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서울 용산, 너무도 외롭고 재미없는 날에 퇴근 후, 원룸에서 이 책을 읽었다. 계절은 봄이었다. 그것도 벚꽃이 흩날리던 화사한 봄이었다. 어쨌거나 냉장고에서 캔 맥주를 꺼내 마시면서 책을 펼쳤는데, 이럴 수가! 그야말로 단숨에 한 권을 독파하고 말았다. 지리산에 사는 버들치 시인과 낙장불입 시인, 고알피엠, 도사 등이 사는 딴 세상 이야기는 세상살이에 지친 날 완전히 매료시켰다. 매화와 산수유꽃이 지천인 하동 악양과 화개동천의 쌍계사 벚꽃 십리길이 절경인 소설 속의 배경은 하나같이 아름다웠고 몽환적이었다. 그날부터 나는 양복 윗주머니에 사표를 넣고 기회만 엿보았다. 그들처럼 살고 싶었고, 50만 원으로 1년을 버틸 수 있는 그들이 너무 부러웠다. 그해 가을, 나는 마지막으로 이 책을 읽고 정년이 십 년이나 남은 공직을 그만두어 버렸다. 후에 이 사실을 안 친가 및 처가 식구들은 놀라서 쓰러졌다고 했다. 하긴 지금 생각해 보니 그때 아이들(초2, 중2)이 어려도 너무 어렸다. 하지만 어쩌랴. 이미 마음은 꼭 그곳이 아니더라도 자연에 가 있었음을.
알다시피 공지영 작가는 이 시대 최고의 소설가이다. 평소 예리한 통찰력과 속도감 있는 문장으로 현실의 부조리, 불합리와 모순에 맞서는 다양한 작품을 썼지만,
<지리산 행복학교>는 도시와 시골의 경계를 허물며 재미있게 읽을 수 있는 수작(秀作)이다. 이 책에 미혹(迷惑)되어 나는 지리산 행복학교가 있는 곳의 반대편 시골로 귀촌하여, 현재 어언 9년 차인 글쟁이(소설가)로, 때론 백수로 행복하게 살고 있지만, 귀촌 초창기엔 경제적인 어려움으로 엄청 힘들었다. 하여 때로 날 시골로 불러들인, 이 책의 저자인 공지영 씨를 원망한 적도 있다. 그랬던 그녀가 조만간 악양으로 들어온다는 소문이 들린다. 공교롭게 이 글을 쓰는 장소 또한 박경리 문학관이다. 올해 운 좋게 경남문화예술진흥원의 참여작가로 선정된 까닭이다. 그녀가 오면 나는 너무 일찍 그만둔 그 직장의 9년간 밀린 임금을 청구하며 따질 생각이다.
섬진강을 바라보며 살아가는 생명력이 강한 지리산 행복학교 사람들, 가난해서 더 행복하다는 그들의 역설적인 삶을 닮고 싶은 이들에게 이 책을 꼭 권하고 싶다. 아울러 필자가 그간의 시골 생활을 정리하여 발간한 <누가 귀촌을 꿈꾸는가>와, 지리산 시인 이원규의 <행여 지리산에 오시려거든>을 반드시 함께 읽어보시길 바란다. 아니면 말고.
- 이인규 명예기자(소설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