곤양면 성내리 일대가 옛읍성터이다. "성내"란 성 안쪽이라는 뜻이며, 남문외리의 "외리"는 성 밖이라는 뜻을 지니고 있다.
사천읍성보다 약 20여 년 전에 쌓은 성으로 세종 12년(1430) 12월에 도순문사 최윤덕이 완공시킨 성이다. 이에 앞서 세종 3년(1421) 7월에 처음 성을 쌓기 시작하였으니 곤양읍성은 무릇 10년이 걸린 셈이다. 석축의 둘레 3,765척(자), 성벽의 높이 12척, 성가퀴 767곳, 성문 셋과 옹성 18개소, 성안에 우물 셋, 못이 2곳 있었다. 옛 곤양군은 세종대왕과 그의 애손 단종의 태실이 봉안된 고을이다. 이로 인하여 군으로 승격되고 곧 읍성을 쌓았다. 하지만 임진난 때에는 사천성과 같이 왜적에게 짓밟히는 수난을 겪었고, 이순신 장군께서 백의종군 하시면서 하룻밤을 묵으면서 도원수부에 보낼 장계를 보완한 곳이다.
또한 세종태실과 단종 태실도 훼철되어 수모를 당했다. 세월의 탓이겠지만 지금은 성지가 모두 주거지로 변하고, 석축의 일부만 흔적을 남기고 있다. 또한 당시 형방 앞에 심었던 비자나무 두 그루가 자라서 지금은 천연기념물로 지정되어 보호하고 있으며, 역대 군수들의 선정비가 즐비하게 서 있어 그 옛날의 영고성쇄(성함과 쇠함)를 말해주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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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수정일 : 2018-10-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