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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도립미술관 소장품 산책] 18. 절제된 풍경 속 덤덤한 위로, 이임호

  • 작성자 : 관리자
  • 작성일 : 2024-03-18

[현재 경남도립미술관 수장고에는 작품 1500여 점 이상이 보관돼 있다. 전시 작품을 구매하거나, 매년 정기적으로 도내 작가 작품을 사들인 결과다. 하지만, 아쉬운 건 도대체 수장고 안에 어떤 작품이 들었는지, 일반인이 쉽게 알 수는 없다는 점이다. 그래서 도립미술관 학예사를 통해 수장고 작품을 하나하나 꺼내 보기로 했다. 글과 사진을 통해서지만, 이렇게라도 하면서 수장고 관리 문제에서부터 도민들과 작품을 공유하는 방법까지 멀리 내다보고 고민해보자는 취지다. ]

 

이임호(62)는 국내에서 가장 먼저 러시아 레핀 아카데미 석사 및 박사 과정을 졸업한 이력을 가진 구상 작가다. 마산에서 나고 자라 창원대학교에 다녔고, 유학 시절을 제외한 대부분을 경남에서 머물며 작업을 이어오고 있다. 1980년대 후반 학부를 졸업한 후 한동안은 동료 청년 작가들과 함께 지역 미술계 활성화를 위한 기반을 마련하고 더 넒은 무대로의 진출을 위해 전시를 꾸리거나 모임을 하는 등 다양한 노력을 했다. 그러나 지역 내 인프라 부족, 소통의 부재 등 한계로 큰 변화를 맞이할 수 없었다. 그렇게 작가는 이후 약 5년간 미술 활동을 쉬게 된다. 당시 미술계는 포스트모더니즘1) 영향이 크게 작용하던 시기였는데, 이러한 분위기는 작가에게 미술에 대한 배움과 창작의 의지를 다시금 갖게 하는 계기를 만들어 주었다. 다만 포스트모더니즘 미술과 같은 새롭고 실험적인 방향이 아닌 고전주의 미술2), 즉, 오래도록 연구되어 온 사실주의 회화의 전통을 제대로 배워 보고자 결심하게 된 것이다. 그렇게 작가는 1997년 2월, 유학길에 올랐고 배움에 대한 열정과 끈기 하나로 길었던 학업을 마친 뒤 고향에 돌아왔다. 그때가 2001년 11월, 작가 나이 마흔을 갓 넘기던 시기였다. 귀국 초반에는 ‘작가’로서의 활동보다 ‘선생’으로서의 역할에 대한 열망이 컸다고 한다. 이후 약 9년간 경남대, 대구대, 창원대, 홍익대 등에 출강하며 유학 시절 배워온 연구를 아카이빙 하였고, 당시 제작하는 작품들은 곧 학습 자료가 될 수 있도록 구축하고 정리했다.

 

2011년부터는 본격적으로 아카데미즘을 탈피하고 자신만의 스타일을 구축하기 위해 새로운 작업에 몰두하였다. 이때 처음 시작했던 작업이 ‘여백을 그리다’라는 개념 아래 기존 정물 연구작에서 모든 구성과 대상을 축약하고 하나 혹은 최소의 대상만 남겨둔 채 과감한 화면 구성을 통해 여백을 강조하는 시리즈 '여백을 위한 정물'(2011∼)이었다. 이후에도 어린 시절의 채워지지 못했던 꿈과 현실의 허망함을 표현한 시리즈 '북두칠성은 아직도 그 자리에'(2017∼), 고립된 공간을 통해 자신이 느끼는 고독함에 대한 은유적 해석의 시리즈 '섬'(2017∼), 고단한 세월을 살아온 이들의 시간을 얼굴에 나타난 흔적으로 표현하는 시리즈 '얼굴'(2017∼), 앙상하고 모질게 잘려진 나무와 절제된 화면 구성을 통해 자연 나아가 자신에 대한 연민과 인간 문명의 폭력성 등을 은유하는 시리즈 'Bare Tree'(2021∼) 등을 이어오고 있다.

 

이렇듯 작가는 자신이 드러내고자 하는 대상과 그 이면에 집중하기 위해 과감하고 절제된 표현 방식으로 자신만의 조형 세계를 구축 해오고 있다. 특유의 뛰어난 필력에 더해진 절제되고 대담한 화면 구성 이면에는 고독, 공허, 괴로움, 덤덤히 전하는 삶의 위안에 대한 은유적 표현이 담겨져 있다.

 

'욕지도 하누리'는 2004년 경남도립미술관 개관 당시 〈site & sight〉라는 기획전에서 처음 선보인 작품이다. 작가는 ‘경남의 풍경을 담은 초대형 작품’이라는 주제 아래 경남 곳곳을 다니며 사생하고 촬영하던 중 발견한 통영 욕지도의 모습을 담아내었다. 화면에는 욕지도의 초입에서 바라볼 수 있는 풍경에 더해 다른 방향에서 보았던 욕지도의 섬 일부가 그려져 있다. 150호 가량의 크기 총 4점이 약간의 간격을 두고 설치될 수 있도록 작품 사이 이미지가 약간씩 어긋나 있는 것이 특징이다. 이는 한옥에서 부르는 ‘차경’의 의미를 빌어 창 너머의 풍경을 바라보는 느낌을 자아내도록 구성됐다. 전면에 보이는 바다, 섬, 밭 외 위쪽에 좁고 길게 배치된 하늘은 밀도감 높게 표현돼 있는데 제작 시기에서 짐작할 수 있듯이 유학 시절 연구했던 여러 회화적 기법이 드러나고 있다. 특히 위에서 내려다보이는 시점의 독특한 구도의 표현법은 작가가 당시 동경하던 러시아의 풍경화가 이삭 레비탄(1844~1927)의 화풍에서 영향을 받은 것이다. 작품명의 ‘하누리’는 ‘하늘 아래 나누는 이’, ‘하나가 되어 함께 누리다’, ‘큰 사랑을 나누다’ 등의 의미를 가진 합성어로 차분하고 잔잔한 풍경 아래 위안과 희망의 의미를 전하고픈 작가의 의지가 담겨 있다.

 

 

/박지영 경남도립미술관 학예연구사

 

 

 ※각주

1)포스트모더니즘은 지난 20세기에 걸쳐 서구의 문화와 예술, 삶과 사고를 지배해 온 모더니즘에 대한 반동으로서 1960년대 중반부터 나타나기 시작했다. 하나의 통일된 사조나 운동은 아니지만, 그 중심적 동기는 모더니즘을 통해 수립된 고급문화와 저급문화의 엄격한 구분, 예술 각 장르 간의 폐쇄성에 대한 반발이다. 

2)고전주의 미술의 특색은 형식의 정연한 통일과 조화, 명확한 표현, 형식과 내용의 균형 등을 중시한 데 있으며, 특히 조형미술에서는 엄격하고 균형 잡힌 구도와 명확한 윤곽, 형상의 입체적 형성 등이 중요시된다.

 

※참고자료

1. 이임호 작가 인터뷰, 작가 작업실, 2023. 6. 7. / 2023. 7. 11.

2. 이임호 작가 전화 인터뷰, 2024. 2. 28.

3. 박영택, 무한한 공간의 유한한 존재, 〈2023 공립미술관 추천작가-전문가 매칭 지원〉, 국립현대미술관, 2023

4. 세계미술용어사전, 두산백과, 네이버 지식백과, terms.naver.com

 

 

이 보도 자료와 관련하여 보다 자세한 내용이나 취재를 원하시면 경남도립미술관 운영과 박지영 학예연구사(055-254-4638)에게 연락주시기 바랍니다.

 

출처 : 경남도민일보(https://www.idomin.com)

[경남도립미술관 소장품 산책]17. 절제된 풍경 속 덤덤한 위로, 이임호 < 미술·사진 < 문화 < 기사본문 - 경남도민일보 (idomi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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