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정 번호 : 사적 제 65호
화왕산의 북봉으로부터 서쪽으로 뻗은 지맥의 측단에 하나의 계곡을 포옹하여 축조한 산성이다. 반면식 산성 형식의 대표적인 예이다. 이 성의 축성연대에 대해서는 문헌에 일체의 기록이 없어 불명확하나, 윗쪽으로 화왕 산성이 위치하는 것으로 보아 이 산성역시 같은 시기의 것이라고 추정된다.
현재 목마산에는 수림이 울창한데 그 서남쪽 사면의 계곡을 이용하여 능선을 따라 석재로서 쌓은 석성이나 대부분 좌우로 무너져내려 확실한 구조는 알 수 없다. 석재는 인접한 인두 크기의 산석을 주로 사용하였고 부분적으로 자연암반을 그대로 이용한 곳도 있다. 외벽의 경우는 비교적 정교하게 쌓았으나 내벽은 조잡하게 층계식으로 점차 안쪽으로 낮아지는 형태를 갖고 있다.
창녕읍 동쪽에 있는 화왕산의 북쪽 봉우리로부터 서쪽으로 낮게 뻗은 야산의 계곡을 둘러싼 측면식 또는 반면식 산성의 대표적인 예이다. 확실한 축성연대는 알 수 없으나 신라 진흥왕이 대가야를 완전히 정복하고 이 곳에 하주를 두었는데, 이전에도 이 성이 존재하였을 것으로 추측된다.
또한 부근에는 가야 시대의 고분들이 많이 분포되어 있는데 이성의 연대를 추정할 수 있는 좋은 자료가 된다. 전하는 말에 의하면 조선 시대의 임진왜란과 관련있는 산성이라 하나, 이는 이 때 의병장 곽재우가 왜적을 방어하기 위하여 산성터를 수축하였기 때문이다. 형태상으로 볼 때 삼국 시대의 산성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반면식으로 성의 정면이 계곡입구를 향하여 있으므로 수비를 위한 산성으로 생각할 수 있다.
그러나 산성의 명칭이 목마 산성이기 때문에 혹시 후대에 말을 기르기 위한 목마장으로 사용되었을 가능성도 있다. 석벽은 자연석 또는 네모꼴의 할석을 이용하였으며 아랫부분을 약간 내밀어 쌓아 견고히 하려 하였다. 한편 산성으로서의 규모는 매우 커서 부근의 마안형의 화왕 산성과 비슷하여 같은 지방에 있는 산성 사이의 양식 사적 비교가 된다. 옛 가야 지방에 남아 있는 성으로는 비교적 보존상태가 양호한 편이다.
축조연대 : 가야 시대
규모
창녕 목마산성 저작물은 자유이용을 불가합니다.
최종수정일 : 2018-10-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