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정 번호 : 도문화재자료 제183호
신사천(?~1382년)은 고려말 공민왕(1351년~1374년) 때 봉익대부전공판서로서 귀향하여 낙동강역의 곡강(현 길곡면 오호리)에 은거하다 여러 차례 왜침에서 분전하여 큰 공을 세웠으며, 1382년 멸포(현길곡면 오호리)강변에서 순절하였다.
그의 큰딸도 랑장 김우현의 처로서 남편과 함께 왜적과 싸우다 절사하였고, 그의 작은 딸도 16세의 처녀로 왜적과 싸우다가 순절함으로써 3부녀가 충.효.열부의 도리를 다하였다. 이러한 사실이 고려사절요에 기록되어 있으며, 전법판서 조준이 경상도 체복사로 왔다가 3부녀의 절의와 충효를 왕에게 상소하여 조선 태종 5년(1405년)에 삼강정려비석을 세우고 포상한 기록이 삼강행실록에 있다.
현비석은 1982년 발굴하여 도천제실에 보관하다가 1994년 비각 및 사당을 복원하고 안치하게 된 것이다. 비각은 정면 1칸, 측면 1칸의 맞배기와지붕이며 익공계의 공포를 시설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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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수정일 : 2018-10-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