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 감음(感陰·感隱) 고현(古縣)의 주산이다. 산 가운데 금원암이 있다.
전하는 말에 따르면 옛날 금원숭이가 하도 날뛰며 사람을 현혹하므로 한 도승이 그를 바위 속에 가두었다 한다.
그 바위는 마치 원숭이 얼굴처럼 생겨 낯바위라 하는데 음의 바꿈으로 납바위라 부르고 있다.
금원산의 본디 이름은 검은산이다. 옛 고현의 서쪽에 자리하여 산이 검게 보인데서 이름하였다.
해발 1,353m의 금원산 임황은 낙엽송 등 인공조림지와 천연림으로 구성되어 있고 평균 축척 66㎥로 울창한 숲을 이루고 있으며, 목본류 49과 87속 147종과 초본류 500여종 및 한국 특산수중인 히어리외 6종이 분포하고 있다.
특히 선비들이 공부하는 유안청이 자리하였다는 유안청 계곡은 길이가 2.5km에 이르며 경관이 빼어날 뿐 아니라 계곡이 깊고 수량이 풍부하여 곳곳에 아름다운 폭포와 소를 지니고 있으며, 높이 80m의 직폭인 유안청 제1폭포, 길이 190m의 와폭인 유안청 제2폭포, 붉은 빛깔을 띤 화강암을 깔고 쏟아져 내리는 물결모양이 마치 노을바탕에 흰 구름이 떠 흐르는 것 같은 자운폭포가 자태를 뽐내고 있다.
우측 계곡은 높이 50m, 둘레 150m나 되고 우리 나라 단일 바위로는 제일 크다는 문바위가 보는 이로 하여금 위압감을 느끼게 하고, 바로 위 쪽의 직립 암벽에 본존불과 보살상을 새겨 전체를 보주형으로 처리한 고려시대 삼존불인 국가지정보물 제530호인 가섭사지 마애삼존불상이 있다.
이 산은 금원암을 비롯하여 일암(一岩), 일봉(一峰), 일곡(一谷)이 모두 전설에 묶여 있는 산이다.
비 내림을 미리 안다는 지우암(知雨岩), 달암 이원달 선생과 그의 부인 김씨와 얽혀 이름한 금달암(金達岩), 효자 반전이 왜구를 피해 그의 아버지를 업고 무릎으로 기어 피를 흘리며 올랐다 하는 마슬암(磨膝岩),서문가(西門家) 바위, 하늘에서 세 선녀가 내려와 목욕을 하였다 하는 선녀담(仙女潭)들이 널려 있다. 선녀담은 아기를 못낳는 여자가 이 소에 목욕을 하고 소원을 빌면 아기를 낳게 된다는 등 많은 전설이 있다.
금원산에는 크게 이름난 두 골짜기가 있다. 성인골(聖人谷) 유안청(儒案廳)계곡과 지장암에서 와전된 지재미골이다. 유안청계곡은 조선 중기 이 고장 선비들이 공부하던 유안청이 자리한 골짜기로 유안청 폭포를 비롯한 자운폭포와 소·담이 주변 숲과 어우러져 산악경관이 빼어난다.
지재미골 초입에는 문바위와 차 문화을 꽃피웠던 가섭사 마애삼존불이 있다.
금원산 동쪽 줄기로 내리면 마항마을뒤 고려 왕비가 나왔다는 왕비골이 있다.
그 너머 모리산 모리재는 동계정온선생이 남한산성에서 돌아와 말년을 보냈던 곳으로 필봉아래 동계선생 생가가 있다.
그 곳에는 나라 잃은 슬픔과 분노를 토로한 장지연 선생의 시일야방성대곡(施日也放聲大哭)과 남한산성이 무너지고 삼전도에서 임금이 청태종에게 무릎을 꿇은 치욕을 당함에 할복한 동계 종온 선생의 충절의 혼이 담겨 있다.
아름다운 숲과 계곡을 지닌 금원산자연휴양림은 가족과 함께 떠나는 숲속의 여행길로는 가히 전국에서 제일의 휴양지라 할 수 있다.
금원산 저작물은 자유이용을 불가합니다.
최종수정일 : 2018-10-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