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창 양평리 석조여래입상이 있는 금용사 입구
거창은 1천 미터가 넘는 산 20여개가 둘러 쌓여있는 분지형태의 산간지방이라 외부로부터 문화가 유입되기 보다는 자연이나 풍경을 중심으로 문화가 형성되어 있는 곳이 많은데요, 그나마 불교적인 문화는 외부의 영향을 보여주는 것이 많이 있습니다. 보물급 불상이 여러 곳에 있는데요, 거창군 양평리에 석조여래입상이 보물 제377호로 지정되어 있습니다.
넓게 축대를 쌓고 잔디를 심어, 깔끔한 평지 위에 보물 제377호, 거창 양평리 석조여래입상이 머리에는 천개(天蓋)를 얹은 모습으로 서있다.
보물 제377호, 거창 양평리 석조여래입상 (居昌 陽平里 石造如來立像)을 보기위해서는 거창읍에서 국도로 가조방향으로 양평리를 지나다 보면 우측으로 도랑을 지나 이정표를 따라 가다보면 금용사가 있고 그 앞으로 넓은 축대위에 잔디를 심어 조성되어 있는 깔끔한 평지 위에 보물 제377호, 거창 양평리 석조여래입상 (居昌 陽平里 石造如來立像)이 평온하게 머리에는 천개(天蓋)를 얹고 있는 모습으로 서있습니다.
예전의 절터였다는 걸 알 수 있는 주춧돌이 여러 개 발견되었다.
가까이 다가가서 자세히 살펴보면 화려하면서도 멋스런 모습에 잠시 머물게 되는데요, 주변에 있는 주춧돌의 모습에서 예전에 번창했던 절터의 모습을 상상해봅니다.
보물 제377호, 거창 양평리 석조여래입상의 정면 모습보물 제377호, 거창 양평리 석조여래입상의 뒷면 모습
화강암으로 만든 석조여래입상(居昌 陽平里 石造如來立像)은 전체 높이는 3,7m이고 불상 높이는 2,75m로 측정되어 있는데요, 몸은 머리에 비해 약간 가늘어 보이지만, 늘씬한 체격으로 세련된 조각과 전체적인 조화는 9세기의 통일신라시대(統一新羅時代) 불상조각(佛像彫刻)의 특징을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거창 양평리 석조여래입상의 얼굴
둥근 얼굴에 뚜렷한 이목구비(耳目口鼻)와 반쯤 뜬 두 눈과 입가의 미소는 부처의 자비(慈悲)를 느끼게 하는데요, 짧고 굵은 목에는 윤회(輪回)의 인과(因果)를 뜻하는 삼도(三道)를 선으로 새겼고, 머리에 비해 약간 좁은 어깨 양쪽에는 대의(大依)가 걸쳐져 있습니다.
접힌 모양의 군의(裙衣)를 오른손을 밑으로 내려 쥐고 있다.왼손의 집게손가락을 곧게 펴고 있다.
대의 아래에 입은 긴 치마 모양의 군의(裙衣)는 접힌 것까지 표현되어 있으며, 오른손은 밑으로 내려 군의 자락을 쥐고 있으며, 왼손은 집게손가락을 곧게 펴고 있습니다.
연꽃잎이 두텁게 조각되어 있는 둥근 대좌(臺座)가 여래(如來)를 받치고 있다.머리 위에 천개(天蓋)가 올려 있다.
여래(如來)를 받치는 둥근 대좌(臺座)에는 연꽃잎이 두텁게 조각되었는데요, 머리 위의 천개(天蓋)는 근년에 올려 진 것이라고 하는데요, 조사할 즈음에 불상 주위에 주춧돌과 기와조각들이 확인되고 있어서, 예전에 노혜사(老惠寺) 또는 금양사(金陽寺)가 있었다는 전승을 뒷받침하기도 합니다.
입구에 잔디와 디딤돌로 깔끔하게 조성하고 있다.주변으로 축대와 나무를 심어 멋스럽게 가꾸고 있다.
석조여래입상을 보기 위해 걸어 들어가는 입구에 잔디와 디딤돌로 멋스럽고 깔끔하게 조성하고 있으며, 그 주변으로는 축대와 나무를 심어 멋스럽고 운치 있는 분위기를 느낄 수 있겠습니다.
예전엔 그곳에 흰코끼리 가족(모형)이 노닐고 있었는데요, 지금은 볼 수 없어서 아쉬웠지만 그래도 깨끗하게 조성되어 있는 모습을 볼 수 있어서 반가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