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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yeongnam Art Museu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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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도립미술관 소장품 산책] 6. 조선백자 애호가가 남긴 폐허 속에 피어난 희망, 도상봉

  • 작성자 : 관리자
  • 작성일 : 2024-02-13

[현재 경남도립미술관 수장고에는 작품 1300여 점 이상이 보관돼 있다. 전시 작품을 구매하거나, 매년 정기적으로 도내 작가 작품을 사들인 결과다. 하지만, 아쉬운 건 도대체 수장고 안에 어떤 작품이 들었는지, 일반인이 쉽게 알 수는 없다는 점이다. 그래서 도립미술관 학예사를 통해 수장고 작품을 하나하나 꺼내 보기로 했다. 글과 사진을 통해서지만, 이렇게라도 하면서 수장고 관리 문제에서부터 도민들과 작품을 공유하는 방법까지 멀리 내다보고 고민해보자는 취지다. ]

 

도상봉(都相鳳·1902~1977)은 1902년 함경남도 홍원에서 ‘덕흥상회’를 운영하던 거상 도명수(都明洙)의 장남으로 태어났다. 도명수는 민족주의 투사이자 사업가였다. 도상봉은 아버지의 영향으로 1918년 보성고등보통학교 시절 일본인 교사 배척을 위한 동맹휴학에 앞장섰으며, 1919년에는 3.1독립만세운동에 가담해 일본군에게 체포되어 6개월간 옥고를 치르기도 했다. 1920년 한국인 최초 서양화가 고희동(高羲東·1886~1965)에게 서양화를 배우고, 1921년 일본 명치대학교 법학과에 입학했다. 그러나 미술로 전향하기로 마음먹고 가와바타 미술연구소에서 실기교육을 받은 뒤, 1922년 동경미술학교 서양화과에 다시 입학하면서 본격적으로 화가의 길로 접어들었다.

 

1928년 귀국 후 작품 활동을 이어가는 동시에 1948년 숙명여자대학교 교수로 후진을 양성하며, 1949년부터 1961년까지 국전 심사위원을 역임하면서 ‘대한민국미술전람회’를 주도적으로 이끌었다. 1955년에서 1975년 사이에는 거의 매년 개인전을 열 정도로 꾸준히 작품 활동을 전개해 나갔다. 도상봉은 일본에서 습득한 아카데믹한 사실주의 화풍을 기반으로 회화 작업을 진행하였으나 ‘조선미술전람회’에는 한 번도 출품하지 않았는데, 이는 그의 민족주의적 신념 때문으로 보인다. 해방 전후 ‘조선미술전람회’와 ‘대한민국미술전람회’를 통해 한국 아카데미즘으로 자리 잡게 된 ‘고전적 구상화’를 추구하는 대표주자들로 도상봉을 비롯해 김인승, 이마동, 박득순 등이 있었다.

 

도상봉의 작품은 크게 인물, 정물, 풍경으로 나눌 수 있다. 인물을 소재로 한 작품은 몇 점에 불과하고 대부분은 정물과 풍경이다. 두 소재 가운데서도 전 생애에 걸쳐 지속적으로 다룬 소재는 정물이다. 정물 중에서도 백자가 곁들여진 정물이 대표작이라 할 수 있다. 도상봉의 호를 도천(陶泉), 즉 ‘도자기 샘’이라 지은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그는 1930년대 초 일본으로 유출되는 조선백자를 수집하기 위해 충무로에 도자기 상회를 열 정도로 도자기를 좋아했다. 미술평론가 오광수는 “도상봉 화백은 도자기를 그린 게 아니고 도자기를 관조했다”라고 평하였다. 이렇듯 도상봉의 예술 세계를 이루는 근간이 백자를 보는 심미안으로부터였음을 짐작할 수 있으며, 도자기와 고적지 풍경 등 한국적인 소재를 통해 한국적인 정취와 미를 화면에 담아내고자 했다.

 

경남도립미술관이 소장하고 있는 도상봉의 '폐허'는 그의 작품 중 손꼽히는 명작이다. 1953년에 제작된 이 작품은 한국전쟁 중 폐허가 된 서울의 명동성당 일대를 담고 있다. 명동성당을 비롯해 일부 남겨진 건물과 화면 맨 아래에 완전히 무너져 내린 폐허 더미는 그 대조를 통해 이전의 모습을 떠올리게 함으로써 전쟁으로 무너진 도시의 참담함을 더 크게 부각하고 있다. 전체적으로 검은색과 황토색 그리고 회갈색들로 표현된 건물과 폐허, 이와는 대조되는 푸른 하늘과 자유롭게 흐르는 듯한 흰 구름 그리고 여인네들과 아이의 모습을 통해 절망 속에 피어나는 강한 생명력과 삶의 희망을 표현하고자 한 작가의 의도를 엿볼 수 있다. 또한 이러한 내용을 고려해 보면 구체적인 작품 제작 시기를 1953년 7월 27일 휴전 협정 이후로 좁혀볼 수 있다.

 

도상봉은 작품의 소재나 표현 방법에서 안정감과 조화를 추구했던 작가였다. 그런데도 전쟁을 소재로, 그것도 전쟁 후 폐허가 된 도시의 모습을 작품으로 남겼다는 점에서 시사하는 바가 크다. 화가로서 한국전쟁은 결코 간과할 수 없는 현실이었고, 도상봉은 이를 외면하지 않고 기록함으로써 전쟁의 참상을 알리는 한편 그 속에서도 새로운 희망을 꿈꾸었다.'폐허'는 현재 경남도립미술관 3층에서 열리는 〈보통 사람들의 찬란한 역사〉 전시를 통해 직접 감상할 수 있다. 전시는 내년 2월 25일까지 계속된다.

 

/최옥경 경남도립미술관 학예연구사

 

※ 참고문헌

이규일, 『이규일의 미술사랑방』, 랜덤하우스중앙, 2005

오광수, 「도상봉의 생과 예술」, 『도상봉』,, 국립현대미술관, 2002

 

 

이 보도 자료와 관련하여 보다 자세한 내용이나 취재를 원하시면 경남도립미술관 운영과 최옥경 학예연구사(055-254-4637)에게 연락주시기 바랍니다.

 

출처 : 경남도민일보(https://www.idomin.com)

https://www.idomin.com/news/articleView.html?idxno=839219

[경남도립미술관 소장품 산책] 6. 조선백자 애호가가 남긴 폐허 속에 피어난 희망, 도상봉 저작물은 자유이용이 불가합니다.

[경남도립미술관 소장품 산책] 6. 조선백자 애호가가 남긴 폐허 속에 피어난 희망, 도상봉 저작물은 자유이용이 불가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