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 게시물 :56건, 페이지 : 1/12
경남도가 쏘아올린 따뜻한 기부문화
어느새 12월입니다. 한해를 보내는 도민 여러분 올해도 수고 많으셨습니다. <경남공감>은 한해를 보내면서 경남도와 더불어 널리 기부문화를 확산시키고 있는 18개 시·군의 기부천사를 만나보았습니다. 18개 시·군과 경남사회복지공동모금회를 통해 추천을 받았습니다. 금액의 많고 적음을 떠나 어려운 이웃을 생각하고 손을 내밀어 나눔 활동을 하는 모습이 참으로 아름다웠습니다.<출처: 경남공감, 글 경남공감 편집실, 강대용, 김미화, 이인규, 오연화 명예기자 사진 유근종, 김정민, 시·군> 경남도, 사회공헌문화 확산 앞장서다 사회공헌 문화 확산을 위한 경남도의 행보가 희망차다. 지난 5월 31일 도청 도정 회의실에서 사회공헌문화 활성화와 사회공헌 활동 촉진을 위한 ‘사회공헌문화 확산 선포식’을 열고 사회공헌문화 확산 의지를 다졌다. 선포식에서 ▲‘경남형 사회공헌 인증’ 시행 ▲‘명예의 전당’ 조성 ▲사회공헌 주간 운영 ▲경남도가 운영하는 공공시설의 이용료 감면 등 사회공헌문화 활성화를 위한 대책 9개 과제를 발표하고 실천에 들어갔다. 지난 5월 25일 도의회에서 의결된 ‘경상남도 사회공헌자 예우에 관한 조례’ 역시 시행 중이다. 지난 9월 11일에는 NH농협은행 경남본부, BNK경남은행과 ‘사회공헌자 금융서비스 우대’에 관한 업무협약을 추진하고, 경남도로부터 사회공헌 인증을 받은 사람과 모금기관으로부터 대상자를 추천받아 이달 중 인증을 완료할 예정이다. 경남도는 앞으로도 명예의 전당, 사회공헌 대상, 도 공공시설 무료(감면) 이용, 도 주요 행사 초청을 통해 사회공헌에 대한 확산할 시책을 추진해 나갈 계획이다. “선친 유지 받들어 작은 기부…도리어 제가 더 많이 배웁니다” 사천 편백림 박상호 대표는 선친이 조성한 편백림을 이어받았다. 12ha의 편백림을 유지관리하며 선친 뜻을 이어 아픈 환자들에게 개방하고 있고, 편백 제품을 연구 개발해 특허를 등록하는 등 관련하고 있다. 2021년부터 김해에 1억 원 이상, 사천에 5000여만 원 어치 제품 기증을 했고, 앞으로도 계속 이어갈 생각이다. 이런 노력으로 2022년 경상남도 소상공인 경영대상을 비롯해 수차례 상도 받았다. “편백림은 호스피스 병동 가기 전 환자들이 쉬어갈 수 있도록 개방하고 있습니다. 주말엔 일반인에게도 개방하지만, 아픈 분들 위주지요. 일반인들께서도 이를 이해하시고 숲을 깨끗하게 이용해주시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기부는 모자란 저를 더 성장시키는 기폭제 역할을 합니다. 착하게 살려고 노력합니다.” "저의 나눔이 작은 불씨가 되어 더 좋은 세상이 되었으면 합니다” 창원시에서 중화요리 전문점을 운영하고 있는 부부는 지난 2017년부터 착한가게 프로그램에 참여하고 있다. 아들 이준민 씨도 착한가게에 참여하면 서 창원시 첫 부자(父子) 착한가게로 이름을 알리기도 했다. “평소 봉사활동에 관심이 많았습니다. 지난 1991년 국제봉사단체 로타리클럽에 가입해 필리핀에 가서 초등학교 화장실 개선 사업을 했었죠. 또 우리나라 최초 영화 제작소인 상남영화제작소를 지원했습니다.” 부부의 선행은 코로나 기간에도 꾸준히 이어졌다. 더불어 장애인들을 지원하는 ‘마이이웃’ 후원봉사도 함께 실천해 나갔다. “나눔과 봉사는 지속적으로 하는 게 의미 있다고 생각합니다. 저의 나눔이 작은 불씨가 되어 더 많은 분들이 희망을 쏘아올렸으면 좋겠습니다.” “아버지처럼 눈이 불편한 이웃들을 돕고 싶어 시작했어요” 레미콘 회사를 운영 중이던 김종석 씨는 평소에도 기부와 봉사를 해오던 지역의 인사였다. 지난해 녹내장으로 급격히 시력이 나빠지자 아들 김현수 씨가 회사를 이어받았으며 아버지와 같은 처지에 놓인 어려운 분들을 떠올렸고, 그들을 돕기로 했다. 안과 시술은 치료비가 비싸다. 함안군라이온스클럽의 문을 두드려 2032년까지 10년간 총 1억 5000만 원의 기탁을 약속하기로 지난해 MOU를 체결했다. 기탁금은 모두 저소득 안과질환 검사 수술비 지원 사업에 쓰이게 된다. 함안군라이온스클럽 홍순민 회장은 “아쉬운 치료로 끝나지 않고 장기적인 치료가 꼭 필요한 분들을 위해 저희가 보탬이 됐으면 좋겠어요”라고 말했다. “주위를 둘러보면 도움이필요한 사람들이 참 많아요” 평소 어려운 사람을 돕던 아버지를 본받아 자신도 모르게 기부를 시작하게 됐다며 멋쩍은 미소를 보이던 김성진 씨. 매년 2000만 원씩 5번째 기부를 한 것도 모자라 고성군 지역사회보장협의체, 교육발전위원회, 자원봉사센터 등 지역 단체를 통해 봉사를 실천하고 있다. 사각지대에서 손길이 닿지 않는 분들에게 온정이 닿을 수 있도록 도울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고 했다. “처음이 어렵지 하고나면 계속 하게 되는 게 기부인 것 같아요. 찾아보면 주변에도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이 많거든요. 단돈 3000원부터 시작해보세요. 기부를 시작하면 내게도 좋은 일들만 생긴답니다~!” "기부하니 좋은 일도 많아져요. 매일이 행복합니다” 농업회사법인 ㈜자연향기 권자연 대표는 2012년부터 고향 하동 악양에 정착했다. 사업은 쉽지 않았고, 초창기 몇 년은 고생도 했다. 직원 50%이상을 장애인 으로 고용해 장애인표준사업장이 되면서 기업의 사회적 가치를 더 많이 고민하고 실천하고 있으며 기부도 하고 있다. “김 제품을 지난 2020년부터 군청과 면사무소, 복지단체 등에 4500여만 원 상당을 기부했습니다. 초창기에 비해 20배 이상 성장해서 매일 행복합니다. 장애인 고용, 기부가 선순환을 낳고 있는 느낌 이에요. 유명 연예인이 우리 김을 먹고 SNS에 올린 것도 참 희한한 우연이다 싶어요. 앞으로도 장애인을 더 고용하고, 힘들어도 기부를 늘려갈 생각이에요.” “내가 받은 도움에 보답하고 싶었습니다” 문정원 씨는 기초생활수급자이자 청각장애인이다. 어려운 생활 속에서도 수급비와 장애인 일자리로 꾸준히 돈을 모아 지난 2020년부터 양산시 인재육성장학재단 및 양산시장애인복지관 등에 1500만 원을 기부했다. “청각장애인이 된지 7~8년 됐습니다. 넉넉지 않아도 나라에서 주는 지원금으로 생활을 하고, 장애인주차단속을 해서 번 돈은 기부를 합니다. 나라와 시에서 보살핌을 받고 있으니 그 감사함을 꼭 보답하고 싶었습니다.” 지금도 여전히 수급비가 나오는 날에는 양산시장애인복지관으로 매월 10만 원씩 자동이체가 되고 있다. “자동이체가 되면 복지관 담당자가 전화를 합니다. ‘어르신 정말 감사합니다. 건강하시지요?’ 이렇게 안부 인사 한 마디가 큰 위로가 됩니다. 사는 동안 계속 기부하고 싶습니다.” "통장이 비는 만큼 행복은 쌓이던 걸요~” 올해 ‘LG 의인상’과 ‘의령군민대상’을 수상한 박위수 씨는 대봉감 농사를 짓는 농부다. 부산에서 과일 장사를 하며 목욕·급식 등 봉사 활동을 이어오다 고향으로 돌아온 지 어언 20여 년 차다. “의령군 복지과로 찾아가서 어려운 학생이나 취약계층을 알아봐달라고 했습니다.” 현재 12명의 학생과 취약계층에게 매월 정기적으로 80만 원을 후원하고 있다. 후원금은 본인의 기초연금과 국민연금 50여 만 원에다 대봉감 농사를 지어 마련하고 있다. “의인상 보조금으로 받은 3000만 원은 어디에 도움을 줄까? 통장에 돈 들어오는 것보다 나가는 기쁨이 더 큽니다.” 농부 기부왕은 매년 연말 장학금과 불우이웃돕기 성금도 잊지 않고 기탁해 취약계층의 겨울나기를 돕고 있다. “아이들에게 자연스럽게 기부 문화를 가르쳐주고 있어요” 연꽃어린이집은 3년 전부터 학부모가 참여해 소소한 간식거리를 팔고, 버블파티와 풍선 공연으로 아이들도 행복하게 참여할 수 있는 플리마켓을 연다. 매년 100만 원이 채 안 되는 수익금을 어려운 분들을 위해 기부하고 있다. “행복한 마음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힘이 생겨서 아이들이 또 다른 기부 문화의 시작점이 되었으면 좋겠어요. 그렇게만 된다면 앞으로는 더욱 따뜻한 세상이 되지 않을까요?” 정영미 연꽃어린이집 원장은 기부에 자부심과 보람을 느끼며 플리마켓 기부 행사를 앞으로도 계속할 생각이라고 말했다. "내 주머니 다 털어줘도 아깝지 않습니다” 해마다 창녕군의 어려운 이웃들을 위해 상품권, 쌀, 장학금 등으로 나눔의 삶을 몸소 실천하며 기부활동을 해 오신 법명 스님. 2022년 국민훈장 동백장을 수훈하실 만큼 봉사활동도 많이 하고 있다. 내 어려움보다 남을 먼저 생각하는 사람, 남을 돕는 걸 의무라 생각하고 꼭 도와줘야 한다는 마음을 가져야 한다는 가르침으로 사시는 분이다. “기부는 어렵지 않아요. 없는 걸 만들어서라도 하는 게 기부죠. 누구나 기부자가 될 수 있고 실천할 수 있습니다. 사회 환원을 원칙으로 삼고 앞으로도 저는 그렇게 살 거예요.” “우리 아이들의 꿈과 희망을 응원합니다.” 함양 연탄회는 지역사회에 뜻있는 일을 해보자는 데 의기투합한 이들이 2015년에 처음 만들었다. 군민이나 출향인, 독지가 등 32명의 회원들이 조건 없이 매년 1인 1계좌(60만원) 이상을 납부하고 있다. 경제적으로 어려운 우리 후배들을 위해 매달 초·중·고등학생의 정기후원으로 용돈 성격의 지원금을 익명으로 지급하고 있다. 9년 동안 모두 214명의 학생들에게 2억 원이 넘는 회비가 지원됐다. “우리 지역의 학생들이 올바르게 자랄 수 있는 밑거름을 만들어 주고 싶어 기쁜 마음으로 후원하고 있습니다. 자신을 응원하는 어른들이 있다는 걸 알고 꿈과 희망을 안고 열심히 살아갔으면 좋겠어요.” “힘든 시절 떠올리며 시작한 기부는 오히려 제 인생의 큰 선물” 아버지를 여의고 어린 시절부터 많은 식구를 책임져야 했던 박평조 씨는 일찍이 고등학교 진학을 포기했다. 공부를 다 하지 못한 것이 아쉬워 돈을 벌자마자 통영시에 장학금 100만 원을 기부했고, 지금도 통영시 굴 조합원의 자녀에게 매년 500만원 씩 장학금을 전달하고 있다. 통영시 생활복지과와 정량동 주민복지센터를 통해 분기마다 200~300만 원씩 노인들을 위한 기부도 하고 있다. “처음에는 부끄러웠어요. 그런데 한 번 시작하니까 이제 알겠더라고요. 얼마나 기쁜지는 해보면 알아요. 제 인생의 가장 큰 선물이에요~!” “상인 한 분 한 분의 정성이 모여 티끌 모아 태산으로 기부” 지역공동체를 잇는 연결고리로 공유냉장고의 기부가 거창에서도 이어지고 있다. (사)거창시장번영회는 지난 2022년 10월, 거창읍 공유냉장고 ‘찾아가는 나눔 곳간’ 정기후원 협약을 체결했다. 참여 점포가 60여 개에서 지금은 100여 개로 늘어났다. 거창읍 공유냉장고에 매월 2회 기부하는 날이 되면 거창전통시장에는 수레를 끌고 나눔곳간을 방문하는 번영회 회원들의 발걸음 소리가 경쾌하다. 처음에는 과일, 떡, 반찬, 고기, 채소 등 먹는 음식 위주의 기부가 많았으나, 기부점포가 늘면서 신발, 옷, 양말, 그릇 등 다양한 물품이 기부되고 있다. 거창전통시장번영회 이정용 대표는 “거창전통시장을 이용해 주시는 거창군민들에게 되돌려드린다 생각하는 마음으로 기부하고 있으며, 기부한 물품이 필요한 분들에게 도움이 잘 되었으면 좋겠다”고 바람을 전했다. "사회에 환원하고 싶어 직접 찾아가 기부, 더 열심히 살게 되네요” “힘든 시절 지나고 회사가 안정기에 접어들면서 사회 환원을 하고 싶었습니다. 진주시가 진주복지재단을 알려줬고, 2021년부터 2000만 원씩 기부하고 있습니다. 기부하면서 달라진 점이 있다면 제가 사업을 더 활기차게 할 수 있게 됐다는 점입니다. 기부는 중독느낌이 있더군요. 하면 할수록 더 하고 싶고, 그래서 제 삶 자체가 더 활기차지고, 더 열심히 일하게 되는 것 같아요.” 전기·통신·소방 분야의 설계 감리를 하고 있는 이수기술단(주) 황국주 대표는 기부가 삶의 신선한 자극이 됐다고 했다. 평범한 젊은 시절을 보내고, 15년 전 회사를 설립, 운영하고 있다. 진주복지재단 기부 외에도 지역의 합창단과 교회 사찰 등에 100~300만원 씩 소소하게 기부하는 건 5~6년 전부터 이어오고 있다. “공기업의 사회적 공헌, 혁신과 상생의 시작입니다” 지리산 중산리 계곡에 위치한 산청양수발전소는 국내에서 세 번째로 큰 양수발전소다. 매년 정액(3억 5000만 원)으로 지역에 기부하고, 이에 더하여 ‘봉사 마일리지 정책’을 통해 직원들이 자발적으로 주민을 위한 봉사활동과 기부(연간 1300만 원)를 이어가는 중이다. 소득증대사업, 취약계층 지원 사업 등에 주로 쓰이지만, 이 중에서 학생들을 집중적으로 육성하는 장학 사업에 매진하고 있다. 앞으로도 노인 계층, 소년·소녀 가장, 다문화 가정의 지원을 확대해 갈 예정이다. “공기업의 존재 이유가 사회적, 공적 이익을 추구하는 ‘공공성’에 있다고 본다면, 산청양수발전소는 이를 확대, 지역 주민을 위한 기부와 봉사활동에 적극적으로 동참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어려운 이웃을 도울 수 있어 행복합니다” 밀양에서 목재가공·건설자재 생산업체를 운영하고 있는 최창해 씨는 지난 2013년 첫 기부를 시작으로 밀양시에 약 5000만 원을 전달했다. “아버지 사업으로 이사도 자주 다니는 등 어려웠던 시기를 겪어서인지 나이가 들고 돈이 모이니 대외활동 보다 기부를 하고 싶었습니다.”그의 기부금은 밀양에서 태어났지만 국적이 없는 아이를 지원하는 등 소외계층을 위해 쓰였다. 또 최 씨는 주거환경이 열악해 어려움을 겪고 있는 복지사각지대 소외계층을 위해 ‘행복나눔지원단’의 단장으로 주택 제작과 자재 지원 등의 봉사활동도 했었다. 총 1억 원을 기부하고 싶다는 최 씨. “능력이 되는 한 꾸준히 기부하고 싶습니다. 건강하게 일해서 모은 돈으로 어려운 이웃을 도와 행복을 나누고 싶습니다.” “사랑하는 반려동물과 함께 나눔을 실천해 더 의미있어요” 반려견 박까미 이름으로 기부를 실천하고 있는 박민주 씨. 까미는 9년 전 비 오는 날 구조된 유기견으로 지금은 누구보다 사랑받는 집안의 귀염둥이 막내이다. “10년 전, 우연히 베이비박스 관련된 다큐를 보고 충격을 받아 초록우산 어린이재단에 기부를 하기 시작했습니다. 이후 까미를 키우면서 동물보호에 관심을 갖게 됐습니다.” 그는 5년 전부터 동물권행동 카라에 후원을 하고 있으며, 지난 9월부터는 사회복지공동모금회에서 추진하는 반려동물이 나눔을 실천하는 ‘착한펫’ 프로그램에도 참여하고 있다. “까미와 함께하면서 인생관이 많이 바뀌었습니다. 유기견을 지원해 주는 것이 가치 있다고 생각해요. 까미의 이름으로 기부할 수 있어 정말 좋습니다.” "제가 기부를 알리면 남들도 시작하지 않을까요?” 합천군 초계면에서 부식가게를 운영하고 있는 구본일 씨. 불우이웃돕기 성금으로 매년 200만 원씩, 장학금도 매년 40만 원을 기부하고, 독거노인 네 분께 한 달에 한 번 반찬을 만들어 전달하고 있다. 사랑받지 못하고 컸던 어린 시절, 주변의 도움으로 성인이 된 구본일 씨는 아내와 함께 자신이 받은 이웃의 관심과 사랑을 되갚는 마음으로 기부와 봉사에 전념한단다. 10년 이상 익명으로 기부를 하다 얼마 전부터 이름을 밝히기로 마음먹었다. “몰래 기부 하는 게 마음은 편했지만, 아무도 모르게 하니까 사회가 변하지 않더라고요. ‘제가 시작하면 주변 사람들도 함께 움직이지 않을까?’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경남공감>을 보시는 많은 분들도 함께 동참하셨으면 참 좋겠어요.” “제2의 고향 거제, 저에게 기부는 이웃을 사랑하는 마음입니다” 대구에서 태어나 1986년 처음 거제시에 정착하게 된 김석록 씨는 현재 상문동에서 환경미화원으로 일하고 있다. 2019년 제8기 국민추천포상 대통령상까지 수상한 기부의 달인, 석록 씨는 술과 담배를 줄여 월급의 10~20%를 모은다. 분기마다 모은 200~300만 원으로 사회복지회관이나 상문동 주민복지센터를 통해 기부금을 전달하고, 소외계층 어르신들을 위해 직접 키운 농작물도 간간히 전달하고 있다고. “객지생활을 하는 제가 거제에 잘 적응할 수 있었던 건, 당시 거제시 이웃 분들의 도움이 컸어요. 거제에 살면서 배운 건 ‘베풀수록 더 많이 남는다’는 거였거든요. 저는 제가 받은 걸 돌려드리는 것뿐이에요.”
23.12.28.레인 위로 자유롭게 공을 굴린 후, 나란히 세워진 10개 핀을 넘어뜨리는 실내 스포츠, 볼링! 스트라이크로 얻는 쾌감은 없던 병도 낫게 할 만큼 매력이 있다. 경남 시니어들이 펼치는 청춘의 스트라이크 현장을 찾았다. <출처 : 경남공감, 글 백지혜 사진 김정민> 1995년 창단한 경남시니어볼링연합회, 경력 회원 50여명 레인을 따라 비스듬히 굴곡을 만들며 구르던 볼링공이 10개 핀을 ‘우당탕’ 쓰러뜨린다. 시원한 ‘건강 스트라이크’가 여기저기서 터져 나온다. 김해시 풍류동의 한 볼링장을 가득 메운 이들은 한국시니어볼링연맹 산하의 경남시니어볼링연합회 회원들이다. 창원, 김해, 진주 등 경남 각 지역에서 볼링을 사랑하는 사람들이 모여 1995년 창단됐다. 매월 1회, 토요일마다 경남 지역의 볼링장을 순회하며 친선경기를 치르는데, 지난 10월엔 김해시에서 열렸다. 만 50세가 되면 가입할 수 있고 80대도 있는 이곳 50여 명의 회원들은 대부분이 기본 10년 이상, 평균 180점 이상 구력의 소유자들이다. 시니어연맹회장기, 대한볼링협회장기, 대통령기, 시니어연맹전국시도대항기 등 연간 8개 대회에 꾸준히 출전해 기량을 쌓고, 경남도와 우리나라를 대표해 해외로 시니어 볼링 경기를 치르기도 한다. 경남시니어볼링연합회 이경철 회장은 “회원들 대부분이 수십 년 이상 볼링을 즐기고 있다”며, “볼링이 평생 운동으로 충분하다는 것을 회원들이 증거로 보여주고 있다”고 소개했다. 근력 향상, 치매 예방, 스트레스 해소 등 효과 만점 단순히 핀을 향해 공을 굴리는 방식이 어떤 운동 효과를 낼 수 있을까? 현장에서 궁금증이 해소됐다. 볼링은 준비 자세인 어드레스부터 셋업, 투구까지 이어지는 전 과정이 유산소, 심호흡을 단련하는 데 효과적인 운동으로 고도의 집중력이 요구된다. 수준급 회원의 볼링 한 게임은 테니스 30분과 맞먹는 수준의 칼로리가 소모되는 고강도 스포츠임이 틀림없다는 게 전문가의 설명이다. 점수 계산을 해야 하니 치매예방은 물론, 스트레스 해소에도 볼링만 한 게 없다. 배우자 추천으로 시작해 33년째 볼링을 즐기고 있다는 김귀남 씨는 “볼링을 시작한 후 근력이 굉장히 좋아졌다. 볼링을 더 잘하고 싶어서 수영을 시작했는데, 30대와 경쟁해도 체력에서 절대 뒤지지 않는다”며, “재미와 운동 효과를 동시에 누릴 수 있는 운동으로 최고”라고 말했다. “청춘 부럽지 않은 열정과 활력이 건강 비결” 회원들의 열정과 실력은 청춘이 부럽지 않을 정도다. 올해 50세로 막 가입해 막내 회원이나 다름없는 공혜숙(전 볼링선수) 씨는 “체력도 달리고 구력도 예전 같지 않아서 선수 시절이 모두 끝났다고 생각될 즈음 들어왔는데, 어르신들의 활력에 큰 충격을 받았어요. 오히려 제가 기운을 얻어가요. 반백 년을 새로 사는 기분이랄까요?”라며, 서너 게임도 거뜬히 해내는 회원들을 보며 늘 자극을 받는다고 말했다. 확실히 그랬다. 경기 내내 주고받는 에너지와 열기가 서늘한 가을바람을 금세 잠재울 정도였으니 말이다. 경남시니어볼링연합회 이경철 회장은 “볼링은 관절을 사용하면서도 격하지 않아 부담이 적은 운동이다. 회원들과 볼링을 통해 쾌감을 함께 나누다 보면 동료 이상으로 정이 쌓인다”라면서 “초보자들도 간단한 기본기만 배우면 누구나 할 수 있으니 언제든, 누구든 환영한다”고 전했다.
23.11.29.은퇴 후 삶을 제2인생 이라고 부른다. 착실히 은퇴를 준비하는 사람도 늘어나지만 모두가 그런 건 아니다. 앞만 보고 열심히 달려온 자신에게 휴식을 주고 싶어 ‘일단 쉬고, 그 뒤에 생각하자’는 부류도 많다. <제3회 경상남도 중장년 인생 2막 성공 수기 공모전>에서 ‘나의 인생 2막, 1인 6역 무대에 서다’로 장려상을 받은 퇴직 교사 김혜경 씨도 처음엔 그랬다. 그의 스토리를 들었다. <출처 : 경남공감, 글 박정희 사진 유근종> 33년간 집 학교만 알던 진주 삼현여중 음악 교사 “저도 제가 그런 사람인 줄 몰랐습니다. 집과 학교만 오가면서 33년을 살았으니까요.” 날 좋은 날, 진주시 금산면 한 카페에서 만난 그는 은퇴 후 자신이 그렇게 살 줄 몰랐다고 말했다. 경북 경주 출신인 그는 대구에서 대학교를 다니고 1986년 진주 삼현여중 음악 교사로 부임했다. 성악(소프라노) 전공이라 40대까지는 더러 무대에도 서고, 오페라 공연도 했지만 40대 이후부터는 무대에 서지는 않았다. 2019년 명예퇴직 후 다양한 사회활동 눈 떠 그는 33년간 삼현여중 한 곳에서만 교편을 잡았고, 2019년 명예퇴직을 했다. 퇴직 후엔 여행 다니며 ‘우아하게’ 살리라 했다. 그런데 아니었다. 딱 1년은 그렇게 우아했다. 코로나19로 여행 자체가 어려워진 상황도 있었으나 가슴 깊은 곳에 자리하고 있던 ‘봉사’ 욕구가 솟구쳤다. 시작은 ‘한국어 봉사’였다. “외국인노동자가 많이 찾는 교회를 통해 캄보디아 여성에게 2년간 한국어를 가르쳤어요. 그런데 참 이상했어요. 제가 가르친다기보다 세상을 다시 배우는 기분이었다고 할까요. 마치 사회초년생이 된 것 같았죠.” 새로움과 익숙하지 않음에 긴장도 되고 설레기도 하며 재미있었다. 지속적이고 전문적인 활동을 하고 싶었던 그는 정보를 찾아 진주시청 홈페이지를 자주 드나들었다. 사회에 보탬이 되고 싶다는 막연한 생각은 늘 품고 살았는데 이렇게 적극적으로 찾아다닐 줄 ‘정말’ 몰랐다. 하우스어텐던트, 성폭력 예방 강사 등 6개 활동 먼저 ‘하우스어텐던트’가 됐다. 말 그대로 공연장 안내원 역할이다. 경남문화예술회관의 모집공고를 보고 지원했고, 그의 열정 덕에 합격했다. 공연이 있을 때마다 대학생들과 똑같이 유니폼을 입고 공연장을 정리하며, 관객을 맞았다. 절로 미소가 지어졌다. 공연 있는 날이 기다려진다. 진주성폭력상담소에서 200시간 넘게 교육을 받고 성폭력 예방강사로도 활동하고 있다. 교육을 받으면서 세상을 참 몰랐구나, 교편 잡고 있을 때 이런 것을 알았더라면 학생들에게 더 좋은 길잡이가 됐겠다는 생각을 많이 했다. 초·중·고 등 강의 의뢰가 있을 때마다 달려간다. 지난해 5월엔 진주YMCA를 통해 녹색소비 교육도 받고 강사 타이틀도 땄다. 환경 공부를 하며 세상 보는 눈도 달라졌다. 아이들에게 열심히 환경의 중요성을 설파하고 있다. 이름도 어려운 ‘퍼실리테이터’에도 도전했다. 농어촌 개발 프로젝트 사업을 시행하기 전 마을 자원발굴과 주민 의견을 들어 개발 사전작업을 하는 일이었는데, 흥미롭고 의미도 있었다. 올해엔 진주교육청 소속 ‘관계 회복지원단’으로 위촉돼 위기 학급이 좀 더 나은 방향으로 갈 수 있도록 활동하고 있다. 내친김에 신중년에게도 도움이 되고파 진주시에서 추진하는 ‘신중년 리포터 전문강사 양성과정’에도 지원해 선발됐다. 블로그 작성과 인스타그램 제작 방법 등을 가르치고 있다. “도전하면 인생이 행복합니다” 탁상달력을 보여달라고 했다. 지저분하다며 살짝 보여준다. 바뀐 일정, 새로운 일정이 빼곡하다. 교육에, 강의에 힘들지 않을까. “그래서 건강 관리를 위해 요새는 수영도 배웁니다. 이제 겨우 61세잖아요.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는 말에 공감한답니다. 은퇴자분들에게 한마디요? 아유 제가 뭐 잘났다고요. 그래도 이 말씀은 꼭 드리고 싶어요. 혹시 아직도 ‘내가 이 나이에 뭘 더 배워, 그게 쉽겠어?’라며 미루고 망설이시나요? 그게 무엇이든 일단 도전해 보세요. 인생이 달라집니다. 도전하면 제2인생이 훨씬 행복해진답니다.”
23.11.29.추석 연휴에는 가족들이 모여 전통놀이로 정을 나누곤 했다. 그중 연날리기는 남녀노소 할 것 없이 누구나 즐기는 한국 전통 기예이지만 시간이 갈수록 그 모습은 찾아보기 어려워지고 있다. 30년 넘게 전통연을 만들고 보급하는 장인이 있다는 소식에 보물섬신호연보존회 윤종민 회장을 만났다. <출처 : 경남공감, 글·사진 전병권(명예기자)> 끊어지지 않은 실타래 남해군 남면 우형마을 출신인 윤종민 회장의 어린 시절엔 대부분의 아이들이 연날리기를 즐겼고, 또 선친이 연을 잘 만들기도 해서 윤 회장에게 연은 매우 친숙했다. 부산에서 직장 생활을 하던 어느 날 30대 중반의 나이에 부산 해운대에서 국제연날리기대회가 열려 구경을 가게 된 그는 대회가 끝나자마자 해운대민속연보존회에 가입해 연을 만들고 날리는 기술을 익혔다. “국내외 연사들이 모여 다양한 연을 날리는 모습을 보면서 연에 대한 기억과 향수가 되살아났어요.” 취미로 시작한 연 만들기와 연날리기. 윤 회장은 연날리기보다 연 만들기에 더 흥미를 느끼고 사명감을 갖게 됐다. 대나무살을 깎는 칼을 쥐는 법부터 전국의 좋은 한지를 다 써보는 등 연 제작에 필요한 재료들을 공수하고 없으면 직접 만들기에 이른다. 해운대뿐만 아니라 다른 보존회와도 교류하면서 대한민국의 방패연이 세계적으로 가장 우수한 연이라는 확신을 가지게 됐다. 연 제작기술 무형문화재인 배무삼 씨를 찾아 배움을 게을리 하지 않았고, 노력과 사명감은 결실을 보았다. 2004년 제24회 근로자문화예술제(공예 분야)를 시작으로 이후 같은 대회에서 이순신 장군 전술신호연을 출품해 입상하는 등 연 제작 실력을 인정받았다. 30년 넘게 연을 만드는 이유 “연을 공부하면 할수록 저만 즐길 게 아니라 학생들과 학부모들, 우리 후손들이 함께하길 바라는 마음이 생겨났어요.” 그래서 그는 전국의 크고 작은 축제나 행사장에서 재능기부로 연 만들기와 연날리기 시연도 했고, 요청이 있을 때에는 강연이나 수업도 진행하고 있다. 그러면서 또 하나 의미 있는 일을 하고 싶어진 윤 회장은 도시에서 많은 강연과 대회에 참가하면서 기왕이면 고향 후배들과 경험과 기술을 나누고 싶었다. 그래서 그는 2017년 9월 도시 생활을 접고 고향 남해로 돌아왔다. 윤 회장이 귀향하자, 전통연 불모지였던 남해에 전통연의 바람이 불고 있다. 그렇게, 윤 회장을 필두로 2019년 1월 보물섬신호연보존회가 창립됐고 현재 20여 명의 회원이 활동하고 있다. 회원은 취미로 연을 배우고 즐기는 군민들부터 남해군 대표로 대회 참가를 꿈꾸는 ‘예비 전문가’까지 다채롭게 구성돼 있다. 보물섬신호연보존회는 이순신 장군이 활약한 지역인 남해군이기에 이순신순국공원에서 전국 연사들을 모아 연날리기 전국대회가 열리길 소망하고 있다. 하늘을 수놓은 120개의 꼬리연 남해에서 명절 연휴나 큰 축제가 있는 날이면 장관이 펼쳐진다. 꼬리연 120개가 3m 간격으로 400m 길이로 하늘 끝까지 뻗어있다. 윤 회장의 대표적인 기술 창작연이다. 이 장면을 마주한 사람들은 저절로 발걸음을 멈추고 감상하게 된다. 이 또한 대중들에게 연을 홍보하기 위한 의미가 담겨 있다. “연은 만드는 과정이 굉장히 중요합니다. 정교한 수작업이다 보니 정신 건강에도 좋고 놀이로도 그만이지요. 요즘 하늘을 바라보는 놀이는 별로 없잖아요. 아이, 어른 할 것 없이 스마트폰을 보느라 바쁜 현대에는 더 그렇습니다.”
23.09.12.막~ 걸러서 막걸리라 이름 붙여진 술, 그래서 그 옛날에는 가난한 자도 마실 수 있었던 술이었다. 농번기에는 시원하게 농민들의 갈증을 풀어주고, 마을 축제에선 질펀하게 흥을 돋우던 ‘서민의 술’ 막걸리가 지금은 설 자리를 잃고 있다. 이런 가운데 80여 년 동안 변함없이 그 뿌리를 지키며 막걸리의 자부심을 지켜가고 있는 이가 있다. <출처 : 경남공감, 글 정인정(명예기자) 사진 김정민> 물금주조장 장손의 막걸리 숙명 시~원한 막걸리 한잔이 그리울 만큼 한여름 햇볕이 뜨겁던 8월 초, 양산 서리단길(양산시 물금읍 화산길)에 자리한 물금주조장에서 3대째 막걸리를 만들고 있는 김민성 대표를 만났다. “할아버지 할머니가 양조장을 하셨어요. 1941년에 부산 장전동에서 하시다가 한국전쟁 때 양산 남부시장 쪽으로 들어오셨고, 지금 이 자리로 옮긴 건 제가 한 살 때였습니다. 물금역이 가까워서 재료수급이나 물건을 어디론가 보내기에도 딱 좋은 위치였어요. 그리고 지금까지 계속 이 자리를 지키고 있는 거죠.” 김 대표는 스무 살이 되기 전부터 막걸리 영업을 시작했다. 젊고 서글서글한 성격에 붙임성이 좋았던 그에게 맞는 일이었다. 영업이나 배달일이 끝나고 나면 할아버지와 할머니가 술 만드는 모습을 어깨너머로 자연스레 보고 배웠고, 허리와 어깨가 아픈 아버지를 대신해서 힘쓰는 일을 하며 이 일을 숙명으로 받아들였다. 본격적으로 그가 제조와 운영을 도맡은 건 1990년대 후반, 20년 정도 되었다. “아버지가 장남이고 제가 장손이니까 한편으로 이어가야 한다는 생각도 있었지만, 한때는 여기가 싫어서 도망가기도 했습니다. 그중에서도 제가 잘 해낸다 싶으니까 물려주신 거겠죠?” 몸으로 체득한 비법, 정리 기록…2종류 생산 중 할아버지 대부터 이어온 주조 비법은 그 어디에도 쓰여 있지 않았다. 몸소 보고 배우고 부딪히고 만들어가면서 체득한 물금막걸리만의 주조법이 그에게 고스란히 남아있다. 김 대표 자체가 물금막걸리의 80년 맛의 비법인 셈이다. “아들이 물려받을지는 모르겠지만 이제는 주조법을 나름대로 정리하고 기록해뒀습니다.” 물금막걸리는 목 넘김이 좋고 가벼운 듯 부담스럽지 않으면서도 술 본연의 맛을 살렸다는 평판을 듣고 있다. 자고 일어나도 머리가 아프지 않단다. 제조과정은 간단하다. 막걸리의 시작, 어머니가 되는 주모를 만든다. 쌀과 효모, 물을 넣어서 닷새간 1차 발효를 시킨 후에, 고두밥과 물을 넣고 2차 발효. 이틀쯤 후에 또 물을 추가해 3차 발효시킨다. 이렇게 막걸리 한 병을 생산하는 데까지 약 열흘 정도가 소요되고, 한 번에 1000병~1200병 가량 생산한다. 물금막걸리에서 생산하는 막걸리는 총 2종류다. 생막생막걸리만을 생산해오다가 지난해부터는 젊은 사람들과 여성들이 더 쉽게 먹을 수 있도록 사과 막걸리를 새롭게 생산하기 시작했다. 사과막걸리의 경우 마지막 발효 단계에서 100% 사과즙을 넣어 한 번 더 발효시킨다. 막걸리는 물을 섞어서 만드는 술이라 물맛을 어떻게 잡아내느냐가 관건. 목 넘김이 좋은 술맛을 내기 위해서는 더 길게 발효해야 한단다. “좋은 재료로 만들려고 노력…자부심 갖고 지켜나갈 것” 한때는 철광 광산이 있었고 공단도 들어서면서 물금막걸리는 호황을 누렸으나 옛말이 된 지 오래다. 요즘은 워낙 술이 다양해지면서 대형 마트에 납품하기도 힘들어졌다. 소규모 양조장은 더 살아남기 어려워졌다. 양산에도 대표적인 다른 막걸리 주조장이 없어졌다고 한다. “어렵지만 좋은 재료를 써서 만들려고 애씁니다. 아무도 만들지 못하는 물금막걸리를 내가 만든다는 것, 만들었는데 사람들이 맛있다고 해주면 그게 자부심이죠. 집안 대대로 3대째 내려오는 거니까 지켜야죠.”
23.09.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