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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yeongnam Art Museu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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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도립미술관 소장품 산책] 13. 순수조형 의지로 한국적인 미의식을 구현해낸 작가, 전혁림

  • 작성자 : 관리자
  • 작성일 : 2024-02-14

[현재 경남도립미술관 수장고에는 작품 1300여 점 이상이 보관돼 있다. 전시 작품을 구매하거나, 매년 정기적으로 도내 작가 작품을 사들인 결과다. 하지만, 아쉬운 건 도대체 수장고 안에 어떤 작품이 들었는지, 일반인이 쉽게 알 수는 없다는 점이다. 그래서 도립미술관 학예사를 통해 수장고 작품을 하나하나 꺼내 보기로 했다. 글과 사진을 통해서지만, 이렇게라도 하면서 수장고 관리 문제에서부터 도민들과 작품을 공유하는 방법까지 멀리 내다보고 고민해보자는 취지다. ]

 

전혁림(全爀林·1915-2010)은 1915년 통영시에서 소지주의 3남 4녀 중 차남으로 태어났다. 1929년 통영보통학교를 졸업하고 통영수산학교에 진학했지만, 학교 공부가 적성에 맞지 않았던 그는 일본인 아마추어 화가 가와시마 도시야스(樺島年案) 선생과 함께 그림을 그리면서 미술에 눈을 뜬다.

 

1933년 수산학교를 졸업하고 진남금융조합에서 근무하며 독학으로 수채화와 유화를 그리던 화백은 1938년 ‘부산미술전람회’에 입선하게 되면서 부산·경남지역 신진 양화가로 주목을 받는다. 해방 이후 전혁림은 미술계에 자리 잡고 활동을 이어간다. 1947년 ‘경남미술연구회전’에 참가했으며, 1948년에는 ‘통영문화협회’를 창립해 통영지역 문화예술 창달을 도모했다.

 

1953년 제2회 ‘대한민국미술전람회’ 서양화부에서 반추상의 <늪>으로 특선 및 문교부장관상을 수상한 이후 화백은 통영과 진해, 부산, 서울 일본 등에서 수차례 개인전과 그룹전을 개최하며 왕성하게 활동했다. 1977년 부산을 떠나 다시 고향 통영으로 돌아온 전혁림은 1979년 〈계간미술〉에서 과소평가받는 작가로 소개되면서 중앙화단으로부터 큰 관심을 받는다. 이후 2010년 향년 95세로 작고할 때까지 거의 매해 작품을 전시하며 꾸준히 활동했다.

 

한국현대미술사에서 전혁림은 구상과 추상을 자유로이 넘나들며 전통과 현대를 구현한 작가로 기록된다. 전혁림은 형편이 허락하지 않아 정식 미술교육을 받지 않았지만 미술잡지, 교양서적, 미술 강습회 등 다양한 경로로 미술을 습득하며 자신만의 조형성을 구축해 나갔다. 오히려 정규과정을 밟지 않았기에 특정한 미술 사조나 양식에 얽매이지 않고, 오로지 자신의 감성과 타고난 직관에 따라 창작에 몰입하고 정진함으로써 자신만의 길로 갈 수 있었으리라 추측된다.

 

“내 작품에는 충무(지금 통영)라는 지역의 고유성이 스며있겠지만, 이는 우리 한민족의 미의식과도 크게 다르지 않으리라고 나는 믿는다. 근래의 작품은 추상화된 우리의 자연이고 전통이기 때문이다. 내가 십 대부터 관심을 기울였던 민화 같은 것에서도 우리는 폭넓은 공감대를 확인할 수 있지 않은가.”

 

전혁림은 평생에 걸쳐 ‘한국적 미의식’을 시각화하고자 한 작가였다. 그 수단으로 민화와 자수, 조각보, 목기 등을 차용했고, 통영을 비롯해 남해 앞 바다의 향토적 풍경을 그렸다. 화백은 자신이 나고 자란 통영이라는 지역의 고유성이 한민족의 미의식과 크게 다르지 않다고 믿었고 이를 최대한 단순화시키고 축소하는 방식을 취함으로써 추상화된 자연과 전통으로 귀결되는 전혁림만의 조형언어를 완성해냈다.

 

경남도립미술관이 소장하고 있는 '한국의 환상'(1983)은 전혁림의 화풍이 두드러지게 변화한 1980년대 초반의 작품이다. 이 시기 작품에 유달리 토속적 정취가 물씬 풍기는 통영 지역 풍물적 기물들이 빈번히 등장한다. 목기와 보자기, 단청, 노리개, 석류, 새, 모란 등과 같이 전통적이고 민화적이라 할 수 있는 정물 소재들을 한 화면에 중첩, 병렬시켜 배열해나가는 구성적 실험의 단계들을 보여주고 있다.

 

형식상 초기의 작품들은 거친 붓 터치에 무거운 색상이었다면, 이 시기의 작품은 붓 터치가 차분해진 동시에 면의 세분화로 다소 복잡한 구도를 갖고 있으며, 후기의 정돈된 추상형태에 도달하는 과정의 모습을 보이고 있다. 색채 또한 이전의 어두운색보다는 밝고 다양하지만 후기의 원색이 아닌, 중채도에서 저채도의 색을 주로 사용하였다. 이 시기에 제작된 작품들은 '한국의 문'(1982), '한국적 풍물'(1982), '한국적 정물'(1983), '한국의 자연'(1983), '한국의 산과 들'(1983)등의 명제를 붙였다. '한국의 환상'은 작가의 평생 과업으로 여겼던 ‘한국적 미의식’의 시각화로 도달하기 위해 고군분투한 전혁림의 고뇌와 실험의 과정을 명증해주는 수작이라 할 수 있다.

 

/최옥경 경남도립미술관 학예연구사

 

※참고문헌

조은정, '1950년대 한국화단과 전혁림의 미술사적 위치', 〈한국 현대 미술의 거장 전혁림 특별전〉, 경남도립미술관, 2006

박영택, '전혁림 작업과 한국의 전통문화-민화를 차용한 작업을 중심으로', 〈한국 현대 미술의 거장 전혁림 특별전〉, 경남도립미술관, 2006

<전혁림 회고전> 도록, 〈전혁림 화집〉, 일민문화관, 1994<백년의 꿈-전혁림 탄생 100년 기념전> 도록

〈백년의 꿈-전혁림 탄생 100년 기념 화집〉, 이영미술관, 2015

 

 

이 보도자료와 관련하여 보다 자세한 내용이나 취재를 원하시면 경남도립미술관 운영과 최옥경 학예연구사(055-254-4637)에게 연락주시기 바랍니다.

 
 
 

출처 : 경남도민일보(https://www.idomin.com)

https://www.idomin.com/news/articleView.html?idxno=901953

[경남도립미술관 소장품 산책] 13. 순수조형 의지로 한국적인 미의식을 구현해낸 작가, 전혁림 저작물은 자유이용이 불가합니다.

[경남도립미술관 소장품 산책] 13. 순수조형 의지로 한국적인 미의식을 구현해낸 작가, 전혁림 저작물은 자유이용이 불가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