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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한 여행

[행복한 여행]소설가가 만난 문학(文學) 수도 '하동'


 

이인규(명예기자)  사진 이윤상 



아주 오래전, 하동을 몇 차례 찾은 적이 있다. 젊은 날의 긴 방황 끝에, 세 번째 공무원 시험에 합격하여 발령을 기다리던 때였다. 답답한 도시를 벗어나 자연에서 잠시 쉬고 싶었는데, 마침 사법고시에 몇 차례 떨어진 K형이 이곳 화개천에 민박집을 운영하는 지인이 있다고 했다. 승용차가 없던 시절이었다. 부산역에서 완행열차를 타고 하동역에 내린 다음, 버스를 두어 번 갈아타고 도착한 화개천은 그간의 수험공부에 찌든 내 눈과 마음을 활짝 열기에 충분했다. 쌍계사 가는 길의 양옆으로 늘어선 벚꽃길은 실로 몽환적이었고, 맑고 차가운 화개천의 물은 심산유곡의 계곡물 못지않았다. 또래인 민박집 주인은 순박했고 그의 아내 역시 다정다감했다. 그들과 밤마다 통기타로 노래를 부르며 어울렸던 시간은 젊은 날, 매우 아름다운 추억으로 남았다. 이후, 필자는 그 민박집을 잊지 못하고 띄엄띄엄 그곳을 찾았다. 2014년 마지막으로 찾아갔을 때, 민박집 부부는 딸의 결혼 준비로 매우 바쁘다고 했다. ‘성희라고 불렀던 그 아이를 처음 봤을 때가 4살이었는데, 결혼할 나이라니 새삼 세월이 유수와 같다는 말이 떠올랐다.

 

그렇게 하동과 인연이 끝이 났다고 생각할 즈음, 필자는 올해 운 좋게 경남문화예술진흥원의 예술인 신중년 공헌 활동 참여작가로 선정되어, 평사리문학관(관장·최영욱)에서 활동하게 되었다. 그때부터 문학관 관계자(하아무 소설가)와 동료 예술가, 하동 문인협회 등 다양한 분들의 도움을 받아 하동의 역사, 문화, 예술 현장을 답사하기 시작했다. 최참판댁을 시작으로 섬호정에서 바라본 섬진강, 꿈결 같은 강을 앞에 둔 평사리 공원, 한산사에서 바라본 동정호, 회남재, 하동읍성, 고소성, 형제봉 등 일반인에게도 널리 알려진 곳을 돌아보니, 그동안 하동에 관한 필자의 좁은 식견이 몹시 부끄러웠다. 하동은 상상 이상으로 광활한 문화유산과 역사, 품격 있는 전통을 가진 경남 문화예술의 메카였기 때문이었다.

 

짧다면 짧고, 길다면 긴 6개월간의 여정에서 특별히 기억나는 게 있다. 사람은 똑같은 것을 보며 같은 공간에 있더라도 인식하는 것 자체는 다를 수 있다. 기억의 첫째는 고전면의 정공채·정두수 기념관을 찾을 때가 그랬다. 형제 시인으로 알려진 두 분 중, 정공채 시인은 대표작 간이역으로 널리 알려져 있고, 정두수 작사가는 가왕(歌王) 나훈아의 역작 물레방아 도는데를 만들었다. 당연히 동행한 동료 예술가들은 이분들에게 초점을 맞추었지만, 필자는 기념관으로 올라가는 계단 복도에 낯익은 이름을 발견하고 깜짝 놀랐다. ‘이필원’, 그는 1970년대 우리나라 포크계의 한 획을 그은 분이었다. 박인희와 듀엣을 결성하여 뚜아에모아로 활동하며 약속’, ‘그리운 사람끼리’, ‘추억등 주옥같은 노래를 발표하였다.

필자는 그때 중2, 까까머리 학생이었다. 그의 기타 연주와 노래에 반하여 처음으로 기타를 만졌는데, 이제 기억 저편으로 사라진 그가 이곳 사람이라니, 묘한 설렘이 일었다.


 

둘째, 지역 문인과의 인터뷰에서 만난 김용철 시인은 더욱 그랬다. 칠불사 아래에서 펜션을 운영하는 그는 젊은 시절 고향을 떠나 멀리 충청도에서 낚시터를 경영했다. 사업은 성공적이었으나, 나이가 들자 어릴 때 살던 고향에서 정겨움으로 여생을 보내려고 들어왔다. 그는 필자를 보자 대뜸 진보와 보수 중 어느 쪽이냐고 묻더니, 범상치 않은 풍채와 화려한 언변으로 6·25 전후의 반란군(빨치산)에 관한 만행을 거침없이 토로하였다. 아버지와 친척들의 고통스러웠던 체험을 마치 지금 일어나는 일처럼 열변을 토로하는 그의 모습에 존경심마저 일었지만, 필자가 작년에 발간한 <지리산에 바람이 분다 (산청·함양 양민학살사건)>와 견해가 달라 솔직히 곤혹스러웠다. 인터뷰가 끝날 즈음, 그는 자신의 시집을 내밀었는데, 특이하게 낚시에 관한 연작 시집(4)이었다. 고맙게도 시인은 아카시아 벌꿀 한 통을 건네며, 이다음엔 천문과 우주에 관한 비범한 이야기를 들려주겠다며 꼭 오시라는 말을 잊지 않았다. 기타, 하동뿐만 아니라 경남에 꽤 알려진 김남호 시인(평론가)을 비롯하여 이필수, 명휘동, 현임옥, 진효정, 이종수, 최동욱 시인들의 만남 역시 가슴 벅찬 경험이었다. 이들의 보이지 않는 헌신이 있었기에 매년 열리는 박경리 토지 문학제이병주 하동 국제문학제가 성황리에 열릴 수 있었으리라. 그들의 도움으로 필자는 하동 10의 절반(불일폭포 등 5)을 단편소설로 창작할 수 있었다.


 

‘​문학()이란 삶의 구김살을 펴는 과정이라고 어떤 시인이 말했다. 인공지능(AI)이 판치는 세상이 온다 하더라도 따뜻한 온기를 가진 사람이 창작한 문학보다 나을 순 없다. 필자는 그렇게 믿고 싶다. 이곳, 하동은 알다시피, 대문호 박경리와 이병주문학관이 자리 잡고 있고, 얼마 전엔 정호승 시인 길도 만들었다. 그뿐만 아니라, 박남준, 이원규(신희지) 등 소위 말하는, 잘 나가는 외지 시인도 산다. 게다가 국민 소설가 공지영 작가도 악양에 자리를 잡는다 하니, 부디 지역 문인들과 잘 어우러져, 하동이 명실공히 문학 수도로 다시 한번 자리매김할 수 있으면 좋겠다.

 

글쓴이는 2012년 부산에서 경남 산청으로 가족과 함께 귀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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