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정 번호 : 보물 제 530호
* 지정일 : 1977년 7월 7일
* 규모(수량) : 1座
* 시대 : 고려초기(서기1111년)
* 소유자 : 거창군
금원산 자연휴양림 위쪽의 커다란 천연 동굴의 직립암벽을 얕게 파고 부조한 마애불로서 침잠한 얼굴 표정과 특이한 대좌 형식 등에서 토속적인 느낌을 강하게 풍기는 불상이다. 중앙의 본존불은 소발(素髮)의 머리위에 육계(肉 )가 큼직하다. 넓적한 얼굴은 작은 눈과 입, 세모꼴의 뭉특한 코, 납작하고 긴 귀 등은 토속적인 느낌이 강하다. 밋밋한 어깨에 신체의 볼륨은 약화되었고 통견(通肩)의 대의(大衣)는 평판적인 간결한 옷주름이 중첩되어 있다. 대의 하단은 짧게 표현되어 양 다리가 길게 노출되었다. 양 발은 보편적인 정면관(正面觀)의 불신과는 달리 발꿈치를 서로 맞댄 측면관(側面觀)이어서 부자연스럽다. 양 손은 가슴 앞에서 모아 엄지와 인지를 맞댄 상품중생인(上品中生印)을 맺고 있어 아미타불(阿彌陀佛)로 추정된다. 대좌의 윗면에는 5엽의 앙련(仰蓮)을 내부에는 간엽(間葉)이 3엽의 복련(覆蓮)을 표현하였다. 광배는 융기선으로 표현한 무문(無文)의 보주형(寶珠形) 두광배(頭光背)이다.
뻗은 천의(川衣) 자락과 영락 장식 등 장식성이 강하다. 특히 한 손으로 천의자락을 잡은 자세는 삼국시대의 보살상을 연상시키지만 그 보다는 훨씬 도식화(圖式化)되었다. 본존불에 비해 여성적인 얼굴에 머리에는 화려한 화관(花冠)을 썼으며 수발(垂髮)은 어깨까지 늘어져 있다. 광배는 원형 두광배이며 대좌는 사실적인 연꽃으로 구성되었다. 좌협시보살 옆에 세로 88㎝, 가로 70㎝ 크기로 암벽을 파낸 다음 이 불상의 조상기(造像記)를 해서체로 1행 26자, 총 21행에 540여 글자를 새겼다. 글자 중의 (天慶元年十月)은 고려 예종(睿宗) 6년(1111년)에 해당된다. 전하는 바에 의하면 마애삼존불이 있는 곳에 가섭암과 지장암 등의 불사가 있었다.
금원산(金猿山) 북쪽 골짜기 큰 바위굴에 새겨져 있는 마애불(磨崖佛)이다. 가섭사지(迦葉寺址) 뒤의 돌계단을 오르면 바위굴이 있고 안쪽 남향 바위에 삼존불(三尊佛)이 새겨져 있다. 삼존불의 부분을 삼각선으로 그어 구획하고, 가운데는 보주형으로 다듬어 세 분의 부처를 새겼다. 중앙의 부처가 두 보살을 좌우로 거느린 모양이다. 중앙은 아미타여래, 오른쪽은 관음보살, 왼쪽은 지장보살로 보인다. 연꽃 수미단 대좌 위의 본존불은 넓적한 얼굴에 삼각형의 코, 얼굴에 비해 작은 눈과 입, 크지만 밋밋한 귀가 토속적 인상을 준다. 좌우 보살의 얼굴도 비슷한데 화려한 옷자락은 조금은 번잡한 느낌이다. 삼존불 모두 도드라지게 새겼으나 전체적으로는 납작하게 표현되었다. 본존불의 각진 어깨, 밋밋한 가슴, 부자연스레 가슴에 모은 팔, 막대 같은 다리, 좌우로 벌린 발등과 같은 도식적인 처리는 고려시대 부처상의 특징이다. 오른쪽에 새긴 글에는 1111년에 제작한 것으로 되어있다. 아래의 가섭암 자리는 1770년대까지 절이 있었다는데, 지금도 당시의 것으로 보이는 몇 개의 석재가 남아 있다. 지금 위천초등학교에 옮겨진 삼층석탑은 비슷한 고려시대의 탑으로 추정되고 있다. 마애삼존불은 가섭암과 같이 고려시대에 있었던 절의 일부였을 것이다.
가섭암지마애삼존불상 저작물은 자유이용을 불가합니다.
최종수정일 : 2018-10-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