 멸치는 제법 바닷고기다운 덩치를 자랑한다. 볶음과 젓갈, 육수, 액젓 등으로 변신한 채 식탁에 오르던 멸치는 봄이 되면서 밥상의 주인공이 된다. 은빛 찬란한 봄바다의 전령사, 싱싱한 멸치 밥상을 소개한다.

 

나도 생선대접받는 봄 멸치

멸치(蔑治)는 늘 억울하다. 육수와 젓갈로 음식 맛을 낼 때는 감초 같은 식재료이지만 작다고, 먹을 게 없다고 무시당한다. 그래서 이름도 업신여길()자를 썼다. 음식 좀 한다는 주방에는 필수품이고, 어떤 물고기와 견주어도 뒤지지 않을 만큼 영양가가 높은데도 말이다.

억울한 멸치가 나도 생선이라며 보란 듯이 상한가를 치는 때가 있다. 바로 지금 같은 봄이다. 4월부터 6월경까지 산란기인 멸치는 회를 뜰 수 있을 정도로 몸체가 커진다. 그래봐야 길이 10~15cm 정도지만, 7cm가 넘으면 대멸로 치는 멸치계의 거물로 자란다.

봄 멸치는 맛도 풍성하다. 멸치는 본래 단백질이 많고 칼슘 함량이 높은 것으로 유명한데, 봄철에는 지방이 끼면서 고소하고 부드러운 식감을 내는 횟감이 된다. 혀에 감기는 보들보들한 맛은 밑반찬거리로 맛보던 딱딱함과는 차원이 다르다.

사철 잡히는 멸치라고 해서 언제든 생멸치를 맛볼 수 있다면 봄 멸치가 귀한 줄 모를 것이다. 4~6월에 잡히는 멸치만 날것으로 먹을 수 있다. 7월부터는 뼈가 드세지면서 날로 먹기에는 부담스러워진다

또 성질이 급해서 잡히자마자 금세 죽어버리므로 기온이 오르면 싱싱한 날것으로 식탁에 올리는 데 무리가 있다. 그래서 여름 이후 잡히는 멸치는 마른멸치로 쓴다.

 

남해 미조항 54~6일 멸치축제

멸치하면 남해 죽방렴 멸치를 최고로 친다. 흠 하나 없이 매끈하고 빤닥거리는 은빛 죽방렴 멸치는 사실 오늘 얘기하는 봄 멸치라고 할 수 없다. 사철 잡기는 하지만 비싼 탓에 날로 먹는 횟거리나 찌개거리로 쓰이지 않는다.

봄 멸치의 산실은 남해군 남단의 미조항이다. 멸치잡이배로 북적거리는 미조항은 멸치를 그물에서 털어내는 진풍경이 펼쳐지는 곳이기도 하다. 어부들은 우박처럼 떨어지는 멸치 때문에 우비를 입고 그물을 턴다. 박자를 맞춰 움직이는 어부들의 몸놀림과 그물에서 떨어져 공중에 흩어지는 멸치떼가 미조항을 봄 축제장으로 만든다.

대멸잡이가 절정에 이르는 5월에는 진짜 축제도 열린다. 올해는 54~6보물섬 미조항 멸치바다축제가 미조항 북항 일원에서 열린다. 축제기간에 맞춰 방문하면 남도 바다의 봄이 무르익어가는 풍경을 원 없이 즐길 수 있다. 멸치털이 광경을 직접 볼 수 있는 기회이기도 하다.

 



새빨간 회무침 보기만 해도 군침

생선인 멸치를 제대로 맛보려면 회를 먹어봐야 한다. 식감의 부드러움은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작다고 뼈째 썰지는 않는다.

몸통만 저며낸 횟감을 소주에 살짝 담갔다가 냅니다. 비린 맛도 없애고 살균 효과도 있고 일석이조지요.”

미조항에서 식당을 운영하는 정인숙(56) 씨는 멸치회를 찾는 손님은 정말 멸치 맛을 아는 분이라고 말한다. 비릴 것이라는 선입견 때문에 제철에도 드물게 나간다고. 대신 양념에 버무려내는 회무침이 인기다.

멸치회와 미나리, 양파, 배 채를 초고추장 양념에 무쳐내는 회무침은 새빨간 색감 자체가 이미 군침 돌게 하는 마력을 가졌다. 담백한 멸치회에 매콤함이 더해져서 생멸치가 부담스러웠던 사람도 쉽게 젓가락이 간다. 미나리 향과 달큰한 양파, 시원한 맛을 내는 배 채도 한 맛 더한다.

남해식 회무침에는 막걸리식초를 많이 쓴다고 알려져 있는데, 정 씨는 남해 특산품인 유자청을 갈아서 양념에 섞어 쓴다. 유자청은 회무침에 윤기를 더하고 향긋한 향도 낸다.

봄철 갓 잡아 올린 멸치만 쓰던 회무침은 냉장 기술 덕에 사철 음식이 됐다. 하지만 정 씨에 따르면 남해에서는 여전히 봄철에만 손님상에 올린단다. 뭐든 제철에 최고의 맛을 낸다. 살집이 작고 무른 멸치 횟감은 제철 바람을 훨씬 많이 탄다.

 


 

생멸치조림 한 쌈든든한 뱃속

그래도 사계절 내내 먹을 수 있는 생멸치 음식도 있다. 소문난 밥도둑, 멸치쌈밥이다. 사실 멸치쌈밥보다 멸치찌개나 멸치조림이 더 어울리는 이름이다. 통멸치의 머리와 내장을 제거하고 뼈째 그대로 조려낸다.

자작할 정도의 육수에 양파, 다진 마늘, 고춧가루, 청량고추 등을 넣고 멸치액젓과 된장으로 간한다. 시래기나 묵은지를 멸치 아래 깔고 지져내기도 한다. 요즘에는 남해산 고사리와 마늘종을 부재료로 쓰는 식당도 있다.

구수한 멸치 맛과 맵싸한 양념에 잘 조려진 시래기, 고사리, 마늘종 맛이 어우러져 밥 한 공기는 금방 뚝딱이다. 쌈밥답게 상추, 깻잎 등 쌈 채소에 싸서 먹기에는 부재료 없이 멸치만으로 자작하게 끓여낸 찌개가 좋다.

멸치도 생선이라면, 그냥 생선조림이라 하기에는 뭔가 아쉬운 특별한 음식입니다. 입에 짝짝 달라붙는 감칠맛에 냄비바닥을 훑어 먹는 손님들이 꽤 많아요.”

베테랑 식당 사장님 정 씨가 미조항 정통 쌈 싸는 법을 알려준다. 상추 한 잎에 밥 한 술, 멸치 두 점, 쌈장 조금 그리고 꼭 마늘장아찌 한 쪽을 올려 싸 먹으란다. 전문가 말대로 한 쌈 먹어보니, 알싸하고 달달한 마늘장아찌가 멸치쌈밥에 상큼한 맛을 더해 준다. 연한 멸치살과 함께 오돌오돌 씹히는 뼈가 먹는 재미를 살린다. 멸치쌈밥이 사철 내내 가장 잘 팔린다는 정 씨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날로 먹는 봄 멸치는 회, 회무침, 찌개, 조림 외 구이로도 즐길 수 있다. 숯불에 석쇠로 구운 멸치는 고소한 맛이 일품인데, 때를 기다려야 한다. ‘보물섬 미조항 멸치 바다축제기간 미조항을 찾으면 그 흔치 않은 고소함을 맛볼 수 있다. 

 

글 황숙경 기자 / 사진 이윤상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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