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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yeongnam Art Museu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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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도립미술관 소장품 산책] 15. 지속 가능한 퍼포먼스, 이건용의 ‘이벤트-로지컬’

  • 작성자 : 관리자
  • 작성일 : 2024-02-14

[현재 경남도립미술관 수장고에는 작품 1300여 점 이상이 보관돼 있다. 전시 작품을 구매하거나, 매년 정기적으로 도내 작가 작품을 사들인 결과다. 하지만, 아쉬운 건 도대체 수장고 안에 어떤 작품이 들었는지, 일반인이 쉽게 알 수는 없다는 점이다. 그래서 도립미술관 학예사를 통해 수장고 작품을 하나하나 꺼내 보기로 했다. 글과 사진을 통해서지만, 이렇게라도 하면서 수장고 관리 문제에서부터 도민들과 작품을 공유하는 방법까지 멀리 내다보고 고민해보자는 취지다. ]

 

한국 실험미술 1세대 작가인 이건용(1942~ )은 황해도 사리원 출생으로 홍익대학교 미술대학 서양화과(1963년 입학, 1967년 졸업), 계명대학교 미술교육대학원을 졸업했다. 1978년 목원대학교에서 강사로 활동하면서 대전의 행위미술의 발전에 영향을 끼쳤고, 1981년부터 1999년까지 군산대학교에서 후학을 양성하였으며 전위적이고 실험적인 태도로 작업 활동을 이어오고 있다.

 

그가 본격적으로 활동하기 시작한 1960-70년대 한국 사회는 전후 남북 분단의 이념 대립이 지속되는 가운데 압축적인 근대화와 산업화로 급속한 사회변화를 맞이하던 시대였다. 이러한 사회 현상은 이건용과 같은 예술가들의 작업 태도에 자연스럽게 반영되었다. 특히 국가 권력에 대한 저항과 개인의 삶을 영위하기 위한 타협은 세계의 모순을 더욱 직접적으로 직면하게 했다. 이러한 태도는 새로운 세계 질서에 대해 갈망으로 이어지며 다양하고 도발적인 예술실험을 실천했던 한국 ‘실험미술’의 시발점이 됐다. 1969년 미술 그룹 ST(Space and Time)조형미술학회1)를 결성하면서 현대미술에 대한 이론적 탐구와 실제 미술 작업의 실천을 긴밀히 연결하고자 했으며, 또 다른 주요 집단이었던 AG(Avant-Garde, 한국아방가르드 협회)2)의 일원으로 활동하면서 한국 행위미술의 흐름을 함께 해왔다. 이 두 그룹은 보수화된 기성세대의 형식주의 모더니즘3) 미술에 대한 반발과 ‘예술이란 무엇인가’라는 근원적인 물음을 제기하며 행위(퍼포먼스), 설치, 오브제, 비디오, 영화 등 새로운 매체를 통해 시대적 질문에 대한 논리적인 답변을 찾고자 했다.

 

그는 1975년 <이벤트-현신(現身)>이라는 제목으로 자신의 신체를 이용한 최초의 퍼포먼스인 '동일면적'과 '실내측정'4)을 발표하면서 작품 과정에서의 논리적 조건을 강조하였는데 이러한 퍼포먼스를 ‘이벤트-로지컬’이라 지칭하였다. 이건용의 작품 세계의 주축이 되는 ‘이벤트-로지컬’은 ‘장소’, ‘행위’, ‘신체’, ‘언어’를 기반으로 공간적, 신체적 조건을 설정한 후 행해지며 이와 같은 방법론은 회화 연작 '신체드로잉'5)에도 동일하게 적용된다. 그는 화면 뒤에서, 옆에서, 혹은 화면을 등지거나 화면을 뉘어놓은 채 드로잉하며 전통적 회화의 방법론, 즉 왜 화면을 마주보면서 그려야만 하는가에 대한 의문을 제기하며 기존 회화방식의 해체를 통해 새로운 질서에 대한 예술실험을 시도했다.

 

경남도립미술관이 소장하고 있는 '신체드로잉 76-2'는 작가가 화면을 등지고 정면을 바라보며 등 뒤에 있는 화면에 그림을 그린다는 조건을 설정한다. 이러한 조건에서 붓을 잡은 팔은 최대한 길게 뻗어 머리 위부터 허리를 숙인 발아래까지 사방을 움직이도록 한다. 결국 화면은 작가가 설정한 신체와의 관계에 따라 선의 흔적으로 채워지며 팔이 닿을 수 없었던 부분으로 인해 신체의 일부를 조형적으로 드러낸다. 이와 같이 제작된 '신체드로잉 76-2'는 작가의 퍼포먼스 ‘이벤트-로지컬’과 결코 분리될 수 없고, 단순하고 자명한 논리를 가진 ‘이벤트-로지컬이 일회적인 이벤트가 아니라 작품으로 지속될 수 있다는 사실을 증명한다. 다시 말해 이건용의 이 작품은 단일한 회화 작품으로서의 가치를 넘어 ’이벤트-로지컬‘의 흔적으로 동시에 존재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여기서 우리가 주목해야할 것은 실험미술의 속성이 그러했듯이 ’이벤트-로지컬‘의 사건화된 형식, 즉 행위가 아니라 그것이 기존 질서에 대해 던지는 질문, 또는 세계라는 존재에 대한 물음이거나 어떤 사건 그 자체일 것이다.

 

“주의할 것은 행위가 이벤트의 목적이 아니듯이 논리의 연구 문제도 결코 우리의 목적이 될 수 없다는 점입니다. 이것들은 사건을 구성하기 위한 수단에 불과하고, 따라서 우리의 근본 목적인 사건 자체를 묻는 데 있다는 것입니다.”6)

 

/이미영 경남도립미술관 학예연구사

 

 ※각주 

1)1969년부터 1981년까지 미술가 이건용(1942~)과 평론가 김복영(1942~)의 주도로 활발하게 활동했던 미술 그룹 ST는 한국에서 개념미술을 처음 본격적으로 시도했던 집단으로 손꼽힌다.

2)1969년 6월 결성된 AG는 오광수, 이일 등의 미술비평가들과 전위예술을 표방하는 젊은 예술가들이 모여 집단 활동을 시작한 대표적인 선례이다. 참여 작가로는 이건용을 비롯한 하종현, 김구림, 김한, 이승조 등이 있다.

3)미학과 미술비평의 한 입장으로서 형식주의(formalism)는 미술작품의 의의가 작품의 내용보다는 작품의 형식에 있으며, 이 논리의 최일선에는 ‘전통’의 시대에는 공식적으로 인정될 수 없는 ‘예술의 자율성’에 관한 신념이 자리 잡고 있는데, 형식주의는 예술의 자율성을 시각적인 영역에서 추구한 흐름, 즉 모더니즘을 말한다.

4)두 개의 퍼포먼스, ‘이벤트-로지컬’은 동일한 사물(혹은 사건, 언어, 존재 등)이 그 상태와 위치 등의 조건에 따라 다르게 인식되어질 수 있음을 보여준다.

5)회화 연작 신체드로잉은 ‘이벤트-로지컬’과 관계하며 76-1부터 76-6까지 초연 및 재연 당시의 영상과 사진이 남아있다. 회화로서 신체드로잉은 영상이나 사진자료와 더불어 ‘이벤트-로지컬’의 또 하나의 흔적이자 기록으로서 미술 아카이브와 관계한다.

6)김용민, 성능경, 이건용, 사회 김복영, 〈사건, 장과 행위의 총합 ‘로지컬 이벤트’〉, 46쪽.

 

※참고문헌

우정아, 〈한국 현대미술에 나타난 개념미술의 담론적 형성과 실천의 양상: S.T 조형미술학회를 중심으로〉 한국미술사교육학회, 2021

조주연, 〈형식주의와 모더니즘〉 현대미술사연구 제16집, 2004

김미경, 〈한국의 실험미술 : AG를 중심으로〉 한국근현대미술사학회, 1998

안소현, '이벤트-로지컬: 지금, 다시, 그 자명함에 대해' 갤러리현대 전시<이건용 이벤트-로지컬>도록, 2016

이미영 '장소, 행위, 신체, 언어로서의 아카이브' 경남도립미술관 전시 <아카이브 리듬>도록, 2023

 

 

이 보도자료와 관련하여 보다 자세한 내용이나 취재를 원하시면 경남도립미술관 운영과 이미영 학예연구사(055-254-4635)에게 연락주시기 바랍니다.

 

 

출처 : 경남도민일보(https://www.idomin.com)

https://www.idomin.com/news/articleView.html?idxno=903642

[경남도립미술관 소장품 산책] 15. 지속 가능한 퍼포먼스, 이건용의 ‘이벤트-로지컬’ 저작물은 자유이용이 불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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