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건연대는 확실하지 않으며, 단지 신라시대의 절터라고만 알려져 있다. 영암사에 관한 기록은 거의 존재하지 않지만, 고려 현종 5년(1014)에 적연선사가 이곳에서 83세로 입적했다는 기록과 강원도 양양에 있는 沙林寺 弘覺禪師碑(886년)에 새겨진 글자에 “……海印寺訪□□□求其勝者恭聞…年復於靈巖寺修定累月”이 남아 있어 최소한 통일신라 이전에 세워졌던 것임은 틀림없다. 1984년 동아대학교 박물관에서 일부를 발굴 조사하여 금당지·서금당·회랑 기타 건물지가 확인되었으며, 특히 금당지의 경우 3차례 개축이 있었던 흔적이 발견되었다. 영암사지에는 쌍사자적등(보물 제355호), 삼층석탑 (보물 제480호), 귀부(보물 제489호) 등 우수한 석물이 있었는데, 쌍사자석등은 1933년 일본인이 불법반출하는 것을 주민들이 막아 보관하고 있다가 1959년 면민들이 절터에 암자를 세우고 재건한 것이다. 이곳에서는 발굴과정에 통일신라에서부터 고려시대에 걸친 각종 기와편 등이 다량 출토되었고, 특히 높이 11㎝의 금동여래입상 1점은 8세기경 제작된 국보급으로 추정되고 있다.
최종수정일 : 2020-04-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