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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네책방 순례 ③ 남해 아마도 책방

“참 남해스러운 책방이야”

 

 

 

 

오래된 단층 건물들이 나란히 이어져 있는 남해군 삼동면 지족마을에 작은 책방, ‘아마도 책방’이 있다. 자세히 찾지 않으면 그냥 지나칠 수 있을 만큼 단박에 눈에 띄지는 않지만 알 만한 사람은 다 안다. 남해가 보유한 이 귀한 책방을 두고 사람들은 이렇게 얘기한다. “참 남해스러운 책방이야”라고.


빨간색 책이 그려진 작은 간판이 책방이 문을 열었음을 알린다. 책방 안으로 들어서니 어린 시절이 어렴풋이 떠오른다. 꼭 방학 때마다 놀러 갔던 외할머니 집 같다. 책방 곳곳에 놓인 고가구 위로 크고 작은 책들이 푸근하게 안겨있다. 신발을 벗어야만 들어갈 수 있는 침대 방은 손님들을 위해 특별히 마련한 방이다. 엉덩이를 따뜻하게 데울 수 있는 온돌, 은근한 조명 아래에서 펼친 책 한 권엔 그날의 분위기가 고스란히 묻어난다.

 

서울 사람의 남해앓이로 탄생

 

 


 

 

2018년 3월에 문을 연 ‘아마도 책방’은 올해로 4년째 운영 중이다. 14평 남짓한 공간에 약 3000여권의 책들이 저마다 자리를 꿰차고 있다. 평일에는 5~10팀이, 주말에는 20팀 정도의 방문객이 전부인 그야말로 작은 책방. 그곳을 지키는 책방지기 박수진(33) 씨를 만났다.

 

“2016년 11월 남해로 여행을 왔거든요. 4박 5일을 머물다 서울로 올라갔는데, 한동안 남해의 한적한 분위기와 바다 풍경들이 잊히지 않는 거예요. 그래서 다음 달에 다시 내려왔죠. 그 후로도 서너 번은 더 내려왔어요. 제대로 남해앓이를 한 거죠.”

 

지독한 남해앓이를 이기지 못하고 수진 씨는 결국 회사를 그만두고 남해로 내려왔다. 그런데 막상 뭘 해 먹고 살지는 생각하지 못했다. 당장 농사를 지을 수도 없고 이렇다 할 사업을 할 수도 없어서 자신을 돌아봤단다. 여행을 갈 때마다 그 지역의 책방을 찾아 들르는 편인데, 젊은 날 프랑스 파리에 있는 ‘셰익스피어 앤 컴퍼니’에 대한 기억이 너무 좋았다고. 남해에도 그런 작은 책방이 있으면 좋겠다는 작은 소망이 ‘아마도 책방’의 시작이었다. ‘아마~ 그럴 거야’의 그 ‘아마도’에 ‘너와 나 우리를 어루만져 주는 곳’이란 의미를 더해 책방 이름을 만들었다고 말했다.

 

책방지기의 탁월한 안목 돋보이는 책방 풍경

책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 사람들까지도 책을 읽고 싶게 만들겠다는 당찬 포부를 가진 수진 씨다. 수진 씨의 이런 노력은 책방 곳곳에 스며있다. 전국의 중고시장과 고물상을 찾아다니며 발품을 팔아 장만한 고가구들, 오래된 문짝으로 만든 테이블, 버려진 창문틀에 손 그림을 붙여서 만든 간판, 원고지 칠판, 70년대에 생산된 수동 타자기에 필름 카메라까지. 누군가의 손때가 묻고 기억이 묻어서인지, 꽤 편안하고 익숙하다. 따로따로 들였는데도 어쩌면 이토록 자연스러운지. 도드라짐 없이 각자의 자리를 찾은 것도 수진 씨의 탁월한 안목 덕분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책방을 둘러보다 엽서 코너 앞에서 걸음을 멈췄다. 남해에 살면서 하나씩 찍어 모은 풍경들이란다.

 

“사진 찍는 걸 좋아해서 남해에 살 게 된 후부터는 필름카메라로 사진을 찍고 있어요. 3년 정도 찍은 걸 계절별로 엮어서 사진집도 만들었죠. 사람 손이 덜 탄, 때 묻지 않은 모습들이 좋았어요. 지금도 남해를 찾아오시는 분들이 그러세요. 딱 10년 전 제주 같다고.”

 

바닷가에 있는 작은 운전학원, 어느 한적한 몽돌해변, 분교 안 미끄럼틀과 가을 물이 든 나무

들, 들녘에 세워진 낡은 자전거까지 수진 씨 카메라에 담긴 남해는 수진 씨만의 애정이 가득하다.

 

동네 책방의 존재 이유는 ‘다양성’

 

호젓한 마을에 책방을 열었기 때문일까. 사람들은 수진 씨가 아주 여유로운 줄 알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다. 신간이나 재입고할 책들을 찾고 선정하고 그걸 또 장부에 정리하는 작업은 기본. 그것만으로는 운영이 어려워 각종 모임이나 워크숍, 지자체나 한국출판문화산업진흥원에서 하는 지원 사업을 주최하기도 한단다. 중장기적으로 진행되는 프로젝트지만 서류작업이 많아 눈에 안 보이는 일들을 계속하고 있다고.

 

 

 

수진 씨가 가장 많이 신경을 쓰고 있는 책들은 책방 원탁에 놓인 독립 서적들이다. 동네 책방이라고 해서 독립 서적들까지 모두 들이지는 않는다. 입고 과정이 제법 까다롭기 때문이다. 제작자와 일대일 연락을 취하는 것은 물론, 3개월 주기로 후불 정산을 해야 하는데, 그때마다 재고를 전수 조사하고 팀별로 개별 정산 명세서를 보내야 한다. 연락을 주고받는 팀만 70~80팀이나 되는데, 그런 수고로움에도 동네 책방을 운영하는 이유가 궁금했다.

 

“동네 책방은 2015년, 2016년도에 많이 생겨났어요. 코로나 이후에 많이 사라지고, 그런데도 꾸준히 새로 책방이 생겨나고 있죠. ‘책방은 이래야 해’ 라는 건 고정관념이에요. 다 각자의 개성을 반영한 공간이고, 꾸려가는 방식도 모두 다르잖아요. 각자 완전히 다른 특별한 존재니까. 다양성 그 자체로 의미가 있다고 봐요.”

 

“남해에 책방을 열어줘 고마워요”

어느 블로거는 ‘아마도 책방’을 이렇게 소개했다. “다른 어떤 곳도 아닌, 남해에 있어야만 하는 책방”이라고. 수진 씨는 이런 말을 들으면 마음이 이내 촉촉해진다고 말했다. 그리고 덧붙였다. “동네 책방에 관심이 있고 좋아해 주시는 분들이라면 책을 사는 것으로 응원을 해주시면 좋겠어요. 엽서 한 장이라도 좋아요. 내가 좋아하는 공간이고 그 곳에 오래 지속하길 바란다면 말이에요. 그게 동네 책방들이 살아남을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거든요.”

 

 


아마도 책방

위   치 남해군 삼동면 동부대로 1876번길 19

운    영 12시~오후 5시, 매주 화·수요일 휴무

연락처 010-4134-0695

 

(경남공감 2021년 12월호)백지혜 사진 김정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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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네책방 순례 ③ 남해 아마도 책방 저작물은 공공누리 출처표시+변경금지 조건에 따라 이용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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