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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재DB-상세

밀양 박양춘 여표비각

  • 소재지 경상남도 밀양시 부북면 후사포리 168 송포로 37외 3필지
  • 분류
  • 시대일제강점기
  • 지정유형문화재자료
  • 지정일1993-01-08
  • 수량(면적)1동
  • 관리자박재일

밀양 박양춘 여표비각(密陽 朴陽春 閭表碑閣)은 모헌(慕軒) 박양춘(朴陽春, 1561~1631)의 효행을 기리기 위한 정려각이다. 박양춘은 효행으로 호조참의에 제수된 성재 박항朴恒의 아들이다. 모헌 또한 효성이 지극하여 부친 장례 후 밤에는 시묘를 하고 낮에는 조모와 모친을 봉양하였다. 모헌의 효성을 잘 드러내는 일화가 전해지고 있다. 부친상을 당하여 묘를 지키는데 어느 날 폭우가 쏟아져 불어난 물로 인해 냇물을 건너 모친을 봉양할 수 없게 되었다. 이에 박양춘이 크게 울부짖자 냇물이 멈추어 무사히 모친을 봉양하였다고 한다. 또한 임진왜란 중에 지극정성으로 모시던 조모와 모친이 함께 돌아가시자 왜군의 침입과 상관없이 밤낮으로 장례를 치루었다. 이곳을 지나가던 왜장 이시다(石田三成)이 그의 효심에 감복하여 “출천지효(出天之孝, 하늘에서 내린 효자)” 라는 글씨를 써서 마을 입구에 정표하여 뒤따르는 왜병으로부터의 침범을 막아주었는데, 이것이 여표비의 유래가 되었다 한다. 이후 고을에서 후대의 교훈을 삼고자 정려각을 그 주변에 세웠고 정조 때에는 삼강록에 실렸으며 박항은 이조참의에 증직되었다. 이후 정려각이 퇴락되자 1912년도에 박양춘을 추모하는 밀양의 재지사족들에 의해 지금의 여포비와 비각이 건립되었다.\n비의 받침인 부좌(趺坐)는 거북이의 형상을 한 귀부형(龜趺型)이며 개석은 두 마리 용이 여의주를 놓고 싸우는 이수형(首型)이다. 비신(碑身) 앞면에는 ‘모헌박선생여표유허비병서(慕軒朴先生閭表遺墟碑幷序)’라고 음각되어 있다. 비문은 김도화가 지었고 글씨는 안종석이 새겼다. 비각은 정면 3칸, 측면 1칸이며 공포양식은 삼익공 양식이다. 지붕은 겹처마 맞배지붕이며 단청하여 마감하였다. 그리고 비각주변을 한식 담장으로 두르고 정면에 출입문인 협문을 달았다.

  • 담당부서 : 문화관광체육국 문화유산과  
  • 연락처 : 055-211-4551

최종수정일 : 2020-04-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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