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요인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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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함양군

    최치원

    역사인물

    • 위치
    • 최치원 기념관 : 경남 함양군 함양읍 교산리 1047-1
    • 문의처
    • 055-960-5532
  • 주요내용

    최치원은 신라 말 육두품 출신의 학자이다. 그리고 868년 어린 12세의 나이로 당나라에 유학한 조기 유학생이기도 하였다. 당나라 내에서 최치원의 능력은 이미 많이 알려져 있다. 874년 빈공과에 합격하였고, 879년 황소의 난 때 ‘토황소격문’을 지어 이름을 알렸기 때문이다. 귀국 후에는 신라 골품제 사회를 개혁하기 위해 애썼다.

    894년 진성여왕에게 올린 시무책 10여 조는 신라 정부의 개혁을 위한 노력을 엿볼 수 있다. 하지만 이러한 최치원의 의도는 신라 골품체제에 안주하였던 지배세력의 기득권 유지로 인하여 성공을 거둘 수 없었다.


    그 때문에 최치원 주로 지방에서 관직 생활을 하였고, 끝내는 가야산의 산신이 되었다고 전해진다. 최치원의 죽음에 대하여 알 수 없다. 따라서 그에 대한 많은 이야기가 전해올 뿐이다. 최치원의 애민(愛民)과 위민(爲民)을 보여주는 일은 함양태수로 있는 동안 상림을 만든 것이었다.최치원은 1,100여년 전 신라진성여왕때 함양태수로 부임하였다. 부임 당시 많은 선정을 베풀어 백성들에게 존경을 받았다. 당시 위천은 함양읍의 중앙을 흐르고 있었으며, 매년 홍수 피해를 불러와 피해가 극심하였다.

    이에 최치원은 백성들을 동원하여 둑을 쌓았고, 강물의 흐름을 지금의 위치로 돌리고 그 둑을 따라 나무를 심어 숲을 만들었다. 이 숲이 지금의 상림이다. 함양군은 최치원선생의 애민정신을 기념하기 위하여  상림공원 안에 최치원 기념관을 짓고 그 숭고한 뜻을 후대에 알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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