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정 번호 : 도유형문화재 제27호
* 축조연대 : 선조 32년(1599)
임진왜란과 정유재란이 끝나는 선조 31년(1598) 마지막 전투인 노량해전에서 일본 패잔병 500여명은 관음포를 통하여 육지로 올라와 일본군이 주둔하였던 선소 왜성으로 갔으나 왜성에 주둔군이 없자 패잔병들은 주민들의 선박을 탈취하여 일본으로 도주한 후, 명나라군은 이곳에 도착하여 왜군을 찾으니 이미 떠나고 없으므로 다음해인 선조 32년(1599)에 왜성 아래에있는 자연암에다 유격대장 장량상이 각자한 것이다.
내용은 명나라 황제의 명에 의해 제독 이여송과 수군도독 진린이 남해까지 와서 왜군을 무찔렀다는 명나라의 위대함을 암각한 전승시비로 12행 종서로 된 마애비이다.
주록에는 당초문으로 띠를 돌려 새겼다. 비문 말미에 "萬曆(만력) 二十六年(26년) 季秋(추계) 國家復有(국가복유) 干東弟(간동제) 維時(유시) 朝鮮受倭患至是(조선수왜환지시) 六七年矣(육칠년의) 我師救之(아사구지) 皇明(황명) 萬曆(만력) 二十七年(27년) 陽月上浣吉조日建(양월상완길조일건)"으로 새겨져 있다.
이곳은 동쪽을 정벌하고 자연석에 글을 새겼다고 해서 "동정마애비"인 것이다. 선조 32년(1599)에 명나라 유격대장 장량상이 조선에 원정을 와서 전쟁을 성공리에 마칠수 있었다는 내용의 암각문이 새겨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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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수정일 : 2018-10-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