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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미술을 빛낸 경남의 거장들] (2) 김종영

  • 작성자 : 관리자
  • 작성일 : 2024-02-14

[한국미술을 빛낸 경남의 거장들] (2) 김종영

조각조각 깎지 않은 ‘불각의 미’… 한국 추상조각 선구자

 

형상 재현하지 않는 조각으로 삶의 도리 추구

32년간 후학 양성 … 한국 조각예술 교육 초석

창원 사대부 집안서 태어나 시·서·화에도 능통

 

“큰 고목의 정자나무와 봄이면 뒷산의 진달래와 철쭉꽃이 어우러져 피고, 마을 집 돌담 너머로 보이는 복숭아꽃 살구꽃도 아름다웠다.” 문학가 이원수(1912~1981) 선생은 창원 소답리(현재 소답동)를 이렇게 회상하며 동요 ‘고향의 봄’을 만들었다. 바로 이곳이 한국 추상조각의 선구자 우성 김종영(1915~1982)의 고향이기도 하다. ‘울긋불긋 꽃대궐’로 은유된 창원 소답리의 전통사대부 집안에서 태어난 그는 시·서·화에 능통했던 부친(성재 김기호)으로부터 소양 교육을 받았으며 보통학교 졸업 후 1930년 서울 휘문고등보통학교로 유학을 떠났다. 그는 서울 유학 중에도 부친과의 편지에서 선비로서 갖춰야 할 예의범절과 서예를 지도받았다. 미술반에서 서양화를 배우며 미술가의 꿈을 키웠고, 부친의 적극적인 도움으로 1936년 동경미술학교 조각과 소조부에서 유학했다. 일본에서 공부를 마친 그는 조선에 몇 안 되는 조각가임에도 화단과는 거리를 두고 고향으로 돌아와 주위 사람들의 얼굴을 만들거나 주변 풍경을 스케치하며 조용한 생활을 이어갔다. 그러던 중 1947년 스승 장발(서울대학교 미술대학 초대학장)의 권유로 서울대학교 미술대학의 교수직을 맡아 1980년 정년퇴임 때까지 32년간 후학을 지도하며 우리나라 조각예술 교육의 초석을 다졌다.

 

김종영의 예술 세계를 우리는 주로 ‘불각(不刻)의 미(美)’로 이야기한다. 그는 조각가로서 ‘불각’ 즉 형상을 재현하지 않는 조각을 지향하며 삶의 도를 추구하고자 했는데, 이러한 작업 태도는 동양의 ‘사의(寫意)’, 즉 그림이나 조각에서 사물의 형태보다는 그 내용이나 정신에 치중하는 미학을 체화하면서 형성됐다. 그가 평소 “표현은 단순하게, 내용은 풍부하게”라고 말했던 것은 이를 쉽게 반영하는데, 이러한 사상은 조각 행위 자체를 최소화함으로써 사물의 본성적 진리를 추구하는 그의 작품 세계를 관통한다. 단순한 형상으로 미적 효과를 불러오는 그의 조각은 본래 사물이 가진 속성을 형태로써 속이지 않는 불각의 조각들을 탄생시켰다.

 

깎지 않음을 통해 삶의 도리를 추구하는 사람, 즉 ‘불각도인(不覺道人)’의 경지를 추구하였던 그의 예술적 태도를 형성하는 근저에는 어린 시절부터 가학(家學)으로 익혀온 한학(漢學)과 서예의 영향이 크다고 볼 수 있다. 그는 휘문고등보통학교에서 수학할 당시 동아일보사가 주최한 제3회 전조선학생작품전람회 서예 부문에서 안진경체로 ‘원정비(元靖碑)’를 써서 중등부 장원을 한 적이 있다. 당시 그의 서예 실력이 매우 출중하여 중학생의 실력이라고 믿을 수 없었던 심사위원들이 직접 써보기를 요청했다는 일화가 전해지기도 한다. 서예는 평생 그의 예술관을 형성하는 근저이면서 심신을 수련하는 필수적인 활동으로 작용하였다. 주로 장자(莊子)의 대종사(大宗師)와 노자(老子) 도덕경의 일부, 그리고 추사 김정희(秋史 金正喜)가 말하였던 금강안(金剛眼)에 대한 구절을 즐겨 썼으며, 특히 추사 선생의 ‘완당집고첩(阮堂執古帖)’에 있는 유희삼매(游戱三昧)를 즐겨 감상했다고 한다.

 

‘작품66-1’(1966), ‘작품 67-5’(1967)는 채움과 비움이라는 서예의 조형성과 ‘주역(周易)’의 논리인 음양의 조화론에서 가능성을 찾으며 순수한 추상적 작업에 몰입했던 시기(1964-1972)에 제작된 작품들이다. 그는 1958년부터 본격적으로 추상 조각 작품을 제작하면서 작품 명제를 ‘작품’이라 하고 그 뒤에 제작 연도와 순서를 적었다. 이는 특정 제목으로 인해 관객이 불필요한 편견을 갖지 않도록 하기 위함이었다. 그가 1980년에 쓴 자서(自書)에 “자연현상에서 구조의 원리와 공간의 변화를 경험하고 조형의 방법을 탐구하였다”고 쓴 대목은 두 작품에 대한 감상의 깊이를 더한다. ‘작품78-26’(1978)은 인위성을 배제하고 형태의 근원을 추구하는 그의 예술철학인 ‘불각(不刻)의 미(美)’를 완성한 시기(1973-1982)에 제작된 작품 중 하나이다. 무심한 돌덩이는 유기적인 조형성을 수용하면서도 재료가 지니는 본성적 진리인 중량감과 촉각적 재질감을 그대로 드러낸다.

 

특정 사물의 재현이 아닌 단순하고 간결하게 조각된 작품은 사물의 본질을 사유하게 하며 마치 한 그루의 나무처럼, 혹은 한 점의 구름처럼, 또는 바람에 날리는 머리칼처럼, 그 어떤 형태에도 사로잡히지 않으며 자연스럽게 존재하고자 한다. 이는 ‘깎지 않음을 통해 삶의 도리를 추구했던 사람’인 김종영의 삶과 예술을 잘 드러내며 절제된 형태 속에서 작품의 의미를 넘어 오래된 미(美)의 의미를 되새겨보도록 한다. 아울러 먹으로 그린 작품 ‘나무가 있는 풍경’(1971)은 그 무엇에도 사로잡히지 않으려는 그의 조각 세계를 절제된 붓질 사이에서 더욱 깊이 헤아려볼 수 있도록 한다.

경남도립미술관 학예연구사 이미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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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경남신문 (knnews.co.kr)

[한국미술을 빛낸 경남의 거장들] (2) 김종영 :: 경남신문 (knnews.co.kr)

 
 

[한국미술을 빛낸 경남의 거장들] (2) 김종영 저작물은 자유이용이 불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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