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주 연못은 본시 강주의 영터라고 전하며 고려말 우왕 5년(1379년)에 배극렴이 진을 치고 있던 영터였다는 것이 하륜(1347∼1416)의 촉석성 성문기편에 기록되어 있다.
강주못은 언제 축조되었는지는 알 수 없으나 못 둑에는 수령 5∼6백년 정도의 고목이 우거져 있고 또 그 곳에 있는 이팝 나무는 중국에서 가져온 것이라는 말이 전하는 것 등으로 보아 이 강주 연못 일대는 진주·진양의 역사상 중요한 지역으로 평가되고 있다.
조선조 말엽 남호 강영지 선생이 마을 입구 도저봉(산) 밑에 일호정(一湖亭)을 건축하여 영남석학들이 매년 음력 3월 13일에 학문 연구와 회의장소로 사용하였고 남호 선생의 아들 강현수는 일제 치하 때 주위 사람들을 모아 글을 가르치는 서당으로 사용하였으나 지금은 터만 남아 있다.
못둑에는 오래된 고목이 무성하여 경치가 좋아 연중 관광객이 많고 진주시내 학생들의 소풍놀이 장소로 많이 이용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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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수정일 : 2018-10-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