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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주 : 이 글은 지난 3월 경남다문화가족지원센터가 국제로타리3720지구의 후원을 받아 다문화 인식개선을 위해 진행한 글짓기 공모전에서 창원대학교다문화진흥원장상을 받은 글입니다. 이 글은 ‘경남이야기’에 첫 공개되는 것으로 다문화사회에 대한 올바른 인식이 확산했으면 하는 바람으로 관계자들의 양해를 얻어 싣습니다.……………………………………………………………………………………“민준아!”까무잡잡한 얼굴의 소년. 그의 큰 눈이 나를 쳐다본다.“같이 가자.”나는 손을 내밀었다. 그는 주춤하더니 수줍은 듯한 표정으로 손을 맞잡았다. 그 아이의 손은 대현이의 손보다 조금 작고 조금 거칠었다. 그랬다.아침에 학교를 등교하는 중에는 소음이 멀리서부터 들려왔다. 층층이 쌓아질 건물은 아직 준비단계였다. 그 아이를 만난 건 그곳에서였다. 평소처럼 길을 지나가다 어떤 건물이 생겨날지 궁금해 그저 옆을 슥 하고 쳐다봤는데 내 또래의 남자아이가 방금 콘크리트 바닥에서 집어든 지저분한 가방을 메고 뒤로 벽에 가려 보이지 않는 사람에게 손짓으로 인사를 하고 있었다.그의 지저분한 그 가방보다 내 눈에 들어온 것은 그의 새까만 손이었다. 아니, 그는 뒤통수도 까맣게 물들어 있었고 얼굴도 그랬다. 새까맣게 탄 게 아니라 원래 그렇다는 것을 깨닫는 데는 얼마 걸리지 않았다.곧 고개를 돌린 그의 눈에는 알 수 없는 세계가 담겨 있었기 때문이다. 그도 내 얼굴을 봤다. 분명히 보았는데, 그때. 그는 내 옆을 지나쳐 그저 쌩하고 달려나갔다. 나도 어서 빨리 학교로 뛰어갔다. 첫날부터 지각을 할 수는 없었으니까. 큰 운동장을 가로지르고 반으로 들어와서 자리에 앉았다. 뒤에서 누군가가 날 쳤다. 대현이었다. 작년에 이어서 우리는 같은 반이 되었다.새 학기가 되어 시끌벅적한 분위기에서 5학년 2반을 이끌어 나갈 담임선생님이 들어오셨다. 누굴까, 누굴까. 아아, 어디선가 한숨이 들려왔다. 내 입에서 나온 걸지도 모르겠다. 그는 무섭고 악랄하기로 소문난 선생님이었다. 아이들을 잘 혼내고 욕하는 걸 들었다는 아이도 있다는 소문이 있는 무서운 분이었다.올해는 조용히 지내야지. 선생님께서는 교탁을 세 번이나 치시고는 조용히 하라고 이상한 사투리 억양으로 말씀하셨다. 그러고는 문밖으로 시선을 돌리시더니 “들어온나” 하셨다. 잠시 머뭇거리는 듯한 정적 속에서 그 아이가 문턱을 넘어서 반으로 들어왔다. 아이들의 수군거림이 담임선생님이 정해진 그때보다 더 커졌다.“어이 꺼멍. 아이, 말은 알아듣나 모르겠네. 저어기 들어가라 저기. 전학생이고, 알아서 잘 해줘라.”백발의 늙은 선생님이 손끝으로 빈자리를 가리키며 말씀하셨다. 내 자리의 옆 분단이었다. 나는 그보다 계속 그의 목소리가 울려왔다. ‘꺼멍’. 종이 머리에서 뎅뎅 울리듯 세 번이나 계속해서. ‘꺼멍’. 예전 반에도, 까만 아이는 있었지만 그 아이를 한 번도 ‘꺼멍’이라 불러 본 적은 없는데.아니다, 한 번 어떤 아이가 “깜둥아!” 라고 했다가 크게 싸운 뒤로는 한 번도 그런 적이 없다. 지금 저 앞에 서 있는 아이는 정말 말을 못 알아듣는 것인지 선생님을 한번 쳐다보니 손짓하는 곳을 와서 앉았다. 이 아이는 그리 새까맣지도 않은데. 햇볕에서 매일 축구하는 대현이와 비슷한데. 아니 조금 더 까만가. 아마 이 아이도 그래서 까만 걸 거야.하지만, 그의 눈을 보면 그가 외국인이라는 것은 단박에 알 수 있었다. 크고 끝이 약간 쳐진 쌍꺼풀이 진한 눈. 약간 소처럼 슬픈 눈을 하고 있다. 그 아이는 자리에 앉아 가방을 내려놓는다. 선생님이 무어라 조례를 하시고는 나가셨다. 하지만, 나는 들리지 않았다. 빨리 저 아이에게 말을 걸고 싶었다.“저기, 있잖아.”내가 말을 걸려고 하자 대현이가 어깨를 툭 쳤다. 왜 그러냐는 식으로 돌아보자 “외국인이잖아.” 이런다. “외국인이면 어때?” 이러고는 다시 시도한다. 이제는 제대로 그 애의 책상 옆으로 서서 말을 걸었다.“안녕?”손바닥을 펼쳐 흔들자 그는 어눌하게 조용하게 뭐라 말하며 눈을 내리깔았다. 잘은 모르지만 그도 안녕이라 한 것 같았다. 다른 아이들은 전부 한걸음 떨어져서 내가 어찌하나 지켜보고 있었다. 그래도 소음은 여전했다. 아침에 이 아이를 처음 본 그곳과는 조금 다른 그런 소리.“한국말 할 줄 알아?”그는 고개를 젓는다. 그래도 저 말은 알아듣는구나. 난 혁이야, 하려고 하는데 종이 쳐서 자리에 앉았다. 1교시는 국어였다. 새 교과서를 꺼내는데 그 아이는 멀뚱거리며 책을 꺼내지 않고 있었다. 아아, 책이 없구나. 그런데 그것은 생각보다 큰 문제였다. 아니, 내 생각엔 큰 문제는 아니었으나 우리 선생님껜 큰 문제인 것 같았다.그는 연신 꺼멍이라며 그 아이를 불러댔고 교탁 앞으로 불러내어선 책이 왜 없냐며 그의 가늘고 얍실한 손끝으로 그 아이의 이마를 툭툭 쳐댔다. 말로만 들었지 정말 이해가 불가능한 행동이었다. 그런데 그가 “꺼먼 것들은 이래서 안 돼요, 니네 나라로 돌아가지 그르냐?”라고 말했다. 나는 대현이를 쳐다봤다. 대현이가 목구멍으로 침을 넘겼다. 나와 눈이 마주친 그의 표정에서 그가 나와 같은 당혹함을 느꼈음을 알 수 있었다.그 분위기는 온 반을 휩쓸었지만 반대로 반 아이들 모두가 침묵했다. 나는 그 순간 그 외국인 아이가 우리말을 할 줄 모른다는 것이 정말 다행이라 생각했다. 그 아이의 눈동자는 흔들림이 없었다. 슬픈 눈매도 여전했고 이상한 세상을 닮아있는 눈도 그대로였다. 그래서 괜히 난 더 마음이 아팠다. 다음 날도, 그 다음 날도 수업 중 한번은 그렇게 불려나갔다.5학년이 된 지, 그 아이를 만난 지 정확히 3일째 되던 수요일, 점심 시간에 친구들과 운동장에서 축구를 하고 있었는데 그 아이가 돌계단 위에 앉아 그저 우리를 쳐다보고만 있었다. 그 아이를 쳐다보며 한눈을 팔다 공을 맞았다. 그 핑계로 난 그 아이와 이야기를 해 보기로 했다.그 아이는 내가 다가가자 자리에서 일어나서 다른 곳으로 가려 했다. 그래서 나도 모르게 마른 그의 손목을 잡고 “잠깐!” 하고 소리쳤다. 그가 놀란 눈을 하고 나를 뒤돌아봤다. 안심시키기 위한 미소를 지어 보였지만 그는 여전히 당황해 하는듯했다.나는 다시 자리로 그 아이를 끌고 와 이야기를 시도했다. 혹시나 했지만 역시나 대화는 쉽지 않았다. 하지만, 겨우겨우 대화를 하면서 얻어낸 것은 그 아이는 방글라데시에서 왔고, 이름은 라만이었다. 그리고 만들어진 것인지 원래 성격인지는 몰라도 수줍고 내성적이어 보였다.그리고 나는 저번에 그가 인사를 한 공사장의 어떤 사람이 아버지라는 것을 직감할 수 있었다. 잘은 모르지만 이전에 들은 적 있는 것 같다. 돈을 벌기 위하여 외국에서 한국으로 많이들 온다고. 하지만, 굉장히 열악한 대우와 환경에서 일한다고 들었다. 말로만 들었었는데 이렇게 마주하게 되니 느낌이 색달랐다.나는 외국인이라면 무섭고 다른 말을 하여 한국에 사는 것은 어색한 일이라고 생각했다. 상상을 할 수 없었는데 신기하게도 나는 라만을 돕고 싶었고 친해지고 싶었다. 그는 조금 까맣지만 대현이보다 조금, 아주 조금 더 까만 편일 뿐이었다. 하지만, 담임선생님께선 -정확하진 않지만 아마도- 그의 피부색을 가지고 놀리고 그를 다른 사람 취급한다.나는 이 아이를 도와야겠다고, 그렇게 마음먹었다. 점심 시간 종이 쳐서 우리는 반으로 돌아가게 되었다. 함께 들어오는 우리를 보고 친구들은 신기한 표정으로 쳐다보았다. 하지만, 딱히 아무런 말을 하지도 않았다. 그리고 시간이 흘러 금요일 5교시를 마치고 친구들이 다 같이 축구를 하자는 소리에 가방을 내려두고 축구를 하러 뛰어가는데, 그 아이가 이제 막 운동장을 들어서고 있었다. 내가 아이들에게 소리쳤다.“얘도 같이 축구하자!”아이들의 반응은 미지근했지만 나는 상관 않고 그 아이의 손목을 잡고 축구공을 가리키며 축구하자고 말했다. 그 아이는 아이들을 쳐다보고 학교에 달린 큰 시계를 쳐다보더니 아주 미세하고 조심스럽게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씨익 웃으며 그를 아이들에게로 끌고 갔다.라만은 축구를 잘했다. 달리기도 빠르고 패스도 잘했다. 처음에는 쑥스러워하듯이 공을 잘 잡지 못했는데 시간이 지나며 공을 잡고 신나게 놀았다. 우린 같이 뛰었다. 모두 땀에 젖어 꽃샘추위에 젖은 바람이 불어오는지도 모르고 숨을 가삐 쉬었다. 라만도 숨을 골랐다. 아이들은 그제야 생각난 듯 내게 그 아이의 이름이 뭐냐고 물었다.“라-만.”“라만, 라만은 너무 어려워! 넌 이제부터, 음…. 그래, 민준이야! 알겠지?”한 친구의 제안으로 손짓발짓을 해가며 라만에게 설명하려 했는데 쉽지 않았다. 그 아이가 겨우 민준이라고 발음하자 우리는 민준이라고 부르며 그의 이름을 재조명해줬다. 그러면서 우리는 운동장을 벗어났고 나는 5일 만에 그 아이의 미소짓는 표정을 보았다.아이들과는 다 헤어지고 나는 민준이와 가는 길이 같아 함께 가는데 이제 겨우 1층의 뼈대가 잡힌 공사장이 보였다. 처음 민준이를 본 그곳이었다. 소음은 들리지 않았다. 그런데 그를 꼭 닮은 키 작은 아저씨가 얼굴을 비췄다.그러자 민준이가 ‘압바’ 하며 달려갔다. 나는 단번에 민준이의 아버지라는 것을 알아차렸다. 나는 그에게 인사를 했고 그는 눈을 커다랗게 뜨며 민준이를 바라보았다. 그의 눈이 똑 닮았다. 그 아저씨는 민준이의 가방처럼 흙이 묻은 점퍼를 입고 있었고 밑단이 해진 바지와 얼굴에는 상처인 듯한 자국이 많았다.목덜미에 색이 빠진 수건을 걸고 머리맡엔 땀이 흥건한 걸로 보아 막 일을 마치신 것 같았다. 아니면 쉬는 시간일지도 몰랐다. 그 아저씨는 나를 알아보셨다. 민준이에게 내 이야기를 들은 듯했고 나와 이야기하길 원했다. 민준이보다 한국어를 훨씬 잘했다. 어눌하지만 알아들을 수 있었다.“나… 어려원너, 엄청…항겨…라만. 라만 성샌님…무섭대. 라만, 잘못 없어….”아저씨가 하는 말을 모두 알아들을 수 있던 나는 작은 내가 더 작아진 것 같았다. 나는 5학년 학생일 뿐이었다. 내가 해 줄 수 있는 건 없었다. 나는 민준이에게 축구하자는 말밖에 하지 못했다.거친 손으로 내 손을 잡는 아저씨의 마른 손이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도 잊히지 않았다. 아직 가시지 않은 겨울의 바람인지 겨울을 이기려는 봄의 바람인지 시린 바람이 내 옆구리를, 머릿속을, 심장을 차례대로 쿡쿡 찔러댔다. 잘못된 걸 알지만 난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하지만, 그 아저씨와 라만을 도와주고 싶었다. 집에 돌아와 엄마 얼굴을 보는 순간 한숨이 푹 나왔다. 기운 없는 얼굴에 엄마는 내게 계속 왜 그러냐며 물어오셨다. 나는 뭐부터 말을 해야 할지 몰라 고개를 숙이고만 있었다. 하지만, 엄마라면 라만, 민준이를 도와줄 수 있을 거라는 생각에 민준이라는 아이를 소개하고, 선생님의 참을 수 없는 행동과, 나는 그 아이를 돕고 싶다고 이야기했다. 엄마는 고개를 끄덕이시더니 이내 미소를 지으시곤 도와주겠다고 하셨다. 엄마는 곧바로 학교에 전화를 하셨다. 무슨 이야기를 하시는지는 알 수 없었다. 곧 전화를 끊으시곤 차 키를 집으셨다.“가자, 혁아. 라만, 아니 민준이 도와주러!”나는 엄마를 따라나섰다. 엄마는 학교 행정실에서 남은 교과서를 받으셨다. 나도 총 세 권을 같이 들었다. 감사하다고 인사도 했다. 민준이를 도와줄 수 있다는 생각에 아주 기뻤다. 엄마는 돌아오는 길에 민준이가 학교를 다니기 많이 힘들었을 거라고 했다. 다니는 것부터가 힘들었을 거라고.무슨 말인지 자세히 알 수는 없었지만 민준이가 많이 힘들었을 거란 걸 알았다. 기다리던 월요일 아침이 되었고, 나는 민준이에게 그 책들을 가져다 줄 수 있었다. 이제는 선생님이 혼내시지 않을 거야. 1교시가 되었다. 민준이는 사회책을 책상 위에 올렸다. 선생님이 들어오셨다.“뭐야, 꺼멍. 책 어디서 났어. 에잉… 알아듣지도 못할 거면서.”뒷말은 살짝 흐리며 선생님께서 말씀하셨다. 그러시더니 갑자기 입꼬리가 꿈틀거리는 게 보였다. 그러더니 라만의 이름을 부르며 책도 생겼는데 21페이지를 읽어보라고 하셨다. 민준이는 영문을 몰라 멀뚱히 앉아있는데 민준이에게 다가와서는 볼펜 끝으로 그의 머리를 툭툭 치며 “일어나라고 일어나. 일어나서 읽으라고 꺼멍아.” 하는 것이다.민준이는 금방 울 것 같은 표정으로 자리에 앉아만 있었다. 나는 더는 참을 수 없었다. 민준이는 조금 까맣지만, 이상한 세계를 눈에 담고 있지만 그렇다고 민준이가 이상한 사람은 아니기에, 내 친구이기에 나는 자리에서 일어날 수 있었다. 민준이는 대현이와 같은 내 친구였다. 민준이를 도와야했다.“선생님, 라만은 ‘꺼멍’이 아니에요. 이제는 민준이에요. 민준이를 혼내지 마세요.”선생님은 나를 돌아보셨고, 조용하던 아이들 속에서도 “맞아요!” 하는 말들이 나왔다. “민준이에게 뭐라고 하지 마세요. 꺼멍이라 놀리지 마세요. 민준이는 잘못한 게 없어요.” 선생님은 화난 표정으로 책상을 세 번 치시고는 “건방지게. 조용히 해.” 하셨지만 더는 뭐라고 말하지 않았다. 그날 이후 아이들은 자주 민준이에게 말을 걸었고 한국말을 가르쳐주기 시작했다. 인사부터 자기 이름도. 어느 날 민준이가 내게 물어왔다.“이…름.”이름을 가르쳐 달라는 말이었다. 나도 드디어 민준이에게 내 이름은 혁이라고 가르쳐 줄 수 있었다. 날씨가 점점 더 따뜻해지면서 우리는 더 자주 축구도 같이 했다. 어느 초여름 직전 따뜻한 햇볕이 더욱 다가오던 날 아침 공사장 옆을 지나가게 되었다. 이제는 벽 위로 구조물이 드러나 전보다는 훨씬 높고 건물의 태를 갖추어 보였다.라만, 민준이가 아저씨와 인사를 하는 모습이 보였고 5학년 첫 등교 하던 날처럼 여전히 흙 묻은 책가방을 멘 뒷모습이 보였다. 하지만, 다른 점은 이제 그 아이는 민준이고 나의 친구가 되었다는 점이었다.“민준아!”까무잡잡한 얼굴의 소년. 그의 큰 눈이 나를 쳐다본다.“같이 가자.”나는 손을 내밀었다. 그는 주춤하더니 수줍은 듯한 표정으로 손을 맞잡았다. 그 아이의 손은 대현이의 손보다 조금 작고 조금 거칠었다. 그랬다. 문득 그가 손을 뺐다. 놀라 쳐다보니 우물쭈물한 모습이 할 말이 있는 듯했다.“거…, 거마우어….”고맙긴. 친구 사이엔 당연한 일인걸. 넌 한국말을 조금 못하는, 피부가 조금 까만, 눈이 아름다운 내 친구야.“우리 달리기하자!”나는 “시-작!” 하며 먼저 달려갔다. 민준이가 내 이름을 부르며 뒤쫓아오는 소리가 들렸다. 웃음소리도 섞여 들려왔다.
14.04.21.작년 한 해 농촌으로 귀농한 이들이 수만 명이라는 보도가 있었다. 농사를 지으려고 농촌으로 향한 귀농인과 시골 풍광을 찾아 이촌 한 사람 간의 구별을 짓지 않아서이기도 하겠지만 어쨌든 참 많이도 귀농을 하고 있고 반가운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러나 굳이 먼저 귀농을 하여 쓴맛을 먼저 본 처지로서 굳이 한 말씀 보태자면 마냥 반길 수만은 없는 것이 농촌사정이다. 경남은 우리나라 선진농업의 산실이다. 이미 고도화된 농업기반은 그만큼 귀농농업이 성공할 가능성을 높여준다. 그러나 구슬이 서말이라도 꿰어야 보배라고 했다. 잘 준비하고 스스로 철저한 농사꾼이 되지 않으면 귀농은 매우 위험한 선택이 될 수밖에 없다. 우리 지역에도 귀농을 한 이들이 더러 있다. 하지만, 이들 중 무난히 정착에 성공했다고 여겨지는 사람들은 많지 않다. 이들이 애로를 느끼는 가장 대표적인 것이 경제적인 부분이다. 시골살이가 만만해 보이지만 한 몇억 갖고 와야 겨우 표가 난다. 주거는 대충 빈집을 수리하면 비용을 아낄 수가 있지만 전장을 마련해야 하고 농기구를 장만하기까지 손을 대기가 무서울 만치 큰 비용이 든다. 그렇게 투자를 했으면 당장 수확이 나와야 하는데 그렇지 못한 경우가 허다하다. 지자체마다 귀농인들을 우대하는 정책이 있어서 도움을 받을 수는 있지만 소를 물가에 데리고 가는 역할 이상은 아니다. 농업에서 나오는 소득은 빨라야 석 달이다. 작목에 따라 최하 3년 이상 기다릴 수도 있다. 다달이 월급이 나오거나 돈이 잘 도는 도회 생활의 때를 버리지 못하면 낭패하기 십상이다. 손에 쥔 돈도 곱씹듯 생각해서 써 버릇해야 시골생활을 시작할 수 있다. 돈을 산다는 말이 그냥 생긴 것이 아니다.작목선택도 중요하다. 시골살이는 낭만이 살아있는 꿈의 실현이 아니다. 머릿속에 그려오던 일이 있더라도 일단 정착하기로 한 지역에 특화된 작목을 선택하는 것이 현명하다. 내가 아는 한 후배는 나보다 몇 년 뒤에 귀농을 하였지만 올 소득이 나의 3배는 된다. 작목을 잘 선택했기 때문이다. 처음 만났을 때 후배는 키위재배에 꿈이 부풀 대로 부풀어 있었다. 나름대로 공부도 많이 되어 있었다. 하지만, 후배는 결국 이 고장 특산인 딸기재배를 시작했고 남보다 치밀하고 체계적인 농사를 지은 덕에 품질 좋은 딸기를 생산하여 귀농 이듬해부터 쏠쏠히 재미를 보고 있다. 특산물을 선택하는 것이 나은 이유는 우선 재배기술습득이 쉽다. 이웃의 도움을 받기도 좋다. 일을 도와주면서 눈으로 손으로 익히는 것도 고마운데 촌 인심이 한손 거들어 준 것은 품앗이로 돌려주기 마련이다. 지자체의 귀농프로그램 도움을 받기도 쉽다. 다음은 판매다. 특화되어 있다 보니 상인들이 몰려들고 잘 만들고 못 파는 경우는 없게 된다. 그것만 해도 어디랴.이 정도만 고려해도 일단 귀농의 터전은 마련할 수 있다. 그러나 그래도 이도 저도 모르겠다 싶으면 인터넷보고 고민하지 말고 지자체의 농업기술센터를 찾아가길 권하고 싶다. 주거부터 전장 마련, 작목 선택, 농기계 다루는 법, 인터넷 활용 판매기법에다 저이율로 자금까지 융통할 수 있다. 전국 어느 지자체나 농업기술센터는 있고 귀농담당부서도 있다. 내가 사는 하동은 산자수명하여 일부러 부르지 않아도 귀농인이 많은 곳 중 하나이다. 하지만, 농업기술센터에 가보면 귀농인이란 이름표를 달지 못한 것이 한이 될 정도로 잘해준다. 농업은 시대에 뒤떨어졌다는 인식들이 많다. 하지만, 먹지 않고 살 수 없는 게 인간이다. 농업의 미래를 논하기 전에 농업은 여전히 천하지대본인 것이다. 경남은 전국 어느 고장보다 농업경쟁력이 있다. 그것을 바탕으로 이미 성공한 귀농인도 많다. 이제 경남 농업은 활발히 해외로도 나아가고 있다. 안정적인 노후를 위한 선택 중 농촌은 분명 희망이다.
14.04.09.이제 따스한 봄기운과 향긋한 꽃내음이 대기와 대지에 완연한 시기이다. 화창한 봄을 맞아 겨우내 닫힌 창문을 열어젖히고 환기를 시키거나 야외활동을 계획하는 분들도 많을 텐데 이를 시샘이나 하듯 불청객 ‘황사(黃砂)’가 찾아오는 경우가 가끔 있다.황사는 아시아 대륙의 중국과 몽골의 사막지대, 황하 중류의 건조지대, 황토고원, 내몽골고원에 한기를 동반한 저기압이 통과할 때 강한 바람이나 지형에 의해 만들어진 난류로 말미암아 다량의 모래먼지가 상층으로 올라가 공중에 떠 있거나 이동하여 지표로 서서히 낙하하는 현상을 말한다. 보통 저기압의 활동이 왕성한 3~5월에 많이 발생하는데 황사는 상공의 강한 편서풍을 타고 우리나라로 넘어오며 때로는 일본, 태평양까지 날아가기도 한다. 그러나 최근에는 계절을 가리지 않고 가을과 겨울에도 가끔 발생하고 있다.황사 발원지는 연 강수량이 400mm 이하로 건조한 사막지역이라 모래먼지가 발생하기 좋은 조건이고, 발생한 모래먼지 중 약 50% 정도가 편서풍을 타고 한국, 일본 등으로 향하게 된다. 정부에서는 황사 피해를 막기 위해 황사발원지인 중국에 조림사업, 몽골 그린벨트 조성 등 범정부 차원에서 대응하고 있지만, 급속하게 진행되는 사막화로 황사 발생을 줄이기 쉽지 않은 게 현실이다. 특히, 최근에는 중국 공업지대의 카드뮴이나 납과 같은 중금속들이 황사에 많이 포함되어 건강에 더욱 좋지 않은 영향을 미칠 우려가 있다.원래 황사는 산성화된 토양을 중화시키고 적조를 억제하는 긍정적인 면도 있으나 최근에는 부정적인 면이 훨씬 더 많아졌다. 즉, 호흡기 질환과 안과 질환을 유발하여 건강을 해롭게 할 뿐만 아니라 식물의 기공을 막아 성장을 방해한다. 한편, 황사입자들은 전자제품의 불량률을 높이기도 하며 정밀무기 작동에도 영향을 끼친다. 때론 안 좋은 날씨 때문에 관광객 수도 줄게 되고 항공기 엔진에 이상을 일으켜 이착륙을 할 수 없게 만들기도 한다.황사 피해를 줄일 대응방법은 어떤 것들이 있는지 살펴보면, 먼저 농업이 주산업이고 비닐하우스 시설물이 많은 지역은 황사가 비닐에 침착, 비닐하우스 내 빛 통과를 방해하여 시설작물의 생육에 지장을 줄 수 있으므로 강한 황사가 지나간 후에는 비닐하우스 세척작업 등을 하여 시설농작물의 생육에 지장이 없도록 대처해야 한다. 축산업을 하는 농가에서는 가축의 호흡기 질환이 나타날 가능성이 있으므로 축사관리에도 만전을 기해야 한다. 한편, 교육당국에서는 발표되는 황사관련 기상정보에 관심을 기울여 황사특보 단계에 따라 휴교조치 등 적절한 대응으로 황사로부터 학생들의 건강을 보호하고, 가정에서도 노약자는 가급적 외출을 삼가고, 외출 시에는 마스크 착용, 보호안경, 긴소매 옷을 입고 외출 후 손발을 깨끗이 씻는 등 개인 위생관리에 만전을 기해야한다.따라서, 기상청에서 발표하는 황사 정보를 참고하면 황사피해를 줄이는데 크게 도움이 될 것이다. 즉, ‘황사주의보’는 황사로 인해 1시간 평균 미세먼지(PM10) 농도가 400㎍/㎥ 이상이 2시간 이상 지속할 것으로 예상될 때 발표하며, ‘황사경보’는 1시간 평균 미세먼지(PM10) 농도가 800㎍/㎥ 이상이 2시간 이상 지속할 것으로 예상될 때 발표된다. 황사, 피할 수 없다면 철저하게 대비하여 각종 피해를 예방하는 것은 최선이다. 앞으로 발표되는 황사정보에 유의하여 건강하고 피해 없이 봄을 맞으시길 기원해 본다.
14.03.18.여성의 날은 1910년 독일의 노동운동 지도자 클라라 제트킨(Clara Zetkin)이 1908년 3월 8일, 1만 5000여 명의 미국 여성 섬유노동자들이 리트거스 광장에 모여 10시간 노동제와 작업환경 개선, 참정권 등을 요구하며 시위를 벌인 것을 기념하기 위해 제정한 날이다.오는 3월 8일은 여성의 날이 106주년을 맞이한다. 우수한 여성인적자원을 최대한 활용하는 것이 기업과 국가경쟁력을 좌우하는 시대가 되었다. 우리나라의 여성정책도 여성인력활용을 통해 국가경쟁력을 높이기 위한 세계적인 흐름의 영향을 받아 여성의 사회참여 및 경제활동 참여를 높이기 위해 많은 변화가 있었다. 최근 정부는 2017년까지 전체 고용률을 70%로 끌어올리겠다고 하고, 여성 근로자의 경력유지 지원방안을 내놓았다.그러나 우리나라 여성 고용률은 53.5%로 주요 선진국들에 비해 10%포인트 이상 낮다. 기업들이 여성고용을 꺼리는 것이 가장 큰 요인이지만, 출산과 육아를 위해 여성 스스로 직장을 떠나야 하는 '경력단절'도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통계청은 지난달 27일 이같은 내용을 담은 ‘2013년 경력단절여성 통계’ 자료를 발표했다. 통계청 자료에 따르면 올해 기준 15~54세의 기혼여성은 971만 3000명이며 이 중 취업을 하고 있지 않은 여성은 절반에 가까운 406만 3000명으로 나타났다.미취업 여성 중 결혼, 임신 및 출산, 육아, 자녀교육(초등학생) 때문에 직장을 그만둔 경력단절여성은 195만 5000명으로 전체 기혼여성 중 20.1%를 차지했다.2013년도 통계청 조사에 따르면, 결혼과 임신, 출산으로 인한 경력단절여성은 195만 5000명으로 전체 기혼여성의 20.1%나 차지하고 있다. 여성취업자 5명 중 1명이 결혼 후 직장을 떠나 경력단절여성의 대열에 합류하는 셈이다. 경력단절여성을 16개 시도별로 살펴보면 경기도가 58만 2000명(29.8%)으로 가장 많았으며, 다음이 서울특별시 32만 1000명(16.4%)이고, 경상남도는 12만 6000명(6.4%) 세 번째 순이다.우리나라 여성 고용률은 53.5%로 주요 선진국들에 비해 10%포인트 이상 낮다. 기업들이 여성고용을 꺼리는 것이 가장 큰 요인이지만, 출산과 육아를 위해 여성 스스로 직장을 떠나야 하는 ‘경력단절’도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2013년 기준 25~29세 고용률은 남성 69.6%, 여성 68%였으나 30대에서는 남성 90.2%, 여성 56.7%로 누가 보아도 출산이나 어린 자녀의 뒷바라지를 위해 여성 근로자들이 어쩔 수 없이 직장을 그만두는 두게 되는 것을 짐작하게 하는 수치다.여성들이 일단 노동시장에서 이탈하면 재취업을 원하더라도 일과 가정의 양립 즉, 자녀양육과 병행할 수 있는 일자리를 찾기 힘든 게 우리 현실이다. 그나마 어렵게 일자리를 찾더라도 기다리는 일자리 역시 저임금에 고용이 불안한 비정규직에 몰려있는 상황이다.2013년도 통계청 조사에 따르면, 결혼과 임신, 출산으로 인한 경력단절여성은 195만 5000명으로 전체 기혼여성의 20.1%나 차지하고 있다. 여성취업자 5명 중 1명이 결혼 후 직장을 떠나 경력단절여성의 대열에 합류하는 셈이다. 대구의 경우 경력단절여성은 10만 명으로 전체 기혼여성의 21%에 달하며, 경북은 8만 7000명으로 전체 기혼여성의 18.5% 수준이다.따라서 여성이 직장생활을 계속하면서 육아를 비롯한 가정생활을 영위할 수 있는 정책지원 방안의 마련과 적용이 절실하다. 일과 가정을 양립하지 못해 여성의 사회진출이 좌절되는 것은 개인의 문제를 떠나 국가적으로도 큰 손해이기 때문이다.LG경제연구원의 보고서에 따르면 대졸여성이 결혼 및 육아 등을 이유로 직장경력이 단절되면서 나타나는 생애근로소득 손실이 1인당 평균 6억 3000만 원에 달하는 것이라고 한다.정부가 최근 내놓은 여성 근로자의 경력유지 지원방안은 여성에게만 짊어지게 했던 임신과 출산, 보육 문제를 나라와 사회가 같이 책임질 수 있도록 하여 여성이 맘 편하게 일할 수 있는 환경구축과 경쟁력 확보라는 점에서 의미 있는 일이 될 수 있다.그러나 이러한 지원정책이 성공하기 위해서는 여성의 경력단절을 막을 수 있는 고용 및 가족 여성친화 정책 추진 부서들 간의 유연함과 통합성이 필요하고, 여성이 일과 가정을 양립할 수 있는 사회․문화적 의식의 전환과 행동변화가 우선되어야 할 것이다.
14.03.07.인간은 말을 배우기 전부터 이미 엄마의 이야기를 들으며 세상과 만나기 시작한다.사람과 이야기는 뗄 수 없는 운명적 관계이며 심지어 사람들은 물건에도 이야기를 부여하며 또한 그 물건이 지닌 이야기에도 흥미를 보인다. 스토리텔링이 원활하게 진행된다면 서로의 공감도는 높아지고 듣는 사람의 기분도 좋아지며 무엇보다도 전달하는 바의 메시지와 감성을 상대방에게 효과적으로 전달할 수 있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을 받고 있다.미래학자인 롤프 예센은 “정보화 시대가 지나면 소비자에게 꿈과 감성을 제공하는 것이 차별화의 핵심이 되는 드림 소사이어티(Dream Society)가 도래할 것”이라고 말했다. 즉, 미래에는 이야기와 꿈이 부가가치를 만들며 이를 통해 새로운 시장이 형성된다는 것이다. 이를 증명이라도 하듯, 매력적인 스토리텔링은 이미 엄청난 경제적 부가가치를 창출하고 있다. 마법사 이야기인 ‘해리포터’의 총매출액이 우리나라 반도체 전체 수출액을 웃돌고 있다거나, 디즈니사는 뮬란, 인어공주 등 고대 아시아와 유럽의 신화와 문학작품을 애니메이션으로 만들어 천문학적인 수입을 올리고 있다는 등의 이야기는 이미 새로운 것이 아니다.21세기 글로벌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는 생활 속에서나 사회 속에서 어디든지 자신만이 잘 말할 수 있는 스토리를 준비하는 것이 아주 중요한 일이 되었다.성공적인 스토리텔링으로 만들기 위해서는 기승전결이 뚜렷해야 하며, 이야기에 등장하는 등장인물의 묘사가 매우 중요하며 적절한 논리성을 가지고 전달을 하는 것이 가장 좋다. 논리적이고 이야기의 흐름이 군더더기 없이 제대로 물흐르듯이 이어가는 스토리텔링이야 말로 좋은 스토리텔링의 요건 중에서도 매우 중요한 요소가 아닌가 생각한다.성공하는 스토리텔러가 되려면 몇 가지 조건이 필요하다.첫째, 풍부한 이야깃거리가 있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다양한 경험과 지식이 필수적이다. 많은 경험을 쌓고 여러 분야의 책을 읽어야 한다.둘째, 일정한 숙성 기간이 필요하다. 그래야 나만의 이야기로 진화, 발전할 수 있다. 그러다 보면 어느 순간 자기 이야기를 하고 싶은 욕구를 느낀다. 어떤 형태로든 풀어내고 싶어진다.셋째, 자기 경험을 남 이야기처럼 객관화하여 이야기해보는 훈련이 필요하다. 수많은 사건과 갈등을 남의 일처럼 객관화해 보는 것이다. 지금 상황에서 어떤 결정을 할 것인지, 시간이 지난 후 지금의 결정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게 될지 미리 생각해보는 것이다. 그러다 보면 의외의 해결책을 찾을 수 있다.우리 경남도에는 수많은 역사, 문화, 전통, 인물, 전설 등의 유·무형 원형을 가지고 있다. 이러한 유·무형의 원형 들을 산업적으로 개발하는데 있어서 감성을 기반으로 하는 스토리텔링의 발전은 필수적이며 다양한 디지털, 미디어 등 융·복합의 첨단 산업과 전문성이 뒷받침된다면 경남 문화산업발전의 동력이 될 것이다.그러기 위해선 경남의 지역문화에 대한 우리의 적극적인 관심과 열정이 우리의 문화와 유산을 발굴하고 보존하게 하고 유지하기 위해 지원해야 한다. 경남의 독창적이고 생산적인 유·무형의 원형을 개발해야 한다. 그리고 경남지역의 문화콘텐츠를 개발하고 전문인력 양성과 보급 또한 중요한 과제라고 할 수 있다.또한, 경남을 대표하는 스토리텔링 콘텐츠는 역사성과 독창성을 갖추고 지역민이 참여하여 지역 문화산업을 견인할 수 있는 교육적이고 세계적인 감각이 있어야 한다. 그리고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흥미와 호기심을 겸비한 스토리 구성 요건을 충족해야만 성공적인 스토리텔링인 것이다.경남지역에서 스토리 창작, 기획이 발전하려면 무엇보다 도와 시, 군의 자치단체 및 문화관련 기관이 다양한 창작의 통로를 열어서 많은 스토리텔러들이 문화 욕구를 충족하는 훌륭한 작품이 나올 수 있도록 해야 한다.아울러 지역의 작가 및 스토리텔러들도 형식만 갖춘 작품이나 지원을 받기 위한 창작활동을 경계하고 지역민들의 문화욕구를 충족시킬 수 있는 창작물을 생산해야 할 것이다.
14.02.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