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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하! 경남역사

[아하! 경남역사]【경남역사 이야기】 기림의 날을 아시나요?

 

오는 814일은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기림의 날이다. 일본군 위안부 문제를 국내외에 알리고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를 기리기 위해 지정한 국가기념일로, 지난 1991814일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였던 김학순 할머니가 위안부 생존자 중 최초로 피해 사실을 공개 증언한 날이다. 기림의 날을 앞두고 경남지역의 일본군 위안부 역사관 건립을 추진하고 있는 경남지역 일본군 위안부 역사관 건립추진위원회 송도자(55) 집행위원장을 만났다.

 

 

일본군 위안부, 기록하고 기억해야

앞으로 할머니들이 모두 돌아가시고 안 계신 시대를 대비해서 피해역사가 단절되지 않고 일반 대중들의 기억에 자리할 수 있도록 기록하고 기억할 수 있는 일을 하고 있습니다.”

1994년부터 위안부 피해자들을 만나왔던 송 위원장은 한 해 한 해가 지날수록 할머니들이 돌아가시고 고령으로 의사소통이 되지 않아 매우 안타깝다.

피해자분들은 결혼하지 못한 것, 자식을 낳아보지 못한 것, 여성으로서 삶을 살아보지 못한 것에 대한 회한이 무척 컸어요. 피해사실을 숨기는 분들도 계셨고, 또한 자신이 못나서 그렇게 됐다고 생각하는 분도 계셨어요.”

송 위원장은 할머니들의 심리 치료와 함께 명예 회복을 위해 지난 2002일본군위안부할머니와 함께하는 통영거제시민모임을 만들었다. 각종 사료에 근거해보면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는 20만 명으로 추정되는데 정부에 등록된 피해자는 238명에 불과하다. 경남은 전국에서 가장 많은 피해자가 나온 지역이며, 그중에서도 통영은 단일 인구 대비 정부에 등록된 피해자가 가장 많다. 송 위원장은 할머니들과 함께 시간을 보내면서 말동무가 되어주기도 하고, 딸이 되어주기도 했다. 이후 자연스레 피해 사실을 털어놓는 할머니들의 이야기들을 하나하나 기록했다.

 

 

제발, 나의 억울함을 풀어주오

통영에 계셨던 한 할머니는 군대에 편입되어 군대가 이동할 때마다 따라다니면서 위안부 생활을 할 수밖에 없었어요. 당시 할머니 나이 15살에 끌려가 8년 만에 돌아왔고, 정말 처참한 상황들이 많았어요. 임신이 되어 강제 유산되기도 했고, 도저히 살아갈 자신이 없어 변소 청소하는 소독약을 들이마셨대요. 죽어서 혼이라도 엄마 아빠 곁으로, 조선으로 돌아가야겠다는 생각으로요. 기절 후 깨어보니 살아있더라고 말씀하셨어요라며 그 절절함은 말도 못 한다며 눈시울을 붉혔다.

할머니들이 원하는 건 단 하나. 억울함을 풀어달라는 거였다. 공장에 취직시켜 준다는 말에 따라갔더니 위안소였고, 일본 정부와 일본군에 속아서 간 것이 너무 억울하고 분하니 제발 이 억울함을 풀어달라는 거였다.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명예 회복 위해 노력할 것

송 위원장은 할머니들을 위한 활동으로 통영 남망산공원 안에 정의비(正義碑)를 세우는 데 앞장섰다. “위안부 피해자들을 위한 대표적인 기념비가 평화의 소녀상입니다. 그러나 실제 피해자는 10대부터 30대까지 추정하고 있어 소녀상보다는 정의비를 세웠어요.” 무엇보다 피해자분들의 정의는 일본 정부에 의해, 일본군에 의해 속아서 끌려갔고 참혹한 범죄의 희생자였으며 강제 성노예가 될 수밖에 없었다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피해자들의 존엄성을 회복하고 인권명예를 회복하기 위해 국가 범죄였다는 것을 정의하기 위해 정의비라 명명했다고 덧붙였다.

현재 송 위원장은 경남지역에 일본군 위안부 역사관을 건립하기 위해 힘쓰고 있다. 지난해 온라인 창구를 열어 시민 서명과 모금도 추진했다. “일본의 진정한 사과와 위로가 없이 위안부 할머니들이 돌아가실까봐 걱정스럽습니다. 경남에 계신 피해자 세분이 살아계실 때 꼭 추진되었으면 좋겠습니다라며 전수조사를 통해 지역의 피해역사를 담은 역사관이 건립되어야 한다고 전했다.

 

 


배해귀 사진 이윤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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