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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심산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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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암 물레방아 공원에서 박지원 선생을 기리며 향수에도 잠겨봅니다.

온라인 명예기자단 조윤희


 


 

유난히 파란 하늘이 심장에 다가온 날, 설레는 마음 가득 안고 함양에서 가볼 만한 곳을 찾아가다가 생각지도 않은 멋스러움에 끌려 목적한 곳보다 더 머물러 가슴을 훑어내렸던 곳, 그곳의 입구는 기백산 군립 공원이라는 현판을 달고 낯선 방문자를 맞아주는 일주문을 만나게 되었는데 그 옆에 서 있는 소나무가 어찌나 멋스럽게 생겼던지 보고 가려고 내린 김에 모델로 삼아 일주문 찰칵~~~

 


 

용추계곡을 향해 가는 길에 주변의 수려한 경치를 돌아보자 싶어  넓은 주차장이 있어서 잠시 주차를 했는데 커다란 물레방아가 보여 다가갔더랬지요.

함양의 고즈넉한 분위기에 취해 있던 터라 이곳 역시 어떤 의미로 다가올 것 같은 기대감이 낯선 곳을 둘러보도록 하는 것 같았답니다.

 


 

다른 곳은 이미 배롱나무의 꽃이 져서 씨방을 맺어내고 있었는데 여전히 여름의 모습을 가진 채 보는 시선을 잡아끌고 있더군요.

 


 

함양군 안의면 용추계곡로 361(지번. 상원리 524-2)에 위치한 이곳은 2004에 조성한 것으로 당대의 문필가이자 농경문화 변혁의 선구자였던 연암 박지원 선생의 사상과 업적을 재조명하기 위해 조성된 연암 물레방아 공원이었답니다.

 


 

물레방아란 물의 힘으로 바퀴를 돌려 곡식을 찧는 방아로서 큰 나무 바퀴와 굴대에 공이를 장치하여, 쏟아지는 물이 나무 바퀴를 돌리면 굴대에 꿴 넓적한 나무가 방아채의 한 끝을 눌러 번쩍 들어 올렸다가 떨어뜨리면 그 끝의 공이가 확 속의 곡식을 찧도록 되어 있답니다.

 

농경사회에 있어서 획기적인 농기구였을 물레방아를 도입 시험한 사람이 연암 박지원 선생이며, 함양 안의 마을에 그것이 최초로 세워졌다는군요.

 


 

배청의식이 강하게 작용하던 시기에 홍대용, 박제가 등과 함께 북학론을 전개하였으며, 중상주의를 주장하기도 한 박지원(朴趾源)은 1737년 (영조 13)에 한양에서 태어나 한성부 판관, 면천군수, 양양부사 등을 역임하면서 우리가 잘 아는 열하일기, 허생전을 비롯한 많은 작품을 남긴 조선 후기의 실학자이자 소설가로도 알려져 있지요.

 


 

정조가 즉위한 후 여러 번이나 학문과 문장력을 존중받아서 추천을 받았지만 매번 고사하다가 나이 마흔에 왕의 특명으로 관직에 나아가게 된 박지원이 안의 현감(현, 함양군 안의면)을 지내게 되면서 부임하기 전 1780년 사신의 일행으로 청나라를 다녀오면서 목격했던 여러 과학기술을 안의 현감 시절에 시험하게 되는데 물레방아를 설치한 것도 그 일환이었답니다.

 


 

♪ 빙글빙글 돌아가는 물레방아 소리에 풍년이 오네 

함양 산천 물레방아는 물을 안고 돌고

우리 집 서방님은 나를 안고 돈다

빙글빙글 돌아가는 물레방아 소리에 풍년이 오네

지리산 천왕봉은 백두대간 시작일세

오도재에 올라보니 지리반야 좋기도 하네

빙글빙글 돌아가는 물레방아 소리에 풍년이 오네

위천 남계 맑은 물에 피리 망태 헤엄치니

우리 할매 나를 업고 상림 숲을 돌고 돈다

빙글빙글 돌아가는 물레방아 소리에 풍년이 오네 ♪

풍년을 기원하면서 부르는 함양 아리랑에도 등장하는 물레방아.

물레방아를 주제로 한 물레방아공원, 물레방아 떡마을, 물레방아골 축제 등 함양은 이 물레방아와 깊은 연관이 있음을 곳곳에 드러내고 있더군요.

 


 

'우리나라 최초의 물레방아는 연암 박지원 선생께서 안의 현감으로 재직 시(1792-1796) 열하일기를 토대로 현재의 안의면 안심마을에 설치하였으며, 함양군에서는 이를 기념하고자 인근 유동마을인 이 곳에 연암 물레방아 공원을 설치하였다.

본 물레방아 축은 연암 물레방아 공원에 설치되었던 축으로써, 2004년 8월부터 2019년 10월까지 사용되다가 2019년 11월 연암 물레방아 교체로 인해 기존에 사용되었던 물레방아 축을 보존하고자 2020년 10월에 이곳에 설치하였다.'

라고 연암 물레방아 축 보존 이력에 대한 안내문을 옮겨봅니다.

 


 

"이보슈~ 이보슈~~

우리 연암 물레방앗간에서 쌀도 빻고 곡식도 빻아 가슈~~~

순식간에 빻아드리리다~~~''

마치 그렇게 얘기를 하는 것처럼 보이는 물레방앗간 주인의 모습이 해학적이네요.

 


 

일반적으로 방앗간이라고 하면 곡식을 빻는 곳으로 알고 있고 정의가 되지요. 

전통 방앗간은 연자매, 디딜방아, 물레방아, 통방아 등이 설치된 곳에 건물을 지어 도구와 곡물을 보호하고 작업 능률을 높이기 위해 만든 곳으로서, 디딜방아는 사람의 힘을,  연자매는 가축의 힘 그리고, 통방아와 물레방아는 물의 힘으로 각각 다루게 되어 있으므로 그 기능에 따라 방앗간도 달리 짓는데 연암 물레방앗간은 어떤 모습일지 안으로 들어가 보죠.

 


 

사람의 발로 밟은 힘으로 곡식을 빻았던 디딜방아가 방앗간 안쪽에 자리하고 있더군요. 어릴 때 큰고모님 댁 바로 앞에 방앗간이 있어서 간혹 갔었는데 그때 봤었던 기억 속의 디딜방아랑 비슷한 것 같기도 하고~~~ 

집 안에는 연자매와 디딜방아가 사용되었을 당시의 방앗간도 수확의 기쁨을 누릴 날들이 다가오는 이맘때도 요즘처럼 바빴겠죠?

 


 

디딜방아 앞에 놓여있는 맷돌을 보면서 생전 할머니의 삶은 콩을 가는 모습이 겹쳐져 한참을 들여다보았답니다. 요즘 사용하는 믹서기의 원조격이지요.

우리나라 맷돌의 기원은 신석기 시대가 시작된 이후 석기인들이 만들었다고 추정되지만 시간에 따라 넓고 둥글넓적한 돌 2개를 아래 위로 겹치고는 위짝의 구명에 곡식을 집어넣고 아래짝에는 곡물이 잘 갈리도록 홈이나 구멍을 파 아래짝은 숫맷돌, 윗짝은 암맷돌이라고 불렀다고 하네요.

맷돌은 사용하지 않을 때 위짝과 아래짝을 바꾸어서 보관하는데, 맷돌이 곡물을 가는 것이기 때문에 원래대로 놓으면 그 집안의 곡물을 다 갈아서 가난하게 살게 될 것이라고 여기기 때문이라고 한다네요. 또 그렇게 보관하여야만 맷돌 손잡이인 어처구니 등이 부러질 염려도 적었대요.

맷돌의 손잡이를 '어처구니'라고 하는데 왜 그 이름이 붙여졌는지는 알 길이 없지만 손잡이가 없어서 맷돌을 돌리지 못할 때 '어처구니가 없다'라는 말을 사용하며 그 말이 우리 생활 속에서 맷돌과  상관없이 사용되곤 하죠.

 


 

자연스럽게 접할 수 있도록 개방된 방앗간에는 절구도 보이고 키도 보이고,...

옛날 농경사회 단면을 들여다보는 것 같아 어린이들을 데리고 함양을 찾은 가족들은 이곳에 들러서 어른들의 추억담과 함께 세대를 아우르면서 도란도란 얘기꽃을 피우면 좋겠다 싶더군요.

 


 

방앗간을 나와 뒤쪽으로 돌아가는 길이 있어서 따라가 봅니다.

커다란 물레방아의 모습도 바로 눈앞에서 볼 수 있게 데크가 만들어져 있어서 관찰학습에도 도움 되겠더라고요.

 


 

무려 지름 10.1m, 폭 1.9m의 거대한 물레방아를 돌아가게 하는 물은 용추계곡을 타고 내려오기 때문에 멈추지 않고 제 기능을 다했을 듯싶네요. 

평화롭고 넉넉한 고향의 정취를 느끼게 해 주는 물레방아는 당시 박지원 선생이 구현하려고 했던 이용후생, 경세제민, 실사구시로 요약할 수 있는 현실 개혁적 실학사상을 내포하고 있어서 더 의미가 깊었던 것 같이 여겨지더군요.

 


 

사암정(思巖亭)이라는 현판을 단 정자를 만나게 되었는데, 연암을 생각하는 정자라는 의미라는군요. 이 정자에서 물레방아 돌아가는 모습을 바라보고 있자니 당대의 문필가요 농경문화 변혁의 선구자였던 선생의 사상과 업적을 재조명하고 오늘날 농촌의 어려움을 타개하기 위해 많은 노력을 했을 연암 박지원 선생이 절로 떠오르더군요.

 


 

물레방아 공원을 돌아보고 차를 타려고 주차장으로 건너오다가 봤던...

돌조각에 페인팅 한 모습이 마치,

"앗, 헉,... 

저게 도대체 뭐란 말입니까?'

라고 놀라는 모습입니다. 왜 저런 그림으로 표현했을까 싶었다가 '돌모리'라는 돌무더기를 보고서야 고개가 끄덕여지더군요. 억지스러울지 몰라도 저는 그리 느껴졌답니다.

 


 

'임진왜란이 지나고 정유재란 시 왜병을 물리치기 위해 이 고장은 물론 인근의 아낙네들까지 힘을 합해 황석산성을 쌓을 돌을 아낙네들이 앞치마로 싸서 나르는 것을 보고 마귀할멈도 합세를 하여 돌을 나르다 이곳에서 잠시 휴식하고 있을 때 황석산성이 함락되었다는 비보를 접하게 되자 너 나 없이 그 자리에다 돌을 놓고는 땅을 치며 통곡하였다 한다.

아녀자들과 마귀할멈이 흘린 눈물이 돌에 스며들어 돌과 돌이 붙어 지금과 같은 아주 큰 바위가 되었다고 전해오는 돌무더기다. 이때 돌무더기의 넓이가 수백 평에 이르고 높이 또한 수십 미터가 되었으나 도로 확장 등으로 훼손되어 현재에 이르고 있다.'

라고 '돌모리'에 대한 안내뭉의 설명을 옮기면서 돌을 바라봐서 그런지 감정이입이 되어 마음이 내려앉더군요.

돌모리는 함양군 안의면 하원리 1367-1번지에 있답니다.

 


 

경남 함양군 안의면 용추계곡로 361(지번. 상원리 524-2)에 있는 연암 물레방아 공원을 돌아보고 나니 역사를 들여다보며 추억을 떠올리게 하는 향수에 잠기게 하는 것 같았답니다.

깨끗한 공기, 멋진 산과 맑은 물 그리고 역사의 고장, 선비의 고장 함양에서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마음을 정화할 수 있답니다. 

산삼 축제로도 유명한 함양으로 여러분들의 시선을, 걸음을 옮겨보시겠어요?

감사합니다.


 

연암 물레방아 공원에서 박지원 선생을 기리며 향수에도 잠겨봅니다. 저작물은 공공누리 출처표시+변경금지 조건에 따라 이용할 수 있습니다.

연암 물레방아 공원에서 박지원 선생을 기리며 향수에도 잠겨봅니다. 저작물은 공공누리 “출처표시+변경금지” 조건에 따라 이용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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