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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관광

청계계곡

청계계곡의 파일 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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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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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주소산청군 단성면  길찾기
  • 관리기관산청군 문화관광과
  • 문의전화055)970-6421
  • 편의시설
    장애인편의시설 놀이시설 수유실 유모차 자전거 와이파이

상세내용

선사시대의 유적인 선돌(立石)을 비롯해 천년의 풍상을 이겨온 석탑이 아직 남아 있는 단속사지가 있다. 600여 년의 수령을 자랑하는 매화나무가 봄이면 꽃을 피우고, 혹독한 시집살이를 못이겨 죽고만 어느 여인의 한 맺힌 삶이 아직도 고갯마루에 돌무덤으로 서 있는 계곡이 청계계곡이다. 볼거리가 많고 사연이 많은 계곡답게 차로 한달음에 찾아갈 수 있게 잘 개발되어 있다. 그러나 어느 답사기에 의지해 휭하니 다녀가거나 그늘 좋은 계곡에 앉아 더위를 식히고 떠나는 사람들의 눈에 청계계곡은 초라해 보일 뿐이다.
여름이면 유명계곡이나 해수욕장을 찾아 텐트를 치고는 질탕에다 먹고 마시며 놀아야만 피서를 다녀왔다고 말하고, 단풍놀이 또한 자연이 빚는 아름다움 보다는 끝이 보이지 않는 차량 행렬 속에 갖혀 주마간산(走馬看山)격으로 둘러보고 오는 것으로 변질되다 보니 만사를 그저 그렇게 여기기 때문인가? 그러나 청계(淸溪), 단속(斷俗) 등의 이름에서 벌써 예사롭지 않은 곳임을 알 수 있다.
먼저 계곡이 얼마나 맑았으면 청계라 했나 싶고, 골짜기가 얼마나 깊으면 속세와 인연을 끊는다는 단속이라 했을까 싶다. 먼저 청계계곡의 들머리에 해당하는 남사 마을부터 고적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목화를 처음 재배한 배양마을에서 중산리 방면으로 4Km 거리에 있는 남사마을에 들어서면 정감 있는 토담집 앞에 우뚝 솟아 있는 솟을대문 그리고 고졸한 멋이 느껴지는 40여채의 기와집과 동네를 뒤덮고 있는 숲에서 조선시대 양반들의 품위를 느낄수 있다.
남사마을은 고려 때는 왕비를 조선시대에는 영의정과 임진왜란 의병장을 일제때는 독립투사를 배출했으며 향약(鄕約)인 남사동안(南沙洞案)과 조선 태조가 내린 교서(敎書)등의 유물을 갖고 있는 유서 깊은 동네다. 남사마을을 지나면 호암교 위로 운곡관광농원, 다물민족학교 등의 푯말이 있다.
이 푯말따라 들어가면 청계계곡이다. 계곡을 들어서면 입석마을을 보게된다. 입석초등학교 교정에 있는 높이 약2m의 선사새대 유적인 선돌은 청계계곡의 오랜 역사를 말해주는 증거물인 셈이다.다음이 광제암문을 새기고 있는 거대한 암석이 있는 계곡이다. 도로와 떨어져 있어 지나치기 싶다.
바로 여기서부터 단속사 시작되며 가족간에 오붓이 야영할 수 있는 공간과 도로변에 민박집이 있어 쉼터로도 적당하다. 또 신라시대에 창건한 고찰 단속사는 현재 보물 72, 73호인 3층석탑이 있고, 한때는 경덕왕의 초상화와 솔거가 그린 유마상(維摩像)에, 각기 다른 형상의 석불만도 500여개가 있었다고 한다. 석탑이 있어 마을 이름도 탑리로 부르는 단속사터에는 옛 절의 규모를 말해주듯 당간지주가 석탑과 멀찍이 떨어져 있다. 당간지주를 지나 석탑앞으로 올라서면 천년의 세월을 지나오면서 그 자태를 잃지 않고 있는 탑 2기가 동서로 나란히 서 있다.
아무 기교없이 다듬어 놓은 단아한 모습의 석탑은 그것으로 이미 지난 세월의 풍상을 모두 말해준다. 특히 석탑 앞의 대나무는 석탑을 지키기라도 하는 듯 곧게 서 있고, 석탑 뒷편 정당매(政堂梅)로 불리는 매화나무와 비각은 또 하나의 전설을 더해준다. 정당매는 강회백(姜淮伯)이 소년시절에 단속사에서 공부할 때 매화를 심었는데 그가 과거에서 급제해 정당문학(政堂文學)이란 벼슬을 얻었기에 붙여진 이름이다.
조선시대 김일손은 속두류록(續頭流錄)에서 누각의 난간에 기대어 앞 뜰을 보니 가지를 벌린 매화가 있었는데 이를 정당매라 한다 라고 기술하고 있다. 이로보아 현재 탑 뒤편으로는 대웅전과 누각이 있는 듯하다. 그러나 지금은 가정집들이 옛 법당터를 차지하고 앉아 연화문양이 선명한 석재들로 담장을 쌓거나 개를 묶어주는 표석으로 이용하고 있을 따름이다. 세월의 무상함과 사람의 무심함을 겹친 안타까운 모습니다.
탑을 돌아나와 고갯길로 올라서면 오른쪽으로 청계계곡의 백미라 일컫는 계곡이 나온다. 여름이면 사라진 절의 흔적인양 바위 틈새를 비집고 서 있는 소나무 그늘을 의지한 텐트들이 들어서는 곳이다. 여기가 없었다면 청계계곡이란 말도 없었을 정도로 계곡이 아름답다.
넓다란 시내폭에 잔돌로 이루어진 공터가 있고 물도 맑은데다 깊이도 어른 무릎 정도라 물놀이 하기에는 최적의 조건을 갖추고 있다. 최근에는 웅석봉을 넘어 어천계곡으로 가는 고갯길이 잘 포장되어 있어 드라이브 삼아 많이 다닌다. 산을 넘는 고갯마루에는 이정표 역할을 하는 돌무덤이 있다. 신행당고개란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새악시가 비참한 시집살이 끝에 친정으로 쫓겨 가지만 한번 시집가면 출가외인이라는 관습에 매여 갈 곳 없는 여인이 생을 마친 곳으로 죽은 여인의 원한을 풀어주기 위해 지나는 사람들이 돌을 던져 지금의 돌무덤이 생겼다는 것이다. 만남의 장소이기도 했지만 헤어짐의 장소이기도 했던 고개의 비극을 보여주는 현장이다.

교통정보



  • 진주나 산청에서 원지행 버스를 타고 하차한 다음 청계, 운리 방향 버스를 타고 청계계곡 앞에서 하차한다.


  • 남해고속도로 →서진주IC →진주대전간고속도로→단성IC→국도20번→입석삼거리→지방도1001번→청계계곡


  • 88올림픽고속도로→함양수동IC→진주대전간고속도로→단성IC→국도20번→입석삼거리→지방도1001번→청계계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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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계계곡 저작물은 자유이용을 불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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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연락처 : 055-211-6051

최종수정일 : 2018-1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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