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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하! 경남역사

[아하! 경남역사] 가야유산 기획❻ 창녕 비화가야, 이곳을 주목하라!

사적 제547호 창녕 계성 고분군

 


   

비화가야(非火加耶)라는 이름

아니 비(非), 불 화(火), 비화가야. 사람들은 으레 “처음 듣는데?” 하는 반응이다. 이는 6세기 신라에 통합되기 전 창녕에 있었던 가야국을 말한다. 비사벌, 비자화, 비지 등으로도 불렸다. 경남의 여러 가야국이 변한에서 시작됐다면 비화가야는 진한의 불사국(不斯國)에서 나왔다. 『삼국유사』 오가야조에서 인용한 『본조사략』에 따르면 다섯 가야 중 하나로 기록할 정도로 강한 국력을 가졌던 것 같다. 문헌 기록은 물론 창녕 교동과 송현동 고분군(사적 제514호) 등 대(大)고분군을 통해 비화가야는 분명한 역사적 존재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우리 손으로 처음 발굴한 가야고분

일제강점기 창녕은 일제가 주목한 지역이었다. 임나일본부설(任那日本府說)의 실체를 증명하기 위해 초기부터 일제는 가야유적을 사실상 도굴했다. 극심한 도굴 피해로 창녕지역의 가야사를 제대로 밝혀낼 수 있을까 하는 의구심마저 들게 할 정도였다. 계성 고분군 역시 일제에 의해 처음 존재가 알려지긴 했으나 상처만 안은 채 곧 잊혀졌다.

이후 식민지배와 한국전쟁의 상흔을 치유하기 바빴던 대한민국에서 최초로 발굴한 가야유적은 다름 아닌 창녕의 ‘계성 고분군’이다. 1967~69년 문화재관리국(현재의 문화재청)이 5호분을, 영남대학교 박물관이 1호분과 4호분을 차례로 발굴하면서 비상한 관심을 끌었다. 이 발굴에서 가야고분의 구조를 처음으로 밝혀냈다. 다양하고 화려한 유물들이 출토되면서 1974년 2월 경상남도 기념물 제3호로 지정됐다. 1990년대에는 창녕 계성면을 지나는 구마고속도로와 국도공사 구간에 계성 고분군의 끝자락이 포함되면서 중소형 무덤들이 더 확인되었다.

이를 통해 고대 창녕에 존재한 비화가야의 고분문화가 드러나고, 신라, 백제, 왜 등과도 긴밀하게 교류하던 비화가야의 모습을 그려낼 수 있게 되었다.

 

비화가야 고분군, 사적(史蹟)이 되다

지난 2월 26일, 창녕군에 경사(慶事)가 있었다. 경상남도 기념물이었던 창녕 계성 고분군이 ‘사적 제547호’로 새로 태어났다. 문화재청은 “261기의 대규모 계성 고분군은 5~7세기 창녕 비화가야의 성립과 발전, 쇠퇴 과정을 보여주고 있어 역사적·학술적 가치가 매우 높은 유적이다”라고 평가했다. 한국 고대사의 일부로서 비화가야의 존재와 가치를 인정했다.

2011년 창녕군은 비화가야의 대표 유적인 계성 고분군을 국가 사적으로 지정하기 위한 첫걸음을 뗐다. 정밀지표조사를 통해 261기라는 엄청난 수의 고분을 확인했다. 또 주민간담회, 학술 심포지엄을 개최하고 세 차례에 걸쳐 경남발전연구원 역사문화센터의 학술발굴조사도 진행했다.

2017년 6월 대통령이 가야사 연구·복원을 국정과제에 포함시키면서 창녕군도 ‘비화가야 역사 문화 복원’을 위한 추진과제들을 건의해 ‘계성 고분군의 사적 지정’건이 선정되었다. 사적으로 지정되기까지 꼬박 8년이 걸렸다. 내 고장 문화재를 보존하려는 주민들과 관계자의 노력은 이렇게 결실을 맺었다. 가야사가 국정과제로 채택된 후 국가 사적으로 처음 지정된 ‘경남의 가야유적’이라는 점에서도 의미가 남다르다. 역사문화도시를 표방하는 창녕군에 또 하나의 자랑거리가 생긴 것이다.

 

 

앞으로 비화가야에 주목하라

다른 가야와 마찬가지로 비화가야 역시 문헌기록이 거의 없다. 때문에 유적 발굴조사 등의 성과를 기대할 수밖에 없다. 다행히 최근 학술조사에서 그 실체를 엿볼 수 있는 유적들이 속속 발견되고 있다. 창녕 영산 고분군(도 기념물 제168호)은 학술조사를 통해 교동과 송현동, 계성 고분군과 다른 가야세력이 존재했음이 밝혀지고 있다. 이방면 초곡리에서는 4세기 덧널무덤이, 대지면 효정리에서는 삼한시대 집자리 등 생활유적이 확인되고 있다. 그동안 베일에 싸여 있던 초기 비화가야의 모습을 재현할 날도 머지않았다. 또한 최근 가야 산성 6곳과 토기 생산유적 4곳을 새로 발견했고 앞으로 발굴조사를 통해 그 전모를 밝혀 나갈 예정이다.

비화가야의 유적들이 세상에 드러날 즈음 옛 비화가야인들이 보았을 풍경처럼 우포따오기가 그 위를 훨훨 날아다니는 모습을 상상해 본다. 

 

글 김주란 창녕군 문화체육과 가야사TF팀 학예연구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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