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보마당

Gyeongnam Art Museum

보도자료

[경남도립미술관 소장품 산책] 19. 끊임없는 매체 실험의 종착지, 평면으로 회귀한 곽인식

  • 작성자 : 관리자
  • 작성일 : 2024-04-02

[현재 경남도립미술관 수장고에는 작품 1500여 점 이상이 보관돼 있다. 전시 작품을 구매하거나, 매년 정기적으로 도내 작가 작품을 사들인 결과다. 하지만, 아쉬운 건 도대체 수장고 안에 어떤 작품이 들었는지, 일반인이 쉽게 알 수는 없다는 점이다. 그래서 도립미술관 학예사를 통해 수장고 작품을 하나하나 꺼내 보기로 했다. 글과 사진을 통해서지만, 이렇게라도 하면서 수장고 관리 문제에서부터 도민들과 작품을 공유하는 방법까지 멀리 내다보고 고민해보자는 취지다. ]

 

곽인식은 1919년 대구 현풍에서 태어나 어릴 적 할아버지로부터 한학과 서예를 배우며 성장했다. 그는 1937년 19세에 일본으로 건너갔으며, 니혼미술학교(日本美術学校) 서양화과를 1941년에 졸업한 이후에도 일본에서 지내며 왕성한 작품 활동을 했다. 23세가 되던 1942년, 작가는 태평양전쟁이 발발하자 귀국해 대구에서 개인전을 열며 작업 활동을 이어나갔다. 이후 7년 뒤, 다시 일본으로 건너갔다. 곽인식은 1954년 요미우리신문 앙데팡당전(読売アンデパンダン)에서 최우수상 수상, 1956년 아사히신문 주최 신인 작가 선발전시에서 신인상 수상 등의 이력을 만들며 일본 미술계의 중심에서 활발한 활약상을 보였다.

 

곽인식은 1930년대부터 1940년대까지 인물을 소재로 한 구상 작업을 했다. 1950년대부터 작가는 신체 이미지를 과장되게 묘사하여 초현실주의적인 경향을 실험하며 휴머니즘에 기초한 사회적 문제를 함의하는 회화를 다수 제작하였다. 이후 1950년대 말에 이르면 화면의 마티에르를 살리는 앵포르멜 기법과 모노크롬적 요소를 적용한 작품을 제작하였고, 1960년대 초반부터는 회화 위에 오브제를 붙이는 실험을 시작했다. 이때부터 곽인식 작품의 경향이 회화에서 모노(사물)로 변화해가며 물성을 탐구하는 방식으로 변모해간다. 이는 일본 미술사에서 주요 개념인 ‘사물’의 논의가 본격화되기 이전부터 물성(物性)1) 탐구했음을 알 수 있다. 작가는 1962년부터 깨진 유리 작품을 시작으로 종이, 놋쇠, 철 등을 작품화하여 오브제로써 제시하여 사물의 물질성에 주목하는 실험을 선보였다. 그는 1976년부터 종이, 나무, 점토, 돌 등 다양한 물질적 재료의 표면에 작가의 흔적을 남겨 회화도 조각도 아닌 사물 그 자체가 가진 물질성을 그대로 드러내는 작업을 했다. 이런 시대를 앞서가는 곽인식의 작업 태도, 물질성에 관심을 기울이고 탐구를 시작한 것은 일본의 모노하2) 보다 선구적이라는 점에서 의의가 있다. 1970년대 중반 이후 만년기의 작가는 종이에 붓으로 비교적 균질한 크기의 타원형 색점을 중첩하여 찍는 추상회화와 판화에 집중했다. 이는 그가 다시 회화로 회귀한 것으로 볼 수 있다. 화면에는 타원형 점이 수없이 찍혀 있다. 작가는 동양화에서 전통적으로 쓰이던 배채법(背彩法)3)을 활용하여 한지의 앞면과 뒷면 양면 모두에 점을 찍어 뒷면에 찍은 형태가 앞면으로 스며 나오도록 처리했다. 이로써 같은 크기의 색점이라도 묘하게 층위가 다르게 느껴지며 무중력의 부유하는 상태처럼 보여 보는 이로 하여금 몽환적인 추상적 세계로 인도하는듯하다.

 

경남도립미술관이 소장한 '작품-D'는 작가의 이러한 회화 작업을 판화로 실험한 것 중 하나다. 이 작품은 수묵화의 선 같기도 한 점들이 서로 겹치듯 말듯 한 다양한 명도의 검은 점으로 전면 빼곡히 채워져 있다. 이로써 무한한 무채색의 리듬감이 느껴진다. 무수한 점들의 반복과 명도의 변화라는 질서 속에서 경계를 넘어서는 무한한 공간감을 상기시킨다. 또한 점들의 각기 다른 명도로 인해 깊이감과 층위가 다른 것처럼 보이게 하여 표면의 상을 넘어 원초적 심연의 공간감을 떠올리게 한다. 이 작품의 제작 연도는 1983년이고, 매체는 애쿼틴트 동판화다. 판화는 기본적으로 판을 부식 또는 깎아 판 위에 요철을 만든 후 물감을 발라 찍어내는 점에서 회화와 다른 매체의 특성을 보인다. 그러나 애쿼틴트 기법을 적용한 판화의 경우, 판면 위에 송진 가루를 뿌리고 가열하여 눌러 붙인 후 질산 용액 등에 부식하므로 판면의 요철을 섬세하게 조절할 수 있어 섬세한 명암의 톤을 구사할 수 있다. 즉 판화지만 마치 수채화나 수묵화처럼 붓이나 모필로 그린 듯한 회화적 효과를 나타낸다. 바로 이 부분이 곽인식 작가가 회화(채묵화)에서 실험했던 전통적 배채법(뒷면에 칠한 색이 앞으로 스며 나오도록 하는 기법)을 애쿼틴트 판화라는 매체로 변경하여 실험하였음을 유추할 수 있는 작품이다.

 

작가에게 애쿼틴트 판화는 겹치고 비치는듯한 무수한 점들의 농담을 효과적으로 실험할 수 있는 또 다른 평면 매체였던 것이다. 곽인식 만년의 작업세계의 주요한 특징은 바로 이런 회화나 판화 매체를 통한 평면 물성의 실험이다. 이 작품은 입체 사물의 물성을 선구적으로 탐구했던 작가가 만년기 다시 평면 물성의 실험으로 회귀한 특성을 잘 보여주는 것으로 미술사적 가치가 높다. 작품을 보면 작가가 가장 기본적인 조형 요소인 무채색 점을 통해 가장 본질적 조형성에 다가서고자 부단히 노력한 시도가 드러나며 숭고미마저 느껴진다.

 

/김주현 경남도립미술관 학예연구사 

 

※ 각주

1) 물성: 사물, 물질이 가지고 있는 성질. 대상 그 자체의 본성 또는 재료의 특질을 의미하는 용어.

2) 모노하: 1960년대 말부터 1970년대 초 나타난 일본의 미술 운동. 사물 그 자체의 성질을 중심으로 하며 주로 종이, 나무, 돌, 금속 등의 소재를 그대로 제시하여 물성 그 자체를 드러내고자 한다. 이를 통해 물질의 존재, 인식, 주변과의 관계성 등에 탐구하고자 하는 미술 경향.

3) 배채법: 종이의 뒷면에 색을 칠하여 색이 앞으로 배어 나오게 하는 동양화법. 색의 음영을 줄 때 사용하기도 하며, 은은한 느낌이 드는 것이 특징이다.

 

※ 참고문헌

1. 대구미술관, <탄생 100주년 기념 곽인식> 전시 도록, 대구미술관, 2019. 8. 16.

2. 국립현대미술관·대구미술관,  국립현대미술관 순회전 도록, 국립현대미술관, 2019. 11. 8.

3. 박순홍. (2016). 〈곽인식(郭仁植, 1919-1988) 작품 연구〉. 상명대학교 조형예술학과 석사 학위 논문.

 

 

이 보도 자료와 관련하여 보다 자세한 내용이나 취재를 원하시면 경남도립미술관 운영과 김주현 학예연구사(055-254-4634)에게 연락주시기 바랍니다.

 

 

출처 : 경남도민일보(https://www.idomin.com)

[경남도립미술관 소장품 산책] 19. 끊임없는 매체 실험의 종착지, 평면으로 회귀한 곽인식 저작물은 자유이용이 불가합니다.

[경남도립미술관 소장품 산책] 19. 끊임없는 매체 실험의 종착지, 평면으로 회귀한 곽인식 저작물은 자유이용이 불가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