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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스케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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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해 명동 소쿠리섬의 전설

진해의 관광휴양처 소쿠리섬

 

 

진해 명동 선착장과 해양공원의 쏠라타워 모습

 

소쿠리섬은 육지인 진해구 명동의 신명 마을에서 남서쪽으로 1.5㎞ 정도 떨어진 곳에 위치하고 있습니다. 우도에서 남서쪽으로 약 0.5㎞, 초리도에서 동쪽으로 1㎞ 떨어진 곳에 위치하고 있는 비교적 규모가 큰 무인 도서입니다. 과거 멸치잡이 어민들이 한 때 거주하여 섬의 북쪽 해안에는 멸치잡이와 멸치 가공을 위하여 어민들이 지어놓은 임시 가건물이 아직 몇몇 남아있었습니다.


해마다 여름이면 멸치 건조 작업이 색다른 볼거리를 제공하며, 간조 시 남쪽의 곰섬 사이에 바닷길이 열려 걸어 다닐 수 있으며 자연환경을 보기 위해 많은 관광객들이 찾고 있습니다. 특히 바닷물이 깨끗하고 수심이 얕아 가족 단위의 관광객들이 많이 찾고 있습니다. 명동에서 정기적으로 선박이 운행되고 있어 앞으로도 많은 관광객들이 이용할 것으로 기대되고 있습니다.

소쿠리섬에서 곰섬으로 가는고갯길과 바닷길이 열린 모습

 

소쿠리 섬은 민간 어원설에서 소쿠리를 닮은 지형이라는 의미에서 나온 것으로, 한자로는 ‘궤도(簣島)’로 표기하고 있습니다. ‘소쿠리와 삼태기가 꼴이 비슷하여’ 삼태기 ‘궤(簣)’를 쓴 것으로 전해지고 있습니다.


섬의 면적은 10만 8612㎡이며, 남북의 길이가 약 250m, 동서의 너비가 약 500m로 남북보다 동서로 길게 뻗어 있는 무인 도서입니다. 동서의 두 개의 봉우리로 구성된 섬으로 서쪽의 봉우리는 높이 44m, 동쪽의 봉우리는 41m입니다. 남쪽에 있는 웅도와는 간조 때 사주로 연결됩니다. 사주의 길이는 250m, 너비는 25m에 이릅니다. 섬의 북동쪽 해안에 해식애와 파식대가 발달해 있고, 북쪽 해안에는 자갈 해안이 넓게 나타납니다. 남쪽 해안에는 모래, 자갈 해안이 좁게 나타나고 있습니다. 식생은 주로 20여 년생의 곰솔림이 서쪽 봉우리에 잘 발달되었고, 동쪽 봉우리는 칡이 억새와 뒤엉켜 발달되어 있습니다.

소쿠리섬 낮시간과 야간의 모습

 

소쿠리섬의 얽힌 이야기로는 옛날 ‘곰섬’에 막쇠라는 순박한 어부가 살고 있었습니다. 노총각으로 지내다가 뒤늦게 마을에서 홀로 살던 마음씨 착한 처자와 결혼하여 딸을 하나 두었는데 얼굴이 청초하고 눈썹이 긴 것이 백선꽃을 닮았다고 하여 ‘백선’이라 불렀다고 합니다.


그런데 백선의 모친은 알 수 없는 병을 얻어 시름시름 앓다가 그만 죽고 말았습니다. 세월이 흘러 백선의 나이 어언 18세가 되자 그 아름다움은 근동에 자자하게 퍼져 마을 사람들의 선망의 대상이 되었습니다. 막쇠에게 서로 백선을 달라고 청혼을 하였지만 백선은 아무도 모르게 곰섬의 큰 부자이며 그의 아비가 타는 배의 선주 아들인 가우리와 사랑을 키워가고 있었습니다.
가우리는 어려서부터 배를 잘 다뤄 백선을 태우고 곰섬 앞의 작은 섬으로 가서 아무도 모르게 두 사람만의 사랑을 나누었습니다.
두 사람의 사랑이 하루하루 깊어가던 어느 날 막쇠가 타던 배의 선주는 자신의 아들이 천한 막쇠의 딸과 만나는 것을 알고는 막쇠를 불러 백선을 자신의 아들과 만나지 못하게 하고 어길 때에는 자신의 배를 타지 못하게 할 것이며, 곰섬에서도 살지 못하게 만들겠다고 협박을 하였습니다.

막쇠는 자신의 딸이 마음속에 담아 두고 있는 사람이 가우리라는 말을 듣고 반대하려 했지만,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하고 싶다는 딸의 간곡한 부탁에 못 이겨 자신이 타던 배도 더 이상 타지 않고 백선과 함께 굴과 조개를 잡아 어렵게 연명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그러나 영원히 변치 않을 것만 같던 사랑도 양반 댁 규수를 아내로 맞이하라는 부모의 말을 거역할 수 없었던 가우리는 결국 백선에게 이별을 고했습니다. 백선은 너무나 상심한 나머지 시름시름 앓다가 결국 더 이상 말을 하지 못하는 실어증을 앓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이미 백선의 뱃속에는 사랑하는 가우리의 아이가 자라고 있었습니다. 이 사실을 알게 된 선주는 소문이 퍼질 것을 우려해 곰섬 앞 무인도에 백선 부녀를 가두어 버렸습니다. 하루가 다르게 불러오는 배를 안고 건너편 곰섬을 바라보며 하염없이 울며 지내던 백선은 얼마 후 사내아이를 낳게 되었습니다. 점차 아이가 자라게 되자 멀리서나마 아이를 우리에게 보여줄 일념으로 바닷가에 나가곤 하였습니다.

이 사실을 눈치 챈 가우리의 아내는 시아버지께 이 사실을 고하니 아이마저도 품에서 빼앗아가 버리고 말았습니다. 상심한 백선의 아버지도 병을 얻어 시름시름 앓다가 세상을 떠나 버리고 섬에는 백선 혼자 남게 되었습니다.
자신의 아들을 그리워하던 백선은 단 하루만이라도 바닷길이 열려 자신의 아이를 보게 해 달라고 매일 새벽 용왕님께 기도를 올리기 시작하였습니다. 이에 감동한 용왕은 마침내 백선의 꿈에 매달 보름에 한 번 바닷길을 열어 주겠다고 약속을 하였습니다.
마침내 기다리던 바닷길이 열리기로 한 날 백선은 자신이 아이에게 줄 음식과 손수 지은 옷을 소쿠리에 가득 담아 바닷가에서 바다가 열리기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아직 바닷길이 열리지 않은 시각 곰섬 저편에서 가우리 부부와 자신의 아이가 육지로 떠나가는 모습이 보였습니다. 소리를 질러 불러 보고자 했지만 이미 말을 할 수 없는지라 그저 하염없이 눈물만 흘릴 뿐이었습니다. 정신을 차려 보니 자꾸만 아들의 모습은 멀리 사라져 자고 있었습니다. 백선은 멀리서나마 자식을 볼 수 있는 날이 마지막이라는 걸 깨닫고는 바다로 뛰어들어 그만 죽고 말았다고 합니다.

이내 약속했던 시간에 물이 빠지면서 바닷길이 곰섬과 무인도에 열리게 되고 이를 이상히 여긴 가우리가 곰섬에 들어와 보니 덩그러니 놓여 진 소쿠리에 갖은 음식과 옷가지만 남아 있을 뿐 백선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습니다. 가우리는 백선이 자신 때문에 목숨을 끊게 되었음을 알고 자신도 바다에 몸을 던지고 말았습니다. 그 후 사람들은 백선의 지순한 사랑과 아이를 사랑하는 마음을 기려 그 섬을 ‘소쿠리섬’이라 부르고 바닷길이 열리는 날이 되면 모두들 소쿠리를 하나씩 들고 가서 그곳에서 조개와 굴 등을 따서 사랑하는 부모와 아이들에게 먹이는 풍습이 생기게 되었다고 합니다.

요즘도 바닷길이 열리는 낮시간 때에는 육지에서 배로 들어온 관광객들이 열린 바닷길을 따라 조개와 해삼 낙지를 잡는다고 모두들 분주히 움직이는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여름이면 더 많은 관광객들로 붐비는 곳이 돼버린 소쿠리섬.

한여름이 오기전 소쿠리섬에 얽힌 백선의 전설을 생각하며 가족과 함께 진해구 명동 소쿠리섬을 한번 찾아가 보는건 어떨까요.

명동 선착장에서 도선 운항시간은 아침6시20분 출발을 시작으로 50분 간격으로 오전7회 차례 오후 9회 차례로 운항중이니 운항시간을 미리 알아보시고 여행계획을 세우는 것도 좋을 듯 합니다.

 

 


 

진해 명동 소쿠리섬의 전설 저작물은 공공누리 출처표시+변경금지 조건에 따라 이용할 수 있습니다.

진해 명동 소쿠리섬의 전설 저작물은 공공누리 “출처표시+변경금지” 조건에 따라 이용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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