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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yeongnam Art Museu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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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도립미술관 소장품 산책] 14. 소외된 자들의 실존과 연대를 이끄는 작가, 윤석남

  • 작성자 : 관리자
  • 작성일 : 2024-02-14

[현재 경남도립미술관 수장고에는 작품 1300여 점 이상이 보관돼 있다. 전시 작품을 구매하거나, 매년 정기적으로 도내 작가 작품을 사들인 결과다. 하지만, 아쉬운 건 도대체 수장고 안에 어떤 작품이 들었는지, 일반인이 쉽게 알 수는 없다는 점이다. 그래서 도립미술관 학예사를 통해 수장고 작품을 하나하나 꺼내 보기로 했다. 글과 사진을 통해서지만, 이렇게라도 하면서 수장고 관리 문제에서부터 도민들과 작품을 공유하는 방법까지 멀리 내다보고 고민해보자는 취지다. ]

 

윤석남(85)은 한국 미술계에서 여성주의 미술을 개척하고 발전시킨 대표적인 작가다. 결혼과 출산 후 40세가 되어서야 본격적인 작업을 시작했던 그는 어머니 이야기로 출발해 ‘모성’, ‘자아 정체성’, ‘여성사’, ‘돌봄’, ‘생명’ 등 삶을 관통하는 주제들을 서정성이 돋보이는 특유의 조형 언어로 시각화해왔다. 또한 여성 문인들과 지속적으로 교류하고, 여성주의 문화 활동에 적극 참여하면서 평등사회를 향한 페미니즘의 목표를 실천하려는 부단한 노력을 계속했다. 40여 년간 이어온 작가의 왕성한 활동은, 한국 여성주의 미술사와 궤적을 같이 한다.

 

어린 시절부터 글을 쓰고 그림을 그리는 것을 좋아했던 그는 화가가 되면 좋겠다는 막연한 꿈을 꿨다. 하지만, 어려웠던 집안 사정 탓에 그 꿈을 접어야 했다. 20대 후반 결혼을 하며 자연스럽게 주부로서의 삶을 살게 된다. 부족함이 없는 생활이었다. 하지만 잃어버린 정체성을 되찾고 싶은 마음이 커져만 갔고, 무언가를 해야만 한다는 절박한 심정과 자기표현에 대한 내면의 강렬한 욕구를 발견하고 화가가 되겠다는 목표를 갖게 된다. 시어머니를 모시고 살던 집에 화실을 만들고 인물화를 그리기 시작했다.

 

그가 그린 첫 번째 인물은 다름 아닌 어머니였다. 격변의 시대에 39세의 나이로 남편을 잃고 오랜 시간 인내하며 홀로 6남매를 키워낸 어머니를 먼저 그리지 않고서는 자신의 이야기를 할 수 없었다고 작가는 술회했다. 1982년 서울 미술회관(현 아르코미술관)에서의 첫 개인전 〈윤석남〉에서 어머니와 시장에서 장사하는 여성들의 모습을 관찰해 묵직하면서도 대담한 붓질로 사실적으로 그려낸 유화 작품들을 선보였는다. 이를 통해 당시 남성 화가들의 단색화나 추상회화가 주류였던 미술계에서 독특한 인상을 남겼다. 개인전 이후 작가는 어머니와 모성에서 보편적 여성의 다양한 층위로 작품세계를 확장시켜 나갔다.

 

김인순, 김진숙 등과 함께 ‘시월모임’을 결성해 1986년 개최한 전시 〈반(半)에서 하나로〉는 한국에서 여성주의 미술을 표방한 최초의 전시로 주목을 받았다. 윤석남은 사회 고발적이거나 투쟁적인 형상을 구현하기보다, 전쟁과 분단의 한국 현대사 속에서 가혹한 길을 걸어온 여성들과 그 삶에 초점을 맞추며 모성의 강인함과 억눌려온 여성들의 내면을 자연스럽게 드러냈다. 그가 작품을 통해 표현한 자전적 이야기들은 결국 시대가 요구하는 담론과 맞닿아 있었다.

 

두 차례의 늦은 미국 유학을 통해 그의 예술관은 보다 견고해졌다. 루이스 부르주아나 브롱스 뮤지엄에서 한 남미작가의 폐목재로 만든 대형 설치 작품을 보고 큰 영감을 받았다. 내용과 형식의 결부, 페미니즘 의식, 그리고 평면을 탈피한 입체적 조각과 설치로의 확장을 꾀한다. 특히, 버려진 나무가 가진 투박한 질감, 거친 흉터, 얼룩과 옹이 등에서 오랜 세월 억압받았던 늙은 여성의 피부를 떠올려 나무의 결함을 그대로 살린 여성 조각을 시도했다. 그 후 작가는 자신과 역사 속 배제되었던 여성들, 그리고 2000년대 이후부터는 인간에 의해 소외되는 동식물까지 소환하며 더욱 넓은 모성 개념과 돌봄을 다루며 드로잉, 회화, 조각, 설치 등 끊임없이 새로운 작품을 선보여왔다.

 

경남도립미술관이 소장한 윤석남의 'Wing 2'(2004)는 ‘늘어나다’ 라는 소주제 아래 제작된 여성의 상반신 조각 작품이다. ‘늘어나다’ 연작은 여성들의 몸의 일부가 길게 늘어나거나 크고 작은 날개가 돋아난 모습을 확인할 수 있다. 'Wing 2'(2004) 역시 그늘진 큰 눈, 무표정한 모습이 약간은 피로한 듯 보이는 여성의 어깨 한 켠에 오밀조밀한 꽃문양 자개가 장식된 작은 날개가 하늘을 향해 돋아나 있다. 서로 다른 시공간 속에 흩어져 물리적으로 접촉할 수 없는 존재들에게 닿아 영혼의 교감과 연대를 제안하는 작가의 희망적 의도가 담겨 있다.

 

/안진화 경남도립미술관 학예연구사

 

※ 각주

‘늘어나다’ 연작의 이미지는 윤석남 작가 홈페이지에서 확인할 수 있다.(http://yunsuknam.com)

 

※ 참고문헌

1. 김현주 외, 〈핑크 룸 푸른 얼굴: 윤석남의 미술세계〉, 현실문화, 2008.

2. 〈SeMA Green: 윤석남 ♥ 심장〉, 서울시립미술관, 2015.

3. 김재환, '경남도립미술관 명작 둘러보기 (12)', 〈월간경남〉, 2021년 6월호.

 

 

이 보도자료와 관련하여 보다 자세한 내용이나 취재를 원하시면 경남도립미술관 운영과 안진화 학예연구사(055-254-4636)에게 연락주시기 바랍니다.

 

 

출처 : 경남도민일보(https://www.idomin.com)

https://www.idomin.com/news/articleView.html?idxno=903253

[경남도립미술관 소장품 산책] 14. 소외된 자들의 실존과 연대를 이끄는 작가, 윤석남 저작물은 자유이용이 불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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