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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yeongnam Art Museu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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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도립미술관 소장품 산책] 21. 흔들리는 사람들에게 조용히 말을 거는 그림, 노원희

  • 작성자 : 관리자
  • 작성일 : 2024-05-07

노원희(1948~ )는 1980년대 한국 민중미술1) 을 이끌었던 그룹 '현실과 발언'2)(이하 현발)의 몇 안 되는 여성 동인으로 활동을 시작한 이래 40여 년간 독자적인 리얼리즘 세계를 구축한 작가다. 자칭타칭 비판적 현실주의자인 그는 삶과 예술이 서로 맞닿아 있어야 한다는 화가로서의 뚜렷한 소신을 가지고 급속한 도시화, 산업화를 거친 한국사회 현실의 주변화된 삶의 정황들과 그 이면의 억압과 폭력의 구조를 살피며 당대 현실의 진실된 모양새를 화폭에 담는다. 또한 2000년대 이후 가부장적 제도 속 사회적 약자로서 여성이 처한 현실을 다루는 작품들을 선보이며 다른 민중미술가들과 구별되는 자신만의 관점을 확장해 나갔다.

 

1948년 대구에서 태어난 노원희는 1960년대 후반 서울대학교 미술대학 회화과에서 미술을 공부했다. 당시 국내 화단은 앵포르멜이 하나의 전형으로 인식되고 있었고, 노원희 역시 처음에는 추상표현주의에 가까운 작업을 시도했다. 그러다 대학 신문사 기자 활동을 통해 자연스럽게 시대적 상황과 사회적, 정치적 현상에 관심 시작했으며, 1973년 대학원 졸업 후 대구로 돌아와 대학교 강사 생활 중 야학 운동과 <창작과 비평>3) 과 같은 참여문학, 그리고 <문학과 예술의 사회사>4) 와 같은 번역서를 접하며 점차 예술이 당대 사회 문화적 바탕을 반영하는 것이고, 예술 또한 그 기능이나 역할을 충분히 발휘할 수 있음을 인식하기 시작했다. 그는 사회 현실을 어떻게 그림으로 표현할 수 있는지에 대해 고민했고, 1980년개인전을 기점으로 구체적인 형상이 나타나는 작품들을 꾸준히 발표했다.

 

1970년대부터 1980년대까지 작품들은 철거 통지서를 받아 든 도시 빈민, 월급봉투를 찾는 사람들, 공단 부근의 무표정한 남성, 보따리를 머리에 이고 농촌을 떠나는 여성 등 대부분 빠른 경제성장의 중심에서 밀려난 인물들을 고단한 일상의 구체적 상황들 속에서 보여주었다. 1990년대에는 배경을 흐려지거나 인물이 바닥 면에서 붕 떠 있는 등 이전보다 초현실적 분위기가 강조되며 위태로운 삶을 지속하는 개인들의 내면의 고립과 불안 심리를 드러내는 변화를 보인다. 1990년대 후반부터 2000년대 중반까지 ‘집’을 주제로 한 작품들을 다수 공개했다. 텅 빈 화면에 집과 키 큰 나무가 중심 형상이 되어 가족의 해체, 삶의 터전으로서 땅, 이주, 소외의 문제를 주로 다루었다. 2000년대 중반 이후로 지금까지 노원희는 산업재해, 가부장 제도, 사회적 재난 등에 고통을 받는 사람들을 화면에 등장시키고 있다. 사실상 사회적 공동체가 와해되고 개인의 고립이 가속화되는 오늘날의 현실에 주목하고 있다.

 

이처럼 작가가 화면에 담고자 하는 주제는 시대별로 차이를 보이지만 그의 시선은 언제나 위태로운 존재들에게 향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러나 작가는 강렬한 이미지나 색채 표현을 통해 이들의 이야기를 노골적으로 고발하거나 폭로하지 않는다. 대신에 대상의 윤곽은 단순하게 처리하고 유화로 작업하면서도 물감의 질감을 통한 마티에르 효과를 만들어 내기보다 투명한 붓질로 새로운 공간감과 시간성을 환기시킨다. 그리고 회색 톤이 바탕이 되는 녹색과 푸른색을 적절히 활용하여 건조하고 우울한 분위기의 서정적 화면을 구현한다. 노원희의 그림은 특유의 다층적 서사를 내재한 이미지와 은유적 표현이 두드러진다. 이것이 그의 그림을 바라보는 이로 하여금 녹록지 않은 현실의 본질을 온전히 직면하게 하고, 타자의 고통에 공감할 수 있는 순간을 만들고, 타자와 대화를 시작할 수 있도록 돕는다.

 

노원희의 2001년 작품 '무소식'은 경남도립미술관 개관 준비 당시 신옥진 선생이 기증한 작품 중 하나다. 작품의 제목이 ‘무소식’이라는 점과 더불어 화면 중앙에 그려진 우체국 소인이 호기심을 불러일으킨다. ‘수취인 없음’으로 확인되어 1997년 7월 12일에 반송되었음을 나타내고 있다. 초여름의 연녹색이 깔린 바탕에 소박한 기와집은 살림살이의 흔적이 전혀 보이지 않아 인적이 끊긴 빈집으로 짐작할 수 있다. 낮은 기와집을 웃자란 버드나무의 잎이 바람에 흔들리고 있는 듯 서 있다. 그리고 화면 밖 먼 곳을 바라보는 자그마한 까치 한 마리가 있다. 작가는 4년이라는 시차를 속에서 여전히 기약 없는 누군가의 소식을 기다리고 있었던 것일까? 1997년 한국은 IMF 외환위기를 겪었다. 작가는 삶의 터전이자 안식처인 집을 떠날 수밖에 없었던 누군가의 안부를 물었고, 그들의 무소식은 오늘날 우리에게까지 반송된다.

 

/안진화 경남도립미술관 학예연구사

 

 ※참고자료

김영나,<1945년 이후 한국 현대미술>, 미진사, 2020

김종길, '정치적인 것을 넘어서: 현실과 발언 30년', 현실문화, 2012

아르코미술관, <노원희: 거기 계셨군요>, 한국문화예술위원회, 2023

이설희, '노원희의 ‘그림’: 기록과 발언으로서의 의미', <현대미술포럼>

"문학예술작품은 작가의 것이 아닌 시대와 사회의 소산', <교수신문>, 2023. 2. 24.

학고재 노원희 페이지_

http://www.hakgojae.com/page/2-1-view.php?artist_num=26&pageNo=1&f_num=1

한국미술 다국어 용어 사전

_https://www.gokams.or.kr:442/visual-art/art-terms/glossary/person_view.asp?idx=1724

 

※각주

1)  1980년대에 한국 민주화운동의 흐름과 함께 등장한 미술운동이자 사회변혁운동이다. 당시 군사독재 정권의 부정부패를 비판하는 한편 노동자와 농민을 억압하는 현실을 표현하고자 했으며, 미술을 통한 사회변혁을 주장했다. 1970년대 미술계의 형식적 주류였던 추상과 대조적으로 민중미술에서는 형상을 구체적으로 묘사하는 구상적 특징이 두드러진다.

2)  산업사회의 모순과 미술계의 보수성을 비판하며 미술가(김건희, 김용태, 김정헌, 노원희, 민정기, 백수남, 손장섭, 신경호, 심정수, 오윤, 임옥상, 주재환)와 평론가(성완경, 윤범모, 원동석, 최민)가 모여 1979년에 조직한 단체로, 4.19혁명(1960) 20주년 기념 전시를 준비하는 과정에서 결성되었다. 미술이 현실을 말하고 이면의 모순을 드러내야 한다는 현실주의적 태도를 강조했다. 대중문화 이미지를 복제나 차용의 방식으로 활용했으며, 사진, 판화, 만화, 복제화, 콜라주 등의 방식도 도입했다. 이를 통해 한국 현대사회가 당면한 시각 ‘이미지의 범람’, ‘도시화 문제’, 그리고 ‘한국사회와 문화의 식민적 현실’을 다뤘다. 1990년 해체에 이르기까지 현실과 발언에서 활동했던 여성 미술가는 김건희, 김정희, 노원희다.

3)  1966년 창작과비평사에서 문예창작물과 사회비평을 중심으로 창간한 계간 잡지다. 서울대학교 영문학 교수 백낙청을 중심으로 한 동인지 성격의 잡지다. 초기에는 외래지향적 취향을 많이 좇아 해외문학 및 문예에 관한 논문을 많이 소개하였다. 1970년대 접어들면서 차차 우리나라의 사회 문제 전반에 날카로운 관심을 보이는 토착화 과정을 거쳐 성장했다. 1970년대의 대학을 중심으로 한 지식계층과 사회의 현실 문제에 대한 날카로운 관심을 가진 독자들에게 문예적 영향을 미쳤다.

4)  헝가리 태생 예술사학자인 아르놀트 하우저(Arnold Hauser, 1892~1978)는 예술작품이란 시대와 사회의 관계 속에서 태어난 사회적 산물이라고 주장하고, 선사시대부터 대중영화의 시대에 이르기까지 인간과 사회와 예술의 관계를 흥미롭게 설명했다. 국내에서는 1966년에 계간 <창작과 비평> 가을호에 책의 마지막 장인 ‘영화의 시대’가 번역 소개된 이후, 1974년에 <문학과 예술의 사회사: 현대 편>이 출간됐다.

 

 

 

이 보도 자료와 관련하여 보다 자세한 내용이나 취재를 원하시면 경남도립미술관 운영과 안진화 학예연구사(055-254-4636)에게 연락주시기 바랍니다.

 

출처 : 경남도민일보(https://www.idomin.com)

[경남도립미술관 소장품 산책] 21. 흔들리는 사람들에게 조용히 말을 거는 그림, 노원희 저작물은 자유이용이 불가합니다.

[경남도립미술관 소장품 산책] 21. 흔들리는 사람들에게 조용히 말을 거는 그림, 노원희 저작물은 자유이용이 불가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