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메뉴 바로가기 본문기사 바로가기

사람에 반하다

[사람에 반하다]신나게 '흥'을 실어 나르며 지역민에 사랑 전하는 봉사맨

 

 

 

완전하지는 않지만 우리 사회는 코로나19 이전의 일상을 차츰 회복하고 있다.

닫혔던 경로당이 열리고, 공연과 축제도 이어진다.

사람 좋아하는 사람들은 이제야 사람 사는 것 같다고 토로한다.

봉사단체들은 봉사를 할 수 있어서, 지역 어르신은 사람을 만날 수 있어 안도한다.

지역 봉사를 모토로 평생을 살아오며 바쁜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는 봉사맨이 있다고 해서 만나봤다.

박정희  사진 김정민

 

 



본캐 부캐 화려한 가월마을 권영규 이장

주인공은 창원시 동읍 주남저수지 앞 가월마을 권영규(67) 이장이다. 110여 가구가 사는 가월마을 어느 집 밥숟가락이 몇 개인지 알 정도로 동네에 훤한 사람. 동에 번쩍 서에 번쩍 동네일에 발 벗고 나서는 인물. 4년째 이장을 맡고 있으니 이 정도 열정이야 예상 가능한데, 그에겐 색다른 이력이 더 있다. 사단법인 한국연예예술인총연합회 창원지회장을 7년째 맡고 있고, 창원을 사랑하는 시민연합(창사련)의 부위원장 직함도 달고 있다. 요샛말로 본캐 부캐(본래의 캐릭터·부가 캐릭터의 줄임말, 게임 용어에서 비롯됐다)’가 장난 아니다. 에너지가 넘친다.

하이고, 제가 뭐 잘난 것도 없는데 여기까지 와주셔서 고맙습니다. 내 고향 사랑하고 봉사하며 사는 게 그리 자랑할 것도 아닌데... 혼자 사는 집이라 좀 누추하지요. 하하.” 겸손의 말이다. 이층 집 규모도 크거니와 사진기, 도자기, 수석, 골동품 등 애장품이 곳곳에 있고 깔끔하다. 박물관에나 있을 법한 유물급도 있다. 딱 봐도 취미도 많아 보인다. 집 밖에는 정미소에도 썼던 원동기도 모아놨다. 주민등록증 뒤편에 새겨진 면허만 봐도 트럭, , 제트스키 등 운전 못 하는 게 없겠다 싶다. 그래서 그는 시쳇말로 하고집이로 통한다.


  

젊은 날 논 것도 봉사 밑천,

어르신들 즐거울 때 가장 행복

저는 고등학교 중퇴했어요. 그래도 충분히 행복합니다. 공부 빼고는 다 해보고 싶던데요. 면허 따는 공부요? 제가 재밌어서 하는 공부는 하나도 안 어렵지요. 그런 이력들이 다 모여서 제가 하는 봉사활동에 보탬이 되지 않았나 싶습니다.” 서른이 넘어가면서 새마을지도자 등 젊어서부터 지역사회를 위해 봉사했다. 서른 전에는 더러 사고도 치고, 놀았다’. 노는 것도 자산이라는 말처럼, 그런 젊은 날도 연예 예술인 지원봉사활동의 밑천이 됐다. 봉사상도 수차례 받았다.

무엇보다 그의 봉사활동은 이 동반된다는 점에서 신난다. 코로나19 창궐 이전에는 삶의 의미를 잃고 병마와 싸우는 어르신을 위해 요양원을 찾아 공연봉사도 자주 해 감사 인사를 들었다. 지금은 코로나 이전만큼 신난다. 돈을 벌기 위해서가 아니라 어르신들을 행복하게 해드려 좋단다. 코로나 이후 가장 크게 열린 행사가 500여 명의 어르신을 모시고 치른 지난 5월 동읍 경로잔치였다. 미스터 트롯 출신 가수 홍예성을 비롯해 지역 가수 김수진, 신정화 등 출연진을 섭외하고 음향장비 일체를 무상으로 제공해 성황리에 잔치를 열었다.

코로나가 심할 때도 그는 집 앞에 손수 마련한 공연홀에서 비대면 공연을 촬영하는 봉사를 이어왔다. 그의 휴대전화가 늘 바쁜 까닭이기도 하다. 지역을 불문하고 공연축제 기획이나 연예인 섭외가 필요할 때 사람들이 그를 찾는다. 내로라하는 가수 연락처도 꿰고 있을 만큼 인맥이 넓다.

    

 

2명 생명 구한 숨은 선행 힘닿는 대로 봉사하겠다
그는 매우 의협심 강한 사람이기도 하다
. 자신과 직접적인 관련이 없어도 불의에는 맞서고, 남을 도와야 한다 싶으면 머리로 생각하기 전에 몸이 먼저 움직인다. 지난해 동읍 본포에서 제트스키를 타다가 강에 추락한 행글라이더 운전자를 구할 때도, 8년간 매일 다니는 북면 한 온천에서 심폐소생술로 지역대학 교수를 역임한 80대 어르신을 구했을 때도 머리보다 몸이 먼저 움직였다. 본인도 60대 후반인데 심폐소생술 하기가 쉽지는 않았지만, 앞 뒤 가리지 않고 사람부터 살렸다. 남들에게 알리지도 않았다. 그렇게 살린 두 사람과는 아직도 끈끈한 형제애 같은 교류가 이어지고 있다. 권 이장의 사람 자산이다.

1층에 6년 전 작고한 모친 살림살이를 그대로 간직하고 있습니다. 어릴 적 기억이 생생한 재봉틀을 만질 때마다 모친이 살아계신 듯합니다. 침대맡에 부모님 사진 보며 아침저녁 문안드리는 것처럼 지역의 어르신과 지역민을 섬기면서 살겠습니다.” 초등학교 들어갈 무렵 웬만한 집 살림 밑천만큼 비쌌던 재봉틀을 사러 가던 날, 그는 길을 잃고 헤매다 하마터면 부모와 생이별할 뻔 했다. 그 기억이 깊은 효심이 됐나 보다. 조금만 더 사셨으면 했다는 이장은 부모님께 못다 한 효도를 지역 봉사로 이어가고 있다.

 

방문자 통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