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보마당

Gyeongnam Art Museum

자료실

[경남도립미술관 소장품 산책] 16. 수고스러운 수공(手工) 연출을 통해 이미지 생산하기, 정연두

  • 작성자 : 관리자
  • 작성일 : 2024-02-22

[현재 경남도립미술관 수장고에는 작품 1300여 점 이상이 보관돼 있다. 전시 작품을 구매하거나, 매년 정기적으로 도내 작가 작품을 사들인 결과다. 하지만, 아쉬운 건 도대체 수장고 안에 어떤 작품이 들었는지, 일반인이 쉽게 알 수는 없다는 점이다. 그래서 도립미술관 학예사를 통해 수장고 작품을 하나하나 꺼내 보기로 했다. 글과 사진을 통해서지만, 이렇게라도 하면서 수장고 관리 문제에서부터 도민들과 작품을 공유하는 방법까지 멀리 내다보고 고민해보자는 취지다. ]

 

하나의 무대가 있다. 무대 위에는 한 쌍의 남녀가 스포트라이트를 받으며 구애의 몸짓을 펼치고 있다. 댄스공연 무대인가 싶다가도 실제 공연이 펼쳐지는 것 같지는 않다. 사진을 조금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그 이유를 찾을 수 있다. 야외무대임에도 실내용 가림막 천이 무대 앞에 설치되어 있고, 무대에 올라가기 위한 나무계단이 무대 옆이 아닌 앞에 ‘임시방편용입니다' 라고 말하듯 배치되어 있다. 더군다나 오른쪽 하단은 가림막 천이 무대를 다 가리지 못해 허술함이 그대로 드러난다. 또한 사진의 전경인 무대 위의 빛과 후경에 펼쳐진 도시 야경은 사진을 모르는 사람이 봐도 이질감이 느껴진다. 초창기 디지털 합성사진의 느낌이 물씬 풍기는 수준이다. 그런데 이 사진은 합성이 아니다. 4X5 대형 필름 카메라로 현장을 그대로 촬영한 사진이다. 도대체 어떻게 된 일일까.

 

이 사진은 정연두 작가가 2006년과 2007년에 걸쳐 사진을 찍을만한 장소를 찾아 십여 명의 스텝들과 함께 돌아다니면서 작업한 '로케이션(location)' 시리즈 중 하나다. 로케이션은 영화나 드라마 용어로 야외 촬영지를 가리킨다. 보통 영화에서는 야외 촬영 장면을 최대한 자연스럽게 연출하려고 노력한다. 소품과 조명 카메라 조작이나 특수기법은 모두 자연스러움을 연출하기 위해 동원되는 도구들이다. 촬영 현장에는 철저하게 의도된 소품과 무대 장치가 설치되고, 정성스럽게 세팅한 조명 아래에서 카메라가 돌아간다. 정연두 작가의 '로케이션' 역시 이 모든 과정이 수반되는 수고스러운 작업이지만 의도는 정반대다. 그의 '로케이션'에서는 확실히 부자연스러움과 어색함을 추구한다.

 

예컨대 'location #8'(2006)은 남산타워 케이블카가 도착하는 건물 옥상에서 촬영한 사진이다. 작가는 옥상에 세로 8미터 가로 10미터 크기의 무대를 직접 만들었다. 원래 존재하고 있던 무대가 아님을 드러내기 위해 실내용 가림막 천을 무대 앞에 설치하고 무대의 나무 재질과 전혀 어울리지 않은 재료로 간이 계단을 만들어 떡하니 무대 앞에 두었다. 무엇보다 무대 오른쪽 끝 가림막 천을 완전히 설치하지 않아 빈속이 보이는 무대를 뷰파인더에 들어오도록 의도했다. 사진을 보는 사람이 ‘이 사진은 매우 어색한 사진입니다’라는 걸 적나라하게 느끼도록 마련한 회심의 장치다. 무대 뒤로 보이는 명동과 서울 시내 야경은 실내용 조명으로 연출된 무대 위 분위기와는 확연히 달라, 옛날 합성사진 같은 어색함이 느껴진다.

 

인공지능(AI)에 의한 딥페이크(deepfake) 기술로 실제와 가상을 시각적으로 구분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른 시대지만 그의 '로케이션' 시리즈는 여전히 묵직한 화두를 던져준다. 작가는 국립현대미술관 인터뷰(2021)에서 ‘자신이 상상한 풍경을 직접 만들어 내고 그것을 촬영해 상상의 이미지를 사진으로 구현하고 싶다’고 말한다. 그렇지 않으면 사진은 너무 쉽게 만들어질 수 있으니까. 그는 '로케이션' 시리즈 외에도 '수공기억'과 같은 영상을 통해서도 수고스러운 무대연출을 그대로 드러내는 작업을 한 바 있다. 정성스러운 연출 상황을 이미지에 고스란히 담아내는 그의 작업은 이미지란 무엇인가에 대한 질문을 끊임없이 던지고 있다. 사실 이에 대한 답은 없다. 다만 인공지능에 의한 이미지 생산이 일상화된 시대에 어떻게 하면 이미지와 함께 지혜롭게 살아갈 수 있을지 고민해 볼 수 있지 않을까.

 

/김재환 경남도립미술관 학예팀장

 

※정연두 

1969년 경남 진주 출생으로 서울대학교 조소과를 졸업하고 영국 런던 골드스미스대학교 대학원 석사를 졸업했다. 2007년 사진‧영상 부분으로는 최초로 국립현대미술관 올해의 작가상을 받았다. 2008년에는 뉴욕현대미술관(MoMA)에 그의 비디오 작품 '다큐멘터리 노스탤지어'가 소장되어 화제가 되기도 했다. 현재 성균관대학교 미술학과 교수로 있으며 2023년에는 를 개최하는 등 왕성한 작품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이 보도 자료와 관련하여 보다 자세한 내용이나 취재를 원하시면 경남도립미술관 운영과 김재환 학예연구사(055-254-4632)에게 연락주시기 바랍니다.

 

 

 

출처 : 경남도민일보(https://www.idomin.com)

[경남도립미술관 소장품 산책] 16. 수고스러운 수공(手工) 연출을 통해 이미지 생산하기, 정연두 < 미술·사진 < 문화 < 기사본문 - 경남도민일보 (idomin.com)

[경남도립미술관 소장품 산책] 16. 수고스러운 수공(手工) 연출을 통해 이미지 생산하기, 정연두 저작물은 자유이용이 불가합니다.

[경남도립미술관 소장품 산책] 16. 수고스러운 수공(手工) 연출을 통해 이미지 생산하기, 정연두 저작물은 자유이용이 불가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