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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에 반하다

[사람에 반하다]"그런 상황을 만나면 또 구하지요"

 

한사코 인터뷰를 거절하던 전제용(79) 선장을 만나러 무작정 통영, 그의 아파트로 찾아간 지난해 연말, “33년이나 지난 얘기를 뭐하러 또 끄집어낼 것이냐”는 그에게서 한결같은 겸손함을 느꼈다. 세상살이가 어려워지니 이웃을 돌아보자는 취지라며 그를 설득해 마주앉았다.

 

모두 동의해서 가능한 일이었다

1985년 11월 14일. 전 선장이 이끄는 참치어선 ‘광명 87호’는 인도에서 조업을 마치고 한국으로 돌아오는 길이었다. 남중국해 인근에서 구조를 요청하는 작은 목선을 발견했다. 보트피플(Boat People)이란 걸 직감했다. 베트남 공산정권을 피해 바다로 탈출한 난민들이었다.

“배의 속도를 최대한 늦추고 간부들과 회의를 했다. 회사에서는 반대했고 당신들도 피해를 볼 수 있으니 모두 동의하지 않는다면 그냥 가겠다고 했다. 그런데 선원 25명 모두 불이익을 감수하겠다며 구조에 동의해 줬다”고 당시 상황을 들려줬다. 그는 지금도 당시 구조에 동의한 선원들에게 감사하고 있다. “무엇보다 저 사람들을 구조하지 않으면 평생 한이 되겠다는 생각에 그냥 지나칠 수 없었다” 한다.

뱃머리를 돌려 다가간 작은 배에는 무려 96명이 타고 있었다. 배에는 물이 차올랐고 그들의 구조요청을 외면한 채 지나친 선박만 20여 척이나 됐다. 부족한 식량을 나눠 먹으며 부산에 도착하기까지 그들과 함께 부른 ‘클레멘타인’은 생사를 넘나든 난민들의 마음을 달래주었다. 한국 도착 후 그는 회사에서는 해고됐고 국가안전기획부에 불려가 험악한 조사를 받는 수모도 겪었다. 결국 전 선장은 3년 가까이 배를 타지 못했고 선원들도 뿔뿔이 흩어졌다.

 

  

 

17년 만의 재회, 그리고 감사

보트피플은 부산난민센터에서 약 1년 반을 지내다 미국과 캐나다, 오스트레일리아 등지로 흩어졌다. 그렇게 끝난 것 같았던 그들과의 인연이 17년 만에 다시 이어졌다. 보트피플의 대표, 피터누엔(75)은 미국으로 건너가 간호사가 되었다. 생활이 안정되자 전 선장을 찾아 나섰고 같은 병원 한국인 수간호사의 도움으로 2002년 이들은 국제전화로 재회의 기쁨을 나눴다.

2004년 미국 LA 공항에 도착했다. 전 선장 가족을 초청한 그들을 만나기 위해서였다. “당시 환영 인파가 너무 많아 깜짝 놀랐다. 나를 찾아준 것만 해도 고마운데, 이렇게나 반겨주다니 감사할 따름이었다.”

피터누엔은 그때의 감사한 마음을 되갚으며 살고 있다. 유니세프에 후원금을 보내고, 중증장애인 목욕봉사도 꾸준히 하고 있다. 전 선장의 집에는 아직도 연말마다 도착하는 보트피플의 감사편지로 가득하다. “33년 세월이 지났는데 그 정을 이어간다는 게 정말 대단하다”는 전 선장의 모습에서 눈물이 스쳐갔다.

 

누구나 그리했을 것이다

전 선장은 고향 통영에서 멍게를 키우며 여전히 바다를 떠나지 않고 있다. “내가 베푼 건 없다. 그날 누구나 그리했을 것이다. 다시 그런 일이 발생한다면 지체 없이 그들을 또 구조할 것이다”라고 했다.

전 선장의 말처럼 누구나 그러지는 못한다. 세월호 선장의 무책임한 행동에 국민들이 절망에 빠졌을 때를 기억해보라. 요즘같이 이기주의가 만연한 시대에 나보다 주변을 먼저 생각하는 전 선장이야말로 진정 ‘우리들의 영웅’이 아닐까! 

 

 


 

글·사진 배해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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