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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의 향기

[문화의 향기]내 인생의 책 한 권

어니스트 헤밍웨이의 <노인과 바다>

 

나는 닉네임으로 마놀린을 사용한다. 사람들이 가끔 마놀린이 뭐냐고 묻는다. 노인과 바다는 모르는 사람이 거의 없고 소년과 노인이 등장한다는 것 또한 대부분 알지만, 마놀린이 소년의 이름이고 노인은 산티아고라는 이름을 가졌다는 것을 잘 모른다. 굳이 꼭 알아야 할 이유는 없지만.

할아버진 제 자명종이세요라는 소년의 말에 내겐 나이가 자명종이지라고 답하는 노인. 노인은 가진 게 거의 없고, 가진 것은 늙거나 낡았다. 운이 다했다며 마을 사람들로부터 한물간 노인 취급을 받는 그였다. 하지만 운은 오늘이라도 당장 찾아올지 모르는 것이라는 생각으로 늘 만반의 준비를 하고 그 운이 찾아왔을 때 빈틈없이 해내려 하는 긍정적인 노인이다. 그러므로 노인에게 하루하루는 언제나 새로운 하루이며 아무 일 없다는 듯 또다시 이어지는 하루이다.

드디어 큰 고기가 물었고 고기가 배를 끌며 바다로 계속 헤엄쳐 나아갈 때 노인은 그 애가 있으면 좋겠다는 혼잣말을 한다. 늙으면 혼자 있어선 안 된다는 생각과 바다를 건너다보고는 자기가 지금 얼마나 외롭게 혼자 있는지 깨닫기도 하지만 동시에 노인은 바다에서는 그 누구도 결코 외롭지 않다는 것을 안다. 노인과 바다는 우리의 현실이다. 눈부시게 찬란해서 고독하고 모든 것을 집어삼킬 만큼 모질어서 치열하다. 매일 낚시를 해야 하며, 가끔 물고기를 죽인 걸 후회하기도 하지만 삶은 어떤 식으로든 뭔가를 죽이게끔 되어 있고 그건 나를 죽이기도 하면서 또한 우리를 살아가게 해주는 일이다.

인간은 죽을지는 몰라도 패배하는 것은 아니니까.” 승리와 패배는 받아들이기 나름이다. 그것이 승리든 패배든 그걸 함께 기뻐하고 슬퍼할 친구가 있다는 건 참 행복한 일이다. 마놀린과 산티아고처럼.

사람은 누구나 마놀린이었다가 산티아고가 된다. 크고 엄청난 물고기였지만 항구에 도착했을 때 뼈만 남은 청새치처럼 죽음으로 빈손이 된다. 나는 아직 마놀린이지만 언젠가 아니 머지않은 날에 산티아고가 된다. 여전히 사자 꿈을 꾸는.

 

- 서연우(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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