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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무인도 아닌 무인도 여행

주위 눈치 봐가며 얻은 귀한 여름휴가 이틀 동안 무인도 여행을 갔다. 처음에 지인이 무인도에 같이 가자고 했을 때는 기대가 컸었다. 사람의 발길이 닿지 않는 청정지역 무인도에서 오롯이 섬 하나를 차지해 놀다 오겠구나 꿈을 꾸었다. 지인 말의 추임새도 한몫 했다. 소라나 게는 지천이고 전복도 어렵지 않게 주울 수 있는 기가 막힌 곳이라며 그물이나 낚시로 물고기를 잡아 싱싱한 회도 실컷 먹고 올 수 있을 거라 했다. 그래서 지인 가족과 우리 가족, 그리고 또 한 사람이 동행했다.

그런데 집에서 나설 때부터 조짐이 좋지 않았다. 가져갈 걸 빠뜨려서 몇 번이나 집으로 돌아오는 통에 지체된 데다 에어컨이 제대로 나오지 않아 찜통이나 다름없는 차 안에서 몇 시간을 견뎌야 했다. 그것도 배가 들어갈 수 있는 밀물 시간에 맞춰 가야 한다며 점심을 거른 채로. 중간에 구경거리가 있어도 잠시 쉬지도 못했다. 물축제가 한창인 장흥을 지나 청자축제를 열고 있는 강진도 그냥 지나쳤다.

그렇게 해서 배를 탈 완도 근처 작은 포구에 도착한 시간이 오후 2시가 넘어서였다. 하지만 배편을 알아볼 가게의 문이 닫혀 있는 게 아닌가. 또 차 안에서 하릴없이 기다리고 있자니 가게 주인이 배를 타고 돌아왔다. 잠깐 바다에 나가 그물을 걷어온 모양이었다. 모두들 배가 고파 가게 주인에게 부탁해 광어회를 시켜 먹었다. 비릿한 회로 배를 채웠지만 정작 먹고 싶었던 밥이나 매운탕은 구경도 못했다. 무인도로 실어다줄 배 들어올 시간에 맞추기 위해서였다.

배편도 지인이 몇 번의 통화 끝에 겨우 얻었다. 작은 어선으로 쓰는 듯한 배가 들어오자 씻을 물 4통, 식수 12병, 쌀과 반찬, 코펠, 가스버너, 갈아입을 옷과 수건, 세면도구 등이 든 배낭들, 텐트와 침낭 등을 차곡차곡 실었다. 짐들을 포개 싣고 그 틈새에 모두 자리를 잡았다. 선장은 지인의 코흘리개 고향친구였다.

짐 사이에 끼어 앉은 우리를 보며, 선장은 이럴 줄 알았으면 더 큰 배를 가져올걸 그랬다고 말했다. 그때부터 우리들은 선장을 우러러보기 시작했다. 작은 어선만 해도 야무진 일인데 더 큰 배라니. 선장은 큰 배로는 100명도 족히 실을 수 있다고 했고, 지인은 ‘친구야, 너 엄청 성공했구나!’ 하면서 반신반의 놀라워했다.

목적지인 무인도에 가까워졌을 때, 누군가 ‘사람이 있잖아.’ 탄식을 했다. 벌써 사람들이 와서 텐트를 치고 있는 게 보였다. 도착도 하기 전 무인도의 환상이 깨지고 말았다. 섬에 내리고 나서도 환상은 계속 박살이 났다. 섬은 온통 사람들이 버리고 간 쓰레기들 천지이고, 해변은 날카로운 바위들과 뾰족한 돌멩이들과 유리 파편들이 늘려 있어 걸어 다니기도 겁이 났다. 그나마 괜찮은 자리는 먼저 온 사람들이 차지해 버려 텐트를 칠 곳조차 마땅치 않았다.

그래도 아이들은 바다가 좋아서 먼저 뛰어들었고, 여자들은 반찬거리 생겼다며 고둥 줍기에 빠져들었다. 남자들은 횟감을 잡을 거라며 그물을 치고, 꽃게 통발을 던져 놓았다. 고둥 줍기에 싫증이 날 때쯤, 배가 다시 들어왔다. 아마 배를 타고 오면서 전복 양식을 한다는 선장에게 뱃삯으로 전복을 사겠다고 이야기가 된 모양이었다.

시중에서 파는 것보다 두 배는 돼 보이는 실한 크기의 전복 30개가량을 찜통에 통째로 삶아 저녁 만찬(?)을 차렸다. 쓰레기와 뾰족한 돌멩이들을 피해 겨우 앉을 자리를 마련하고 밥을 먹었다. 아저씨들은 술 권하기 바빴다. 물론 전복이 가장 큰 반찬이자 안주였다.

술이 들어갈수록 모두의 이목이 선장의 성공담에 쏠렸다. 섬 건너편에 보이는 게 선장의 전복 양식장인데, 규모가 어마어마하다 했다. 배가 5척에 집도 여러 채, 호텔식 펜션 사업도 계획하고 있단다. 선장의 말을 듣다가 스킨스쿠버 복장으로 바다에서 폼을 재던 이웃 남자도 코가 빠진 듯했다. 선장은 불편한 곳에 친구 일행이 자게 놔둘 수 없다며 자기가 살고 있는 펜션으로 가자고 했다. 아이들과 여자들이 반색을 하며 일어섰고, 일행은 다시 배를 탔다. 짐은 무인도에 다 놔둔 채로.

펜션에서 씻고, 싸고, 텔레비전 드라마 보다가 편하게 잠을 자고 아침이 되어 섬에 돌아와 그물과 통발을 걷었다. 걸린 것은 게 몇 마리뿐. 게와 고둥을 심심풀이로 삶아 먹었다. 그 다음엔 할 일이 없어졌다. 아이들도 바다가 지루해지긴 마찬가지였다. 마땅히 앉을 곳도 누울 곳도 없으니 일찍 짐을 쌀 수밖에. 돌아오는 배 안에선 모두 말이 없었다. 육지에 도착해 짐을 내리고 있는데, 선장이 벤츠를 타고 왔다. 배에다 차까지… 어른들은 씁쓸한 표정을 감추질 못했다.

이럴 줄 알았으면 차라리 집에서 쉴 걸, 아까운 휴가만 날리고 말았다. 이젠 사람의 발길이 닿지 않는 무인도, 문명의 편리와 쓰레기가 닿지 않는 무인도에 가기는 어려운 것 같다. 환경뿐 아니라 나부터도 문명이 없는 야생 자연 속에서 하루를 버티기도 힘든 듯하니. 다음에 무인도에 가게 된다면 마음부터 비우고 나서야만 진짜 무인도 여행을 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박정림(전언론인)

무인도 아닌 무인도 여행 저작물은 자유이용을 불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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