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정 번호 : 문화재 자료 제96호 (1983. 12. 20.)
각산봉수는 대방산 산 2번지 각산의 정상인 해발 408m 고지에 있다.
이 봉수는 고려때 설치된 간봉으로 남해의 금산에 있는 구정봉(九井峰)의 연락을 창선면 태방산을 거쳐서 받았다. 각산의 연락을 사천 안고산과 곤양면 우산(牛山)봉수가 진주 망진산 봉수로 넘겨 주었다.
봉수(烽火)라 함은 산 위에다 일정한 장소를 정하여 횃불 올리는 것을 말하며, 고대 통신방법의 하나로 인편에 의한 방법 외에 높은 산에 올라가 낮에는 연기를 밤에는 불빛으로 신호를 하였다.
우리 나라에서 법으로 정하여 실시한 시기는 고려 의종 3년(1149)부터라 한다. 각산 봉수대는 각산의 정상인 해발 408m의 <봉고지>에 큰 돌무더기로 설치되어 있다. 봉수는 오늘날과 같은 통신시설이 없던 시절에 변경의 위급을 신속히 알리는 국가 안보상의 긴급 통신수단이었다. 우리나라에는 중국의 제도를 도입하여 고려 의종 3년에 처음으로 이 제도를 실시하였는데 각산 봉수대도 그 무렵에 설치된 것으로 보인다.
산정의 봉수대에서 밤에는 불, 낮에는 연기로써 변방의 위급 상황을 알리는데 평상시는 한번, 적이 나타나면 두 번, 국경 가까이 접근하면 세 번, 또 적이 월경을 하게 되면 네번, 접전이 벌어지면 다섯 번으로 신호를 삼았다. 이 봉수에는 직봉과 간봉이 있었는데 직봉은 전국의 5개 간선이며 간봉은 간선을 바쳐주는 보조선이다. 사천의 각산 봉수는 간봉이었으며 여기에는 오장 2명과 봉군 10명의 상비병력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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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수정일 : 2018-10-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