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메뉴바로가기
전체메뉴 닫기
경남명소
메인으로 이동메인으로 이동

역사관광

사천 사천읍성

사천 사천읍성의 파일 이미지

사천 사천읍성의 파일 이미지

기본정보

0
  • 주소경상남도 사천시 사천읍 수양공원길 51  길찾기
  • 관리기관사천시
  • 문의전화055-831-2716
  • 편의시설
    장애인편의시설 놀이시설 수유실 유모차 자전거 와이파이

상세내용

* 지정 번호 : 도지정기념물제144호
* 지정 일자 : 1994년 9월 26일
* 규 모 : 4,984㎡
사천읍성의 위치는 정의리일부와 선인리 일부에 걸쳐 있으며, 현재의 산성공원 일대를 포함하는 전지역이 옛 읍성지(邑城址)이다. 축성시기는 조선 세종(世宗) 24년(1442)에 병조참판(兵曹參判) 신인손(辛引孫)이 왕명에 의해 성을 쌓았다. 이로부터 4년 뒤인 세종 27년(1445) 봄에 공청(公廳:공무를 보는 집) 등 모든 건물을 짓고 현기(縣基)를 정동 고읍에서 이곳으로 옮겼다. 규모를 보면 처음의 기록에는 성둘레 3,015척(尺), 성벽의 높이 10.5~11.5척, 성문과 옹성이 각 세 곳이라 하였다. 그 후의 기록에는 성둘레 5,015척, 성벽의 높이 15척, 성가퀴(여첩女堞) 630곳, 성문 및 옹성이 각 세 곳에 있다 하였다. 이로 미루어 초기에 추가하여 증축(增築)이 있었음을 엿볼 수 있다.
이 성은 본래 백성을 보호하고 왜적을 막기 위해 쌓았으나 임진란 때 왜적에게 짓밟히는 수모를 겪었다. 특히 선조 32년(1598) 9월 28일경, 병사(兵使) 정기룡(鄭起龍)장군이 이끄는 조선군과 명나라 원군이 연합하여 이 성을 탈환하기 위해 혈전(血戰)을 벌여 왜적을 몰아내었다. 이때 명나라의 유격장 노득공(盧得功)이 전사하였다. 지금의 산성공원은 옛 읍성의 일부로서 성안에는 수양루(洙陽樓)와 팔각정 등이 있어 시민의 휴식공간이 되고 있다.

연혁
조선세종24년(1442) : 병조참판 신인손이 왕명에 의해 건립
조선세종27년(1445) : 공청 등 모든 건물을 짓고 읍(군)청을 정동면 고읍에서 옮겼다.
조선선조32년(1598) : 병사 정기룡장군이 이끄는 조선군과 명나라 원군이 연합하여 성을 탈환하기 위하여 혈전을 벌려 왜적을 몰아냄
주거지의 주위나 산세를 교묘하게 이용하고 견고한 성벽을 쌓아 유사시 적에 대한 방어와 배성을 보호하는 기능을 가진 평산성이

*연게관광지
다솔사
다솔사는 일제 강점기 때 불교계 항일 비밀결사 만당(卍黨)의 근거지로 국가보훈처 현충시설로 지정되어 있다. 불교계 청년들은 1930년 5월 만해 한용운 선생의 영향을 받아 호국 불교의 전통을 잇고, 한국 불교의 자주화와 대중화를 위해 만당을 조직하였다. 만당은 다솔사를 근거지로 하여 일제 침략에 대해 투쟁하였으며 국내뿐만 아니라 도쿄에까지 지부를 조직했다.

선진리성
지형을 이용해 구축한 평산선식의 토성인 선진리성은 고려 때 12조창 중 하나인 통양창을 보호하기 위해 구축되었으나 임진왜란 당시 왜군들이 왜성으로 고쳐 지었으며, 이순신 장군이 왜군들을 물리친 격전지이다.

 

연관태그

지도

지도안 선택한 장소입니다.

인근 관광지

사천 사천읍성 저작물은 자유이용을 불가합니다.

사천 사천읍성 저작물은 자유이용을 불가합니다.

목록
  • 담당부서 : 관광개발국 관광정책과  
  • 연락처 : 055-211-6051

최종수정일 : 2023-08-24

top버튼.
방문자 통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