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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미술을 빛낸 경남의 거장들] (5) 이성자

  • 작성자 : 관리자
  • 작성일 : 2024-03-14

[한국미술을 빛낸 경남의 거장들] (5) 이성자

 

진주서 태어나 자연·문화 토대로 감수성 쌓아

33세에 파리서 화가 데뷔… 50여년 작품 활동

회화 등 매체 넘나들며 한국적 이미지 형상화

타계 1년 전 고향서 개인전 열고 작품 기증도

 

경남 진주 출신 일무(一無) 이성자(1918~2009)는 회화, 판화, 모자이크, 태피스트리, 도자, 설치 등 다양한 매체를 넘나들며 ‘음과 양’, ‘도시와 자연’, ‘여성과 대지’, ‘우주’와 같은 주제를 서정적이면서도 한국적인 이미지로 형상화한 자신만의 예술세계를 국제적으로 인정받은 한국의 대표적인 추상화가이다. 그리고 한국 근·현대미술사에서 나혜석, 박래현, 천경자와 함께 여성 특유의 경험과 감수성을 화폭에 담았던 선구적인 여성 화가이기도 하다. 이러한 중요성에도 불구하고 이성자가 활동할 당시에는 상대적으로 한국 미술계에서 큰 조명을 받지 못했다가 2000년대에 들어서야 미술사, 언어·기호학, 문학, 여성주의 등 다양한 관점에서 그에 대한 전시와 학술 연구들이 이루어지고 있다. 오는 4월 개막하는 세계 최대 현대미술축제인 제60회 베니스비엔날레에서 한국근현대미술연구재단이 이성자 개인전을 준비한다고 하니, 나날이 달라지는 작가의 위상을 가늠할 수 있다.

 

작가의 예술세계를 입체적으로 읽는 여러 방식이 있겠지만, 작가의 삶 전반을 톺아보는, 그중에서도 특유의 감수성과 미감에 가장 견고한 토대가 되었을 유년 시절을 살피는 과정은 필수적이다. 이성자의 어린 시절은 항상 그를 지원했던 부모님이 함께하고 있었다. 아버지가 경남 지역 군수를 지낸 까닭에 창녕, 하동, 진주 등에서 풍부한 자연환경 속에서 다양한 전통 문화유산을 접하며 성장했다. 아버지는 대외활동에 자주 데리고 다니며 많은 경험을 쌓게 해주었다고 한다. 이성자는 특히 아버지를 따라 대자연 속에 자리 잡은 거대한 왕릉에서 행해지던 수로왕릉 제의의 경건함과 엄숙함에 크게 감명받았다고 언급한 바 있다. 또한 독실한 불교 신자였던 어머니를 따라 산속에 자리한 사찰들을 방문해 승려의 모습이 새겨진 목판이나 도기를 관찰하곤 했다고 한다. 이처럼 든든한 부모님의 영향 아래 이성자는 긍정적이고 명랑한 성격을 갖추었고, 자연에 대한 남다른 애정과 소박하고 진실한 것을 추구하는 자신만의 감각을 키워나갔다. 이는 훗날 그의 방대한 작업을 관통하는 핵심적인 주제 의식과 연결된다.

 

1951년 33세의 나이로 혈혈단신 프랑스로 건너간 이성자는 파리에서 화가로 데뷔 이후 줄곧 프랑스에 거주하면서 50여 년간 왕성한 활동을 펼쳤다. 이성자의 작품 세계는 크게 네 시기로 구분할 수 있다. 1950년대 아카데미 시기에는 다소 어두운 색채와 두터운 마티에르의 인물, 풍경, 정물 등의 구상화를 그리다가 점차 자연의 풍경을 추상화하는 방향으로 나아가며 다양한 조형적 실험을 거친다. 이렇게 자신만의 색깔을 모색하던 그가 1960년대에 접어들면 ‘여성과 대지’를 주제로 생명의 모태인 땅과 대지를 기하학적 기호로 변모시켜 작가 특유의 밀도 있는 추상을 선보이며, 여성으로서, 어머니로서, 그리고 타지에 살아가는 이방인으로서 가족과 고향에 대한 그리움을 은유적으로 담았다.

 

미국, 브라질 등 대도시를 여행한 1970년대부터는 선과 선, 선과 면 등 대립적 조형들이 교차하거나 겹쳐 조화를 이루는 ‘중복’, ‘도시’ 연작이 등장한다. 나아가 ‘음과 양’, ‘초월’ 연작은 합일의 가능성을 암시하는 요철 도형을 통해 동양과 서양, 자연과 기계, 생명과 죽음 등 상반되는 개념들을 한 화면에 나타내고 이들의 조화로운 결합에 대한 갈망을 표현했다. 80년대부터 이성자의 시각은 하늘과 우주로 향한다. ‘대척지로 가는 길’ 연작은 한국과 프랑스를 오가는 여정 속에서 본 극지의 풍경을 다시 구상적 자연의 모습으로, 이성자가 꿈꾸던 이상적 세계의 이미지를 하늘로 옮겨 놓은 것이다. 말년에는 모든 대립적인 요소가 새로운 질서와 조화를 이루는 초월적 ‘우주’에 천착하며 그간 여러 작품으로 보여주었던 추상 언어를 집약시켰다.

 

이성자가 타계하기 1년 전인 2008년, 경남도립미술관에서 개인전 ‘귀천(歸泉)’을 개최하고, 이성자미술관 건립을 위해 고향 진주에 376점의 작품을 기증했다.

그는 “고향 진주는 나에게 영원한 모천이다. 진주의 추억은 부모님의 자애와 더불어 내가 일생 동안 예술의 구도자로서 혼신을 다하는 데 넉넉한 자양이 됐다. 유년의 기억을 간직한 진주를 흠모하고 기르는 것은 나의 당연한 도리다”고 언급했다. 마치 자연이 순환하는 이치처럼, 자신의 길었던 미술 여정을 귀향으로 마무리하려는 작가의 의도가 아니었을까. 이성자가 광활한 우주로 돌아간 후에도 그가 수놓은 별빛은 작품을 통해 고향 곳곳에 머무르고 있다.

 

안진화 학예연구사

 

 

이 보도 자료와 관련하여 보다 자세한 내용이나 취재를 원하시면 경남도립미술관 운영과 안진화 학예연구사(055-254-4636)에게 연락주시기 바랍니다.

 
 
출처 : 경남신문 (knnews.co.kr)
[한국미술을 빛낸 경남의 거장들] (5) 이성자 :: 경남신문 (knnews.co.kr)

[한국미술을 빛낸 경남의 거장들] (5) 이성자 저작물은 자유이용이 불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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