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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에 반하다

[사람에 반하다]"시골에 사니 뭐가 좋냐고요?"

함양 육현경♥유진국 부부

 

 


귀농귀촌을 꿈꾸는 이들에게 예비교육은 필수다. 그저 좋아서 시골살이를 시작하겠다고 하면 정말 대책 없는 사람으로 통할 것이다. 여기 그렇게 대책 없었던 부부가 있다. 지리산에 놀러왔다가 물 좋고 산 좋은 데서 살고 싶다는 희망만으로 시골살이를 시작해 벌써 18년째 함양군민으로 사는 유진국·육현경 부부를 소개한다.

   

‘돈만 벌다 죽겠구나’ 도시탈출 감행

“멋모르고 했지요. 얼른 내려와서 살고 싶다는 생각뿐이었어요. ‘가보면 어찌 되겠지’ 하는 마음도 있었고.” 육현경(55·아내) 씨의 말을 듣고 있던 유진국(59·남편) 씨가 웃음으로 맞장구를 친다. “사실 이러다가는 돈만 벌다가 죽겠구나 싶었어요.”

부부가 둥지를 튼 함양군 휴천면 운서마을은 지리산둘레길 4코스 금계~동강 구간 중 동강 쪽 끄트머리에 있다. 부부의 집은 엄천강을 바라보며 지리능선을 배경 삼고 있다. 부부가 명당 터라고 자평하는 곳이다.

부산 태생인 유 씨와 서울 출신인 육 씨는 서울서 대학원·대학까지 마친 도시내기들. 수원에서 영어전문서점과 학원을 운영했다. 제법 돈이 될 정도로 잘나갔다는데, 왜 이곳까지 오게 됐는지 궁금했다. 아무리 시골생활이 로망이었다 해도 수도권도 아니고, 연고가 있는 것도 아니고.

“어쩌다가 그리 됐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지리산에 놀러왔다가 엄천강변의 한 식당에서 밥을 먹는데, ‘이런 데서 살면 참 좋겠다’는 생각이 들더란다. 그래서 식당 아주머니에게 동네 땅값이 얼만지, 팔려고 내놓은 땅은 있는지, 농담 반 진담 반 물었는데 그것이 인연이 됐다.

그날 식당 아주머니의 소개로 지금의 집터를 샀다. 나중에 알고 보니 ‘소개’가 아니고 아주머니 본인의 땅을 판 것이어서 재미있는 후일담이 됐다. 어쨌든 꿈꾸듯 일사천리로 일이 진행됐고, 5년을 벼르다 도시생활을 접고 귀촌했다. 그게 2002년이었다. 두 아들이 초등학교 5학년, 3학년 때이다.

 

자연의 일부로 사는 삶 ‘행복’

아이들이 어린 탓에 “이 오지까지 왜 들어왔느냐?”, “애들 공부나 다 시키고 올 일이지” 등등의 환영인사를 많이 들었다는 부부.

“우리가 학원 운영을 해봤잖아요? 대한민국 교육은 도시나 시골이나 매한가지예요. 사교육 대신 금전으로 따지기 어려운 값진 것들이 이곳에 너무 많아요.”

육 씨는 아이들 공부시키는데 시골이라고 크게 손해 본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단다. 온 마을사람들이 걱정해주던 두 아들은 고등학교까지 함양에서 마치고 이제는 어엿한 직장인이 됐다.

사실 육현경 씨는 전공을 살려 함양군 내 학교에서 영어전문 강사로 활동하고 있다. 육 씨로서는 도시에서 하던 일을 시골에서도 여전히 하고 있는 셈이다.

“여기서도 먹고살아야 되잖아요? 처음에는 교사 일을 할 생각이 아니었는데, 농사에 ‘농’ 자도 모르던 사람들이 농사 지어 네 식구가 먹고 산다는 건 욕심이더라고요. 그래서 한 사람이라도 월급을 받자고 생각했죠.”

덕분에 유진국 씨는 마음껏 하고픈 것을 했다. 밭농사부터 논농사, 밤농사, 감농사, 된장농사…. 이것저것 안 해본 것 없이 일을 했다. 가장 욕심냈던 것은 양봉. 50통까지 늘려 벌꿀농사를 지었다. 그러다 지리산 반달곰을 만날 뻔한 일화가 화제가 되기도 했다.

 

며칠 전에 두루묵댁 할머니 집에 곰이 다녀갔다고 합니다. 토종꿀을 세통 먹고 감나무 고목에 발톱으로 벅벅 긁어 영수증을 써놓고 갔다 합니다. 곰이 영역표시를 했다는 거지요.(중략) 그리고 그 곰이 오늘은 박털보네 집에 다녀갔다고 합니다. 박털보의 말에 의하면 대가리가 사람머리 다섯 배나 됨직한 곰이 뒷마당에 놓아둔 벌통을 들고 꿀을 줄줄 흘리며 파먹고 있다가 뒷간에 똥 누러 가던 자기에게 대여섯 걸음 거리에서 딱 걸렸답니다.

- <반달곰도 웃긴 지리산농부의 귀촌 이야기> 中에서

 

귀촌일기 2권의 책으로 펴내

“도시 지인들과 연락을 주고받으면서 SNS에 귀촌일기를 썼죠. 그날그날 있었던 일을 편하게 썼는데, 재미있었던가 봐요.”

시골의 일상과 소소한 재미를 정감 있고 유쾌한 문장에 담아 쓴 부부의 귀촌일기는 2015년 <반달곰도 웃긴 지리산농부의 귀촌이야기>란 제목의 책으로 출간됐다. 

책으로 돈을 벌지는 못했다는데, 출판사측의 요청으로 귀촌이야기 속편도 출간한다. <흐뭇>이란 제목으로 곧 출간될 예정이다. 책 소개가 불편했던지 유 씨는 요즘 한창 자신감이 붙은 곶감을 소개했다.

유 씨가 만드는 곶감은 못생겼다. 발그레한 고운 색을 내기 위해 거치는 유황훈증 과정을 빼서 그렇단다. 가족들 먹이려고 만들다 지금은 기술을 전수받겠다는 사람이 나올 정도로 소문난 명품곶감이 됐다. 모양 보고 속단했다가 그 맛에 홀딱 반한단다. 

곶감을 만든 지 10년차가 된 지난해에는 12동(1200접, 12만개)을 출하해 휴천면 내 곶감농가로는 최상위권에 들었다. 보통 감 농가에서는 5동 정도가 평균치다. 유 씨는 꾸준히 주문이 늘고 있다면서 뿌듯해 했다.

“요즘은 인터넷과 편리한 교통 덕에 시골에서도 도시에서 하는 경제활동을 대부분 할 수 있어요. ‘지리산농부’란 웹사이트를 통해 제가 만든 곶감, 마을사람들이 채취하고 만든 나물, 된장, 꿀 등을 판매하고 있어요. 시골이라고 특별히 다르지는 않아요. 삶의 터전을 자연 가까이로 옮겼을 뿐이지요. 지금은 도시에서 어떻게 살았나 싶습니다.”

지리산농부 https://jirisannongboo.modoo.at   ☎ 010-5473-6226 

 

글 황숙경 기자 사진 김정민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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