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정 번호 : 경상남도지정 기념물 제167호
밀양읍성(密陽邑城)은 성종 10년(1479년)에 축조되었는데, 동국여지승람(東國與地勝覽) 에 의하면 읍성석축사천육백칠십척 고구척 내유사정일지 성화십오년축(邑城石築四千六百七十尺 高九尺 內有四井一池 成化十五年築) 이라는 기록이 남아 있는 것으로 봐서 돌로 쌓은 읍성의 둘레가 4,670척 높이가 9척 성내에는 우물이 넷, 연못이 하나 있고 성화 15년에 쌓았다고 한다. 현재 내일동 전역에 해당 되는 읍성은 동북으로 무봉산(舞鳳山 : 일명 衙東山)과 아북산(衙北山) 능선을 따라 북성껄에 이어졌으며, 다시 해천(垓川)을 경계로 남북 일직선으로 성벽이 구축되어 루교(樓橋)에 연결되었고 거기서 동쪽으로 남천강변을 따라 영남루 아래까지 사방을 둘렀었다.
(밀주징신록(密州徵信錄))에 의하면 동문 1칸, 서문 2층3칸, 남문3층3칸(읍성의 정문으로 공해루 : 控海樓),북문 1칸 동서 야문(夜門)을 설치하여 성중에서 사람이 죽어 초상이 나면 그 시신이나 상여가 모두 이 문울 통하여 나갔다고 했다. 선조 25년(1592년) 4월 임진왜란 때 읍성 원래의 제도와 모습을 찾아볼 수 없을 만큼 폐허(廢墟)가 되었으며, 선조 39년(1606년)경부터 읍성을 재건해 나갔으나 오랜세월에 걸쳐 복구하는 과정에서 초창기의 제도와 규모는 많이 변경되었고, 구한말에 이르러 읍성에 대한 관리가 허술해져 석축이 무너지고 사대문(四大門)의 기능 또한 해이해져 갔으며, 고종 39년(1902년)에 밀양을 통과하는 경부선 철도가 부설됨에 따라 사대문과 성벽이 헐리어 철로(鐵路) 공사에 이용됨으로서 성(城)의 모습은 사라져 버렸는데, 최근에 밀양시에서 영남루 앞 남천강변을 중심으로 성벽의 일부를 복원해 두고 있다.
밀양읍성 저작물은 자유이용을 불가합니다.
최종수정일 : 2018-10-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