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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yeongnam Art Museum

보도자료

[경남도립미술관 소장품 산책]17. 물질과 인간이 만나 빚어낸 회화의 새로운 표정, 하종현

  • 작성자 : 관리자
  • 작성일 : 2024-03-07

[현재 경남도립미술관 수장고에는 작품 1300여 점 이상이 보관돼 있다. 전시 작품을 구매하거나, 매년 정기적으로 도내 작가 작품을 사들인 결과다. 하지만, 아쉬운 건 도대체 수장고 안에 어떤 작품이 들었는지, 일반인이 쉽게 알 수는 없다는 점이다. 그래서 도립미술관 학예사를 통해 수장고 작품을 하나하나 꺼내 보기로 했다. 글과 사진을 통해서지만, 이렇게라도 하면서 수장고 관리 문제에서부터 도민들과 작품을 공유하는 방법까지 멀리 내다보고 고민해보자는 취지다. ]

 

 

하종현(1935~)은 한국 현대미술을 대표하는 추상화가다. 그는 1960년대 앵포르멜(Informel)1) 을 시작으로 1974년부터 2009년까지 그의 시그니처 연작인 '접합(Conjuction)'을 제작했다. 마대 천과 단색조 유화물감의 물성이 만나 이루어진 이 연작에서 작가는 화면 뒤편에서 물감을 앞으로 밀어내는 ‘배압법(背押法)’이라는 자기만의 방법으로 한국 추상회화의 새로운 지평을 열었다. 2000년대 이후에는 이우환, 박서보, 윤형근 등과 함께 한국 고유의 정신성을 담아내었다고 평가받는 ‘단색화’2) 의 대가로 알려졌다.3)

 

1935년 산청에서 9남매 중 다섯째로 태어난 하종현은 1959년 홍익대학교 미술대학 회화과를 졸업했다. 1960년대 중후반까지 그는 당대 지배적 예술사조인 앵포르멜에 동참하여 표현주의적 추상과 기하학적 추상을 다양하게 실험했으며, 1969년 ‘한국아방가르드협회(AG)’4) 를 결성해 전위작가로서의 본격적인 행보를 시작했다. 당시 하종현은 재료가 가지고 있는 형태 및 물질에 특히 관심을 기울이면서, 신문지, 밧줄, 나무, 철조망, 용수철, 못 등 강한 물성의 재료를 이용한 작업을 선보였다. 신문지를 쌓아 올리거나 밧줄에 나무를 아슬하게 걸쳐 팽팽하게 균형을 이루는 작품, 캔버스 전면에 못을 박고 그것을 일일이 구부리기도 하고, 캔버스 위에 촘촘하게 철조망을 치고, 묶인 철조망을 제거해서 남은 흔적을 보여주는 작품 등 매우 실험적인 작업이었다.

 

그러나 하종현을 대표하는 중요한 작업은 '접합(Conjunction)' 연작이다. 접합(接合)은 어떤 것을 붙이고 연결하여 하나가 된다는 뜻인데, 그의 작품에서는 재료가 되는 마대와 물감 덩어리, 작가의 행위 세 가지를 결합한다는 의미를 내포한다. 1974년 시작되어 2009년까지 35년이 넘는 긴 기간 동안 이루어졌던 이 연작에서 작가는 화면 뒤에서 안료를 밀어내는 독특한 방법으로 전혀 다른 회화의 방식을 제시했다. 캔버스 앞면에 물감을 칠하여 그림을 그리는 기존 회화의 오랜 관습을 깬 것이다.

 

경남도립미술관 소장품 '접합 03-13'(2003)은 이 시리즈가 한창 무르익던 시기의 작품이다. 올이 굵은 마포를 이용하여 캔버스를 만들고 캔버스 뒷면에서 물감을 밀어 넣으면, 거칠고 성긴 천의 틈새로 마치 싹이 움트듯 물감 알갱이가 몽글몽글 배어나며 독특한 조형성을 드러낸다. 그 후 배어 나온 물감으로 가득 채워진 캔버스의 앞면을 작가의 손과 나이프를 이용해 누르고 쓸어내는 행위를 가해 작품이 완성된다. 이 과정에서 무수히 많은 제스처가 교차하면서 나타나는 형상의 추상적 리듬은 표현의 절정에 다다른다. 질서정연하되 불규칙한 우연성이 스며있고, 기존의 흔적들은 다시 덮이며, 서체와 같은 선들은 겹치고 부서진다. 선적이고 절제된 표현으로 고요하고 명상적 분위기를 자아내던 초기의 '접합'은 이처럼 후기로 가면서 선이 짧고 많아지면서 더욱 집요해진다.5) 우리는 이러한 무수한 물감의 자국들, 재료를 당기거나 억누르는 움직임의 균형성, 캔버스 전면을 팽팽하게 채워 넣은 표면상의 사건들6) 이 이루는 자연스럽고 일정한 패턴을 통해 물질과 인간의 행위가 만나 빚어낸 회화의 새로운 표정과 마주하게 된다.

 

“하나의 물질이 자연스럽게 다른 물질의 틈 사이로 흘러나갈 때, 그리고 흘러나간 물질들의 언저리를 느긋이 눌러 놓았을 때 내가 바라는 것은 가능한 한 물질 자체가 물질 그 자체인 상태에서 내가 말하고자 하는 전부를 말해 줄 수 있기를 바라는 것이다. 그래서 작가는 되도록 말하지 않는 쪽에 있고 싶다.” (김복영과의 대담, 1984년)7)

 

/박현희 경남도립미술관 학예연구사

 

※참고문헌

국립현대미술관, 〈하종현 회고전〉, 국립현대미술관 전시도록, 2012

김복영, 물성에서 신체로-하종현의 후기 접합(接合) 시대, 〈미술세계〉 통권153호(1997. 7.)

김종근, 회화에의 반란-하종현, 네이버캐스트 : 네이버 지식백과, 한국미술 산책, 2012

 

※각주

1) 비정형이라는 의미로, 프랑스에서 일어난 현대 추상회화의 한 경향이다. 정해진 형상을 부정하고 일그러진 형상과 질감의 효과를 살려 격정적이고 주관적인 표현을 하였다.

2) 1970년대 한국 현대미술의 중심을 이룬 단색조의 미니멀리즘계 추상회화 작품들을 아우르는 말로 쓰이고 있다. 2000년 제3회 광주 비엔날레의 특별전 〈한일 현대미술의 단면〉전을 기획한 미술평론가 윤진섭이 처음 사용하기 시작한 용어다.

3) 하종현은 1962년부터 홍익대학교 미술대학 교수로 40여 년간 재직한 교육자이자 서울시립미술관장(2001~2006)을 역임한 행정가이기도 했다. 1999년 서울시 문화상을 2007년 프랑스 문화훈장을 수상했다.

4) 전위미술인 아방가르드를 표방한 미술단체로 1969년 9월 화가, 조각가, 평론가 12인으로 구성된 한국아방가르드협회라는 발행의 주체를 명기한 〈AG〉를 발간하였다. 발행인은 AG의 협회장을 맡았던 하종현, 편집인은 당시 〈공간〉에서 일하고 있던 미술평론가 오광수였다.

5) 김종근, 회화에의 반란-하종현, 네이버캐스트 : 네이버 지식백과, 한국미술 산책, 2012

6)  국립현대미술관, 〈하종현 회고전〉, 국립현대미술관 전시도록, 2012

7)  김복영, 물성에서 신체로-하종현의 후기 접합(接合) 시대, 〈미술세계〉 통권153호(1997. 7.) p. 45.

 

이 보도 자료와 관련하여 보다 자세한 내용이나 취재를 원하시면 경남도립미술관 운영과 박현희 학예연구사(055-254-4633)에게 연락주시기 바랍니다.

 

 

출처 : 경남도민일보(https://www.idomin.com)

[경남도립미술관 소장품 산책]17. 물질과 인간이 만나 빚어낸 회화의 새로운 표정, 하종현 < 미술·사진 < 문화 < 기사본문 - 경남도민일보 (idomin.com)

 

 

[경남도립미술관 소장품 산책]17. 물질과 인간이 만나 빚어낸 회화의 새로운 표정, 하종현 저작물은 자유이용이 불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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