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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나는 엄마를 닮고 엄마는 나를 닮았다.

지난해 창원시 용호동 가로수길에 그림 작업실이 문을 열었다. 이름은 ‘안타티코-귀니작업실’, 일러스트레이터 귀니(본명 정채린)작가의 작업실이다.
몇해전 마산어시장 근처의 부림공예창작촌 ‘정휘공예연구소’에 있던 귀니의 작품을 본적이 있었다. 경남에서는 흔하지 않은 수채화 일러스트 작품이라 호기심을 불렀다. 공예연구소의 김정희 작가는 그때 귀니가 작가의 딸이라고 했다.
그리고 얼마전 가로수길 근처로 ‘정휘공예연구소’가 이사를 왔다.

 

‘나의 것’을 시작하다.

김정희 작가(이하 김 작가)는 15년 전까지 평범한 직장생활을 했다. 의상학과를 졸업하고 한솔교육에 다니며 회사에서 신임을 얻었다. 사회교육센터에 다니던 중 공예의 즐거움과 만남의 즐거움을 깨달아 가다 문득 ‘나의 것’이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인터뷰]201711나는 엄마를 닮고 엄마는 나를 닮았다 (1)김정희 작가와 정채린 작가

“리폼공예로 시작했어요. 청바지 같은 의류에 저만의 그림을 그렸죠. 인기가 많아서 방송국 촬영도 했어요.”
다니던 회사를 그만둘 때 김 작가는 포트폴리오를 회사에 내밀었다. 회사는 사직서를 제출한 김 작가를 반년이 넘도록 설득했지만 결심이 확고했다. 창원시 지원사업을 시작으로 본격적으로 ‘나의 것’을 만들어 가기 시작했다. 현재 기업과 백화점, 학교 강사로 나서고 찾는 사람이 많을 만큼 자리 잡아 다방면에서 인정받고 있다.

귀니 정채린 작가(이하 정 작가)는 수채화 작가이다. 대학에서 디자인을 전공하고 서울에서 수년간 디자이너로 직장을 다녔다. 업무에 대한 책임감은 어느 순간 부담으로 다가오기 시작했고 직장에 대한 만족도가 떨어졌다. 우연히 시작하게 된 낙서를 SNS에 하나씩 올리면서 김 작가와 마찬가지로 ‘나의 것’을 만들기 위해 프리랜서를 선언했다.

정작가의 작업실은 돌아온 창원집의 방 책상 위 였다. 블로그를 열고 카페를 다니면서 원데이클래스를 열었다. 시기적으로도 잘 맞았다. 자기개발의 중요성이 대두되며 직접 검색을 하고 찾아오는 사람이 생겨나기 시작했고 지금은 수강생 수도 꽤 된다.
“이렇게 먹고 사는 것도 괜찮고, 무엇보다 하고 싶은 일이라 좋았어요.”
수강생이 늘어나기 시작하니 작업실이 있어야 한다는 생각이 들어 가로수길에 자리를 잡았다. 문을 연지 1년이 조금 넘었다.

디자인 전공 선택에 엄마인 김 작가의 역할이 컸다. 엄마의 보조강사 역할을 하던 어느날 “엄마 나도 할래. 나도 하고 싶어.”라고 했을 때 김 작가는 반대를 했다. 현재 정작가의 오빠가 미술대학 대학원에 대학중이다. 엄마는 오빠의 미술대학 입시 때는 흔쾌히 승낙을 했다. 여기에 정 작가는 “오빠는 하게 하면서 나는 왜 못하게 하는데”라고 말했다고 한다. 그 말을 들은 김작가는 승낙하기로 결정한다.

“그 말을 듣는데 딱 맞는 말이다 싶은 거예요. 사실 너무 하고 싶어 하니까 제가 더 반대를 할 수도 없었어요. 그래 맞다. 너 하고 싶은대로 해라.”고 했어요.

 

“그건 저의 작전이였죠”

김 작가는 오랜 경험의 노하우를, 정 작가는 신선한 아이디어를 서로 공유하고 있다.

“딸애에게 저도 많이 배우고 있어요. 용호동으로 작업실을 옮기게 된 영향도 딸아이가 커요. 이곳 주변에는 작업실도 많고 젊은 친구들도 많다고 하더라구요. 또 SNS를 활용하려고 노력하고 있어요. 홍보나 그런면이 예전이랑 방식이 많이 다르더라구요. 저도 젊어져야겠다고 생각하고 있어요.”
[인터뷰]201711나는 엄마를 닮고 엄마는 나를 닮았다 (2)작품을 들어 보이는 두 모녀가 닮았다.

다투는 때도 있었다. 엄마의 요청에 억지로 하기도 했었지만 지금은 괜찮다고 정 작가는 말했다. “본격적으로 엄마를 따라다니며 보고 배웠죠. 그게 알게 모르게 도움이 많이 되었어요.” 청소년기를 엄마와 보내면서 도망치고 싶었던 순간이 있었냐는 질문에 “딱히 없었어요.”라고 말하면서 엄마 덕에 경험하고 배운게 많으니 엄마를 따른다고 말했다.

정채린 작가는 김작가의 딸이자 제자이다.
“창작 활동이 결코 쉬운 일은 아니지만 제 나이쯤 되면 충분히 즐기면서 할 수 있는 일이라고 생각해요. 제 딸아이도 그랬으면 해요.” 딸 이라며 쉽게 가르쳐 주는 건 성에 차지 않았다며 스타르타 식으로 밤 12시 까지도 정 작가를 가르쳤다. 정 작가를 자격증 따게 한 것도 딸애의 미래를 생각한 작전 이였다고 한다.

김정희 작가는 ‘포항에 갔을 때’를 가장 기억에 남는 일이라 했다. 포항의 한 백화점 행사 의뢰가 들어왔고 대게를 먹을 수 있다는 말에 정채린 작가는 동행을 결심했다. 출발 전 다투어 둘 사이가 서먹했지만 행사 후 대게를 먹고 신나게 놀며 회포를 풀었다고 말하며 그때의 기억을 떠올리며 웃어보였다.

 

나는 엄마를 닮고 엄마는 나를 닮았다.

두 모녀의 열정에는 가족들의 지지가 있다. 진로 문제로 고민을 하고 있을 때 정 작가의 오빠는 편의점 앞에서 맥주를 마시며 같이 고민을 해주었다. 작업실을 결정할 때에는 아빠의 적극적인 지원이 있었다. 이 가족은 무엇인가를 결정할 때 의견을 나누고 서로를 지지해준다.
[인터뷰]201711나는 엄마를 닮고 엄마는 나를 닮았다 (3)김정희 작가의 섬유공예 작품과 정채린 작가의 일러스트 도자페인팅 작품이 전시되고 있다.

정 작가는 엄마와 같은 분야에 있어 서로 도울 수 있어 좋다고 한다. 집이나 밖에서나 같이 의논 할 수 있다는 게 최고의 장점인 것 같다며, 그렇지만 가끔은 쉬고 싶은데 그게 너무 없어서 그럴 땐 조금 그렇다고 말하며 멋쩍은 웃음을 보였다.

김 작가는 “신랑에게 가장 고마워요. 큰 행사가 있을 때 항상 신랑이 먼저 생각나요. 그럴 때마다 문자로 ‘고마워’라고 말해요. 우리 아저씨에게 고맙단 말을 꼭 하고 싶어요.”라고 말하며 웃었다.

두 사람은 새롭고 더 큰 꿈을 꾸고 있다. 김 작가는 새로 옮긴 작업실을 복합문화공간으로 꾸미고 있다. 그녀만의 색깔을 내고 싶다면서 작품을 감상하고 커피를 마시며 누구나 여유롭게 즐기며 일상에 도움이 되는 공간을 만들고 싶다고 했다. 정 작가도 배움을 계속하고 있다. 지역민이 쉽게 접할 수 없는 새로운 분야에 도전해 자신의 전공분야인 일러스트와 접목시키기 위해 바쁘게 움직이고 있다.

 

김정희 작가와 정채린 작가는 대화의 시간을 많이 가진다.
섬유공예와 일러스트, 그리고 그들이 가진 장점들이 조화를 이뤄내며 시너지 효과를 내기 시작한다.
서로 이야기를 귀담아 들어주고 지지해주는 것, 그것이 진정한 가족의 의미가 아닐까.
두 모녀의 미소는 참 많이 닮아 있다.

청렴한경남-부패척결과 고강도 청렴대책으로 당당한 경남시대를 열겠습니다

나는 엄마를 닮고 엄마는 나를 닮았다. 저작물은 자유이용을 불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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